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능력 (4) : 박해를 받아도

히브리서 11장을’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장이라는 별칭에 맞게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불확실해 보이는 것을 실현된 것과 보이는 것으로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미래를 향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합니다. 이어지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보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믿음의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렸던 아담의 아들 아벨로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삼손과 다윗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쓰신 인물들이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입증해 보입니다. 믿음의 인물들이 살았던 삶도 다양합니다. 믿음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음 가운데 이루었습니다. 다니엘과 같은 사람은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믿음으로 불과 칼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으로 전쟁에 나가서 적군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믿음의 행적들 가운데 주목할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겪는 박해입니다. 조롱을 받고 채찍에 맞고 결박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돌에 맞고 톱으로 켜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소개합니다. 박해를 피해서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쓰고 광야를 유리하면서 믿음을 지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난과 어려움과 학대를 받는 것은 예사였고,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순교자의 피에 교회를 세우셨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마지막 때에 위로하시고 이들의 아픔을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박해(persecution)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입니다. 초대교회는 물론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던 구한말에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믿다가 감옥에 갇혔고 목숨을 잃은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휴전선 너머 북녘 땅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외딴 수용소에 갇혀서 힘겨운 삶을 사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해를 받을수록 복음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더욱더 맑아지고 주님만을 향하는 믿음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악한 세력의 박해가 그리스도인들 안에 깃든 보화,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낼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온실 속에서 자란 신앙이나 편하게 예수님을 믿을 때가 신앙의 위기였지, 박해를 받을 때는 신앙이 살아서 역사하는 은혜의 기간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편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드는 유혹과 고난을 순간순간 경험합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박해를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아니하며.” 믿음을 빼앗아가려는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박해를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는 주님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할 기회입니다.-河-

그리스도인의 능력 (3) :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질그릇과 같은 우리들 안에 보배가 담김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가치상승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기면서 보배를 품은 그릇이 되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깨지고 쉽게 사라질 질그릇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치가 급상승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인이요, 불의한 종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의롭게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권속(family)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보배를 품은 질그릇에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 네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시고, 종종 하나님께서 직접 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번역을 통해서 싸이지 않는다는 말씀 속에는 1) 부서지지 않는다, 2) 찌부러들지 않는다,3)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4) 꺾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두루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보배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능력을 살펴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답답한 일은 어떤 일이 갑자기 닥쳐서 당황스러운 경우입니다. 세상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측불허의 돌발 상황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때는 마음이 내려앉고 심히 당황됩니다. 밀 그대로 낙심(落心)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갑작스레 닥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와 용기를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우 황당한 일을 겪으셨습니다. 3년 동안 동거동락하던 제자인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팔아서 십자가에 달게 할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던 제자라는 사실 앞에서 예수님도 적지 않게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동요하지 않으시고 차분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에 영원한 생명이 임하고, 무엇보다 죽음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답답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당황스러운 일 한복판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그리스도인의 능력 (2) :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 지난주에 함께 나눈 말씀입니다. 저는 한 주간 살면서 이 말씀을 마음에 두려고 애썼습니다. 설교시간에 제안한대로 말씀을 외웠습니다.“보배”“질그릇”“심히 큰 능력”“하나님께 있고”“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과 같은 주요 표현들을 곱씹으면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들이지만 보배가 담김으로 가치가 급상승했습니다. 보배가 담기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까지는 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들 능력의 근원이 되심에 감사했습니다.

지난 주 초반에는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집안에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고 여기저기 봄꽃이 만발했습니다. 화창한 날씨를 보면서 그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임했음을 느꼈습니다. 주 중반부터는 구름이 끼고 수요일에는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작년 말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그렇게 애를 태웠는데 하나님께서는 느지막이 단비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친 직후 폭포수와 같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성도님들과 교회위에 폭포수처럼 임하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도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예품사)으로 살다보니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저절로 감사가 넘칩니다.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심히 큰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임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고후4:8-9절이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능력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능력입니다.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을 종종 경험합니다.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어떤 세력인지 알지 못하지만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을 직감합니다.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당황이 되니 판단력이 상실하고 나중에는 허둥지둥 거리게 마련입니다. 우겨쌈을 당하는 것을 알지만 달리 피할 길이 없고 힘이 없기에 발만 동동 구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벗어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옥죄어오는 것들을 물리치거나, 위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공격해 와서 독안에 든 쥐처럼 포로가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우겨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질그릇처럼 연약한 우리 안에 보화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겨쌈을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꼭 붙잡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분명히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그리스도인의 능력 (1) : 질그릇 속에 담긴 보화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능력(power)’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특징도 능력입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 자체는 말 그대로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능력이시기에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능력이 어떤 것인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는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고린도후서 4장 7-10절 말씀을 갖고 살펴보게 됩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참빛 교회 식구들께서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그 능력을 마음에 품고 말 그대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비결을 배우시길 원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 있고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지길 기도하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바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섞여 살아서 교회 안에 파당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린도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속이 상한 바울은 고린도에 편지를 써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사도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간증하듯이 소개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살펴 볼 고린도후서 4장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질그릇과 같다고 전제합니다. 질그릇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가장 흔하고 값싼 물건입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쉽게 깨지는 매우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렇기에 질그릇에는 귀한 물건을 담지 않고 하찮은 것들을 담아 둡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는 질그릇에 보화가 담겼다고 가르쳐줍니다. 질그릇과 보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보화는 금과 은과 같은 값진 그릇에 담겨야 제격인데 질그릇에 담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릇의 진가는 그 안에 담긴 물건으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질그릇이라도 보화를 담고 있으면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속의 보화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심으로 보화를 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것 자체가 능력입니다. 질그릇에 보화를 담고 있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신앙은 우리 안에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음을 믿고 그 보화를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히 큰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그 능력을 누리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河-

예수님의 손길 (5) : 못박힌 손

예수님의 손에 대한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첫째 시간에는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병이 고쳐지고, 눈이 뜨이고, 귀와 입이 열리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친히 손으로 만져주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도 깨끗함을 받아야 함을 또한 서로의 손길로 섬겨야 함을 배웠습니다. 셋째 시간에는 색다른 예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판이 된 성전을 둘러엎으시는 분노의 손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분노는 성전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회복의 손길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축사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손에 인생길을 맡기고 주님의 손에 얹어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생각할 때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발과 양 손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시면서 33년간의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고 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힌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손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의 죄도 깨끗이 사함 받고 보혈의 공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은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손입니다.

엊그제 수요일부터 2014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에서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고난주간 전까지 주일을 뺀 40일간의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기도와 금식을 행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교회의 전통으로 삼았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라면 선행과 섬김은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사순절을 맞아서 손수 실천할 수 있는 경건의 훈련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사순절 전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금식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금식해 보십시오. 하루에 한 끼, 또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금식을 실천하시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시길 바랍니다.

2) 기도와 말씀 훈련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를 통독하는 것도 좋습니다.

3) 영적 절제의 실천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육체의 즐거움이나 쾌락을 위한 일들을 삼가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훌륭한 신앙훈련입니다.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사순절을 보내면 우리의 영이 맑아질 것입니다.

4)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한 가지 이상씩 선행을 실천해 보십시오. 마음속에서 기쁨이 샘솟고 삶에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히면서 우리의 허물과 죄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을 만져주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을 맞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을 깊이 묵상하고 신앙은 물론 삶이 주님께 드려지기 원합니다. 40일은 대략 일 년의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듬뿍 내려주실 것입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4) :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성경에서 손은 힘과 능력의 상징입니다.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원천입니다. 오른손으로 구원해 주신다고 시편기자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면 안전합니다.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올라가면 그것은 승리의 표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펼치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사48:13).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림을 그리듯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펼치시고 그곳에 달과 별을 그려 놓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은 하늘의 능력이 세상에 임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의 손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인간들과 똑같이 말을 하셨고, 손으로 만지셨고, 발로 걸어서 여행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목수는 손재주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길은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예민하게 발달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도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무엇인가 만들어졌고 고쳐졌을 것을 상상하니 더욱 흥미롭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능력의 손길로 병자들을 고치셨고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갈릴리 호숫가의 제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 치유와 회복 그리고 깨끗해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의 손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들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로마의 지배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그릇된 통치에 지친 백성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생명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겨주셨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자고 제안합니다. 각자 먹거리를 해결하도록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풀밭에 앉게 하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 기도를 하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제자들에게 주었을 것이고, 제자들은 그것을 예수님께 건네 드렸을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즉 오병이어(오병이어)를 손에 든 예수님은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건네주십니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위엄과 능력에 눌려서 예수님께 받은 오병이어를 말씀대로 무리들에게 나눠주었을 것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나눠줄수록 떡과 생선이 자꾸 생깁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리니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작은 것을 갖고도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능력입니다. 어린아이가 내어놓음으로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제자들이 중간에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삶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임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 원합니다.-河-

예수님의 손길 (3) :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면 늘 따스하고 좋은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손길은 위로와 능력의 손길입니다. 3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예수님은 힘들고 지친 자들의 손을 잡아 주셨고, 병든 자들을 만져주셨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손길은 분노의 손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성전이 말할 수 없이 타락해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성전이“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이 성전에서 장사를 합니다. 성전세를 바칠 사람들과 헌금을 바칠 사람들에게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도 있었습니다. 제사드릴 제물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전이 장사꾼들 즉 이권이 판을 치는 곳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책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분노로 임한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손길은 그릇된 것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바로 잡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잘못된 길로 빠졌다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임재하시고 성전을 통해서 일하기 원하실텐데 하나님의 사역지에 세상 물결이 들어온 셈입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책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시면서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죄를 지어도 끝없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세상에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갖고 계십니다. 공의는 바른 것을 추구하고 옳지 않은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으로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공평하게 행하지 않거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그러지고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임해서 부정하고 악한 세력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의자와 상을 들러 엎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는 것들이 있다면 얼른 바로잡고 고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물결이 성전에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고전3:16).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된 것들이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둘러엎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임하기 전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하나님 보시게 바른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2)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작년 말에는 디즈니사의 “겨울왕국(Frozen)”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영화 속의 한 등장인물에게는 신기한 마법이 있어서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훗날 그녀가 여왕이 되면서 모든 나라가 겨울왕국으로 변했습니다. 공주의 동생이 언니도 살리고 잃어버린 여름을 되찾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는 것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마이더스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도 있습니다. 마이더스라는 사람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디오니소스라는 신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활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만지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마니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손길이 닿으면 과일이며 빵이며 전부 황금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초래한 비극이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가 지난주부터 살펴보는 예수님의 손길은 겨울왕국이나 마이더스의 손과 정반대입니다. 우선,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얼음으로 변하거나 황금으로 변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따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지시면 생명의 기운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병이 깨끗이 사라졌고,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소경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던 사람의 귀와 입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치유와 회복의 손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욕심이나 명예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오셨고, 약한 자들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지만 예수님 자신에게 이익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철저한 내어주심,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급기야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손길은 희생과 사랑 그리고 승리의 손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만져주시길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손길 역시 매우 이례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하루 전날의 상황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웃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스승이자 주님(Lord)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의 발을 정성껏 씻겨 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감동적입니다.

땅을 밟고 다니고 어쩌면 가장 더러운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손길을 생각하니 은혜가 밀려옵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의 더러운 발을 내어드리고 싶어집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날마다 깨끗해져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발까지 깨끗하게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우리들도 예수님 말씀대로 이웃을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1) :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라는 표어대로 우리 모두 올 한 해 동안 많이 배우고 신앙이 자라가길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의 배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代贖)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원은 우리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계셨고 마지막 3년은 메시야로서 공생애(public life)를 사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지내신 예수님의 사역과 삶은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배움의 본(本)입니다.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라는 표어에서 배우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주간 동안 예수님에 대한 배움 특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손길이 주는 교훈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산상수훈을 마치고 내려오셨을 때 이미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을 깨끗하게 고쳐주시길 간청합니다. 나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염성이 강합니다. 접촉을 통해서 전염되는 질병입니다. 나병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일단 저주를 받아서 병이 걸렸다고 생각해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서 그를 만지시면서,“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3절)며 고쳐주셨습니다. 말씀만 해도 고치실 수 있었을 텐데 나병환자의 병든 몸을 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외롭고 힘겨운 인생을 살았던 그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의 경우처럼 몸에 손을 대신 사건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소경을 고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기신 다음에 그것을 눈에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소경의 눈에 닿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더 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손을 얹어 안수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혀를 만지면서 하늘을 보고 탄식하면서“에바다(열려라)”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앓고 세상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면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넘어서 새 생명이 임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어렵고 힘겨운 이웃들의 손을 꼭 잡아 줄 수 있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河-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3) : 말씀먹기

성경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또한 그를 믿음으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공부 시간에 생명에 괄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갈 단어를 맞춰보길 부탁드리면 대개‘구원’또는‘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미로 보면 틀린 답이 아니지만 요한복음에서는“생명(life)”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에서“양식”은 말 그대로 먹을거리입니다. 목숨을 부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입니다. 성경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했을 때 성경이 영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연애편지 읽는 것처럼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하고 행간에 깃든 의미까지 찾아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메시지를 포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신앙과 삶 속에 내면화 시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하나님 말씀을“맛”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1) 영혼을 새롭게 살려내고, 2) 우둔함에 지혜를 더하고, 3) 마음을 기쁘게 하고, 4) 눈을 밝게 하고, 5)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시 19:7-10).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 하나님의 사람이 체험을 토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맛보고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렉치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라는 성경읽기와 묵상방법을 만들어서 실천했습니다. 렉치오 디비나는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차근차근 꼼꼼히 읽는“읽기(렉치오)”입니다. 두 번째로 읽은 말씀을 마음으로 곱씹는 묵상 (메디타티오)입니다. 묵상은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작업입니다. 세 번째는 읽고 묵상한 말씀을 붙들고 입술로 기도하는 것입니다(오라티오).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갖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으니 이제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말씀 안에서 쉼을 얻는 안식입니다 (콘템플라티오). 안식은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이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부터는 말씀이 자신을 읽도록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집착이나 이기심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온전히 평온함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매일같이 위의 네 가지 단계를 모두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 읽고, 마음에 깊이 다가온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때 살았고 힘이 있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 위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