신앙 터잡기 (4) : 주님의 교회

신앙 터잡기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즘처럼 교회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때일수록 교회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갖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각 지역마다 회당이 있어서 유대인들은 그곳에 모여서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회당을 교회의 직접적인 뿌리로 보는 것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제사법에 따른 예배였고, 회당의 경우 바리새인들이나 랍비가 유대교 중심의 신앙생활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설교를 하니 삼천명이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가정에 모여서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면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교제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처음으로 모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기독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루살렘외에 안디옥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11장). 당시 팔레스타인의 거점 도시였던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는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매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방인 선교에 나섰던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 교회가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식민지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 교회를 세웠고 이들에게 서신을 보내서 신앙과 교회가 바로 세워지길 권면했는데 이것이 신약성경에 있는 바울서신들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가정을 넘어서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이들은 신앙훈련과 친교는 물론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의미를 다음의 두 가지 표현들이 잘 가르쳐줍니다. 먼저 헬라어 에클레시아(ecclesia)입니다.‘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헬라어“키리아코스(kyriakos)입니다.‘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뜻으로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부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주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드러내는 네 가지 표지(marks)가 있습니다. 첫째로 단일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사도성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습니다. 둘째는 보편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모든 모임이 교회입니다. 셋째로 거룩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였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구별된 모임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예배, 훈련, 구제와 선교 그리고 성도의 교제입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을 구제합니다. 함께 교제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갑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가지 표지들과 네 가지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초대교회에 뿌리를 내린 교회가 지금 우리에게 임했으니 지금 여기서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영광이요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할렐루야! -河-

신앙 터잡기 (3) : 예배와 삶

신앙 터잡기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예배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를 이어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의미는‘하나님께 몸을 숙여서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단지 몸을 숙이는 것을 넘어서 땅에 엎드려서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왕이나 황제를 맞이하듯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매우 엄숙하고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거룩한 행위(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길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만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갖고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언약가운데 주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합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은‘영(spirit)’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임재 속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죄를 고백하면서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거짓, 교만, 불의를 버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둘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올 때 참된 예배자가 되기 힘듭니다.

셋째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시51:17).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근사한 것 완전한 것을 바라기보다 부서지고 통회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회복과 치유 그리고 넘치는 은혜가 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신6:4-5).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신앙과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모든 것을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사랑은 우리 마음과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공동체 예배는 늘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가서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려져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될 때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河-

신앙 터잡기 (2) : 말씀과 기도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4-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신앙이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모든 것을 조율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선해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지만 말씀과 기도가 빠지면 헛것이 됩니다. 그 만큼 신앙에서 말씀과 기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을 두고 영감(inspiration)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 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적합합니다(딤후 3:16).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을 다스릴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충분히 인정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손색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먹지 않으면 우리들 신앙은 영양실조에 걸릴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주보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에 있는 본문을 따라서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음에 와 닿는 하나님 말씀을 적어놓고 틈틈이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은 신앙은 물론 인생길을 걸어가는 지도(map)와 같습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금방 질식하듯이 우리도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간순간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힘들 때는 도움을 청하고, 슬플 때는 애통하면서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특별한 형식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릴 뿐입니다. 물론 우리 생각만 속사포처럼 하나님께 쏘아 올리기보다 중간에 또는 기도 끝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때 깊은 기도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처음 믿으셔서 기도할 줄 모르신다면 그저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기도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갖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형식은 없지만 대표기도하시는 분들이나 절차를 갖춘 기도를 위해서 기도의 네 가지 요소를 기억해 두시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함 – 죄의 고백 – 간구 – 이웃을 위한 기도. 이 가운데 이웃을 위한 기도는 우리들 기도의 지경을 한없이 넓혀줍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와 이웃을 위한 기도로 나간다면 우리의 기도가 온전해 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우리의 신앙과 삶이 풍성해 지길 원합니다.-河-

신앙 터잡기 (1) : 복음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배우며 자라가는 교회”입니다. 표어에 맞춰서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속회별로 전교인 신앙 터잡기 교육을 했습니다. <복음-말씀과 기도-예배와 삶-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이어진 이번 성경공부에서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함께 공유해야 할 주제를 다뤘습니다. 개인은 물론 교회가 자리 잡아야 할 신앙의 터전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과 온 교회가 다시 한 번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목적으로 주일 설교시간에 연속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귀한 시간이 되고, 온 교회가 같은 믿음을 갖고 한 길로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복음(福音)은 말 그대로‘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은 전쟁에서 들려오는 승전보 또는 왕이 태어났거나 등극했다는 기쁜 소식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울려 퍼지는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기독교에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베들레헴에 태어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동격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몸을 입고 33년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시험을 당하셨기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공감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길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삶,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장차 오실 재림이 복음의 내용들입니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억누르는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죄에서 구출되었으니 구원의 복음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으니 영생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 가운데 들어갈 때 옛 모습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선포한 것처럼 이전 것은 지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으니 회복의 복음입니다.

복음의 지경은 넓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온 세계에 울려 퍼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시작되었기에 복음의 역사는 매우 깁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주어졌으니 복음은 높습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높이 오릅니다. 복음은 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들 삶 깊은 곳까지 만져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미처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면서 대신 기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복음은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악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이 임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다각도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모두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답게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가 되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복음을 들고 빛과 소금을 사시는 근사한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河-

시몬 베드로 (8) : 샛별이 떠오르기 까지

베드로에 대한 연속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가던 요한의 아들 시몬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지난 일곱 번에 걸쳐서 살펴본 것처럼 요한의 아들 시몬은 주님의 교회를 세울 반석, 베드로로 빚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그의 성품대로 사용하시면서 천국열쇠를 맡기셨습니다. 무엇보다 베드로는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의지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갈릴리 호수 깊은 곳으로 배를 몰고 갔습니다. 베테랑 어부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고기가 잡히는 기적을 체험했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한 밤중에 유령처럼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걷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비록 바람을 바라보다가 물에 빠지기는 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에게는 말씀대로 행하는 우직함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예수님을 위해서 초막을 짓겠다고 설레발을 치다가 야단을 맞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에 빨끈 화를 냈다가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세 번 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베드로는 회개했습니다. 실수하고 실패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아니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고 베드로는 자신을 찾은 예수님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다시금 예수님 품에 안겼습니다. 회개를 통한 변화와 고백이 베드로에게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교회를 맡기셨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이제 요한의 아들 시몬의 모습을 벗고 온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오순절날 약속하신 성령을 체험하면서 베드로는 능력 있는 사도로 놀랍게 변화됩니다. 그가 설교하니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 예루살렘 한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죽은 자를 살리고,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답게 예루살렘과 이방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반석(게바)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신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서 제자의 삶을 산 것입니다. 고기를 잡는 갈릴리 어부가 죽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하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河-

시몬 베드로 (7)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가장 힘드실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큰소리치고 난 후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범한 잘못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고개를 돌려서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눈길을 느끼는 순간 닭이 웁니다. 베드로는 그제야 예수님 말씀을 깨닫고 밖으로 나가서 통곡합니다.

3년을 따라다니던 스승을 배신한 죄책감이 무척 컸는지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향 갈릴리로 내려가서 다시 어부의 삶을 이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무덤에 달려와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예수님에 대한 죄송함과 자신의 믿음에 대한 자책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동료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십니다. 그 날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허탈한 베드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을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또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간으로 계실 때의 몸과 다른 신비한 부활체(復活體)를 입으셨습니다. 벽을 뚫고 오실 만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함께 식사를 하다가 사라지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하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또다시 기적을 체험한 순간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다”라고 소리칩니다. 주님이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서둘러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서 예수님께 헤엄쳐서 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이 드리워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죄책감과 자책하는 마음이 깊어서 갈릴리 어부로 돌아왔지만 그의 마음은 늘 예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이라고 요한이 전하고 있습니다(요21:14). 예수님께서 모닥불을 짚여 놓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두 번째 부인할 때도 차가운 새벽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모닥불을 쬐고 있을 때였는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모닥불을 피우시고 제자들에게 친히 아침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연거푸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던 것과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베드로에게 목양의 사명을 위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사랑을 안고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 마음 깊은 곳에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찾아오심과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의 확인은 베드로의 상처와 죄책감을 치료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 게바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날마다 우리들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사랑의 주님과 다음 한 주간 동행하기 원합니다. -河-

시몬 베드로 (6) :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십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고 해도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돌아가시는 것이 쉬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꿋꿋하게 그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의 배반으로 인해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웃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베드로에게는 그날 밤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고, 예수님의 능력에 몸소 참여했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능력이 크신 예수님께서 로마를 무너뜨리고 그곳에 새로운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심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로마 군병에게 잡히셔서 밤새도록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십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기대하던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지만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면 자신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까봐 겁이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길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조심하길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마지막 세 번째로 부인할 때는 예수님께서 돌이켜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 마음에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베드로의 믿음과 그동안의 행보가 모두 무너져 내린 것 같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밤에 믿음을 모두 털어 버린 듯 합니다. 가장 훌륭한 고백을 했던 베드로,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되신 모습을 보았던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베드로의 실체입니다. 아무리 베드로가 위대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늘 넘어지고 무너집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河-

시몬 베드로 (5) : 여기가 좋사오니

베드로가 걸어간 신앙 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고기를 많이 잡고 심지어 바다 위를 걷는 기적까지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서 그의 이름 뜻에 걸맞게 천국의 열쇠까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사탄아”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차근차근 훈련시키십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그의 갈릴리 친구들이자 동업자였던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세 사람에게 주목하셨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수제자로 교회의 터전을 세우는 반석이 되고, 요한은 90넘게 살면서 요한복음은 물론 요한 계시록까지 기록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야고보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예루살렘에 박해가 닥쳤을 때 일찍 순교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이 담당해야 할 사역을 미리 아시고 특별히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십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옷까지 희게 빛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말씀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면, 이번에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세 명의 제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예수님의 양 옆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인물입니다. 고통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모세는 죄의 지배를 받던 우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유케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신 구약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 선지자입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승리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큰 능력을 행사했던 특별한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좌우에 모세와 엘리야를 두고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성급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머무실 의도가 없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보여주시고 싶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베드로를 신비로운 체험으로 부르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경험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본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장면을 베드로가 목격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체험이 중요합니다. 신앙이 머리에 머물러 있으면 힘이 없고 딱딱합니다. 가슴에 머문 신앙은 감정의 기복에 따라서 변화무쌍합니다. 체험은 신앙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 확신을 더해 줍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찾아오십니다. 하지만 체험만 추구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세상으로 내려가셨듯이 우리도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河-

시몬 베드로 (4) : 주는 그리스도시요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가 차근차근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갑니다. 솔직히 베드로는 천방지축처럼 행동하는데 그를 게바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두 번에 걸쳐서 경험했던 베드로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믿고 깊은 데로 가니 배가 잠길 만큼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 다음에, 칠흑같이 어둡고 폭풍이 치던 날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서 헤매고 있던 제자들과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처럼 물위를 걷고 싶었던 베드로는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배에서 뛰어내려서 물 위를 걷습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예수님이 아닌 바람을 보는 순간 물에 빠집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구해달라고 외칩니다.

 

첫 번째 갈릴리에서의 만남을 철저하게 예수님께서 주도하셨다면, 두 번째 물 위를 걷는 사건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먼저 요청했습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자랐습니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지게 되자 예수님을 불렀고 예수님은 그를 구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실패와 실수 가운데 예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폭풍을 잔잔케하시는 등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지 궁금해 합니다. 어떤 이들은 얼마 전에 죽었던 세례요한, 예레미야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이 누구신지 베드로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정답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대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베드로가 여기까지 자랐을까요? 예수님과 더불어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극악무도한 강도들이 벌을 받는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라고 만류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급한 성격에 또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은 셈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야단을 맞습니다. 베드로가 머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곳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십니다. 예수님 옆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있고,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이 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세 명의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또 나서서 그곳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뜻과 달리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남은 사역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성격대로 말이나 행동에 실수 투성이였던 베드로이지만 차근차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체험해갑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서 그의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게바로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빚어 가신 덕분입니다.-河-

시몬 베드로 (3) : 믿음이 작은 자여

동생 안드레를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받은 베드로는 시몬에서 게바로 이름이 바뀔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여전히 어부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 날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실의에 빠져서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깊은 곳으로 배를 몰고 갔고 배가 물에 잠길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깊은 곳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실패의 현장에 들어가길 원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실망과 실패를 고쳐주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깊은 곳으로 배를 몰고 갈 때, 예수님도 베드로의 마음과 삶 깊은 곳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게바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체험한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시몬이 아니라 게바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명의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모든 현장에 제자들이 동행했습니다. 베드로는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 첫 번째 제자로 여겨졌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나옵니다. 엄청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배고픈 시대에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태워서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자신은 산으로 가서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만 충실하시려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새벽 네 시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기겁을 하며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그때 성격이 급한 베드로가 나섭니다. 자신도 물 위를 걷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물 위로 뛰어내립니다. 대단한 용기요 믿음입니다. 놀랍게도 베드로가 물 위를 걷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물 위를 걷던 베드로에게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베드로 안에서도 두려움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듭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붙잡아 올리시면서 그를 향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베드로의 믿음은 꽤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믿음이 작아졌고 대신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배와 고기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베드로의 믿음은 아직 온전하지 않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말씀에 의지해서 배에서 뛰어내렸지만 바람이 불어오자 의심과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물속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제자들 가운데 믿음으로 뛰어내려서 물 위를 걸은 사람은 베드로뿐입니다. 물속에 빠져들면서도 그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폭풍우가 치는 밤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깊은 곳에서 다시금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갑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를 주목하시고 그를 게바로 빚어 가십니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믿음을 배우기 원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의심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한 주간 힘차게 살아갑시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