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2) : 말씀읽기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한 배움과 자라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읽고 먹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나누고,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힘이 있고, 말씀이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 양날이 선 검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할 정도로 대단한 무기였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검’에 비유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상한 골수와 영과 관절을 찔러서 폐부를 드러내고 새롭게 해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단순히 글자(letter)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영(spirit)입니다(고후3:6).

성경을 어떻게 읽으면 이 말씀이 글자가 아닌 영이되고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배우고 익히시면 성경 말씀이 마음에 더 깊이 다가오고, 살았고 운동력있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임을 깨닫고 젊은 시절에 받았던 연애편지를 읽듯이 읽는 것입니다. 연애편지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어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는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를 씁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반복해서 자세히 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말씀 속에 깃든 하나님의 마음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이나 표현들에 줄을 긋거나 따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금세 잊어버립니다. 줄을 그어놓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고, 읽은 말씀을 따로 기록하다보면 그 순간 말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말씀을 눈으로 읽지만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과 동시에 성경을 쓰시는 것도 적극 권장합니다. 어떻게든지 읽은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놓아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반복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는 것과 새번역으로 읽는 맛이 다르고, 한글 성경으로 읽을 때와 영어 성경으로 읽을 때가 다릅니다. 같은 말씀을 읽어도 연초에 읽는 말씀과 연말에 읽는 말씀의 맛이 다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한번 읽고 마는 것은 식사를 한번 만 하고 그만두는 것과 똑같습니다.

넷째,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읽기에서도 폭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읽는 것보다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시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습관화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을 때 성경이 생명의 양식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깊이 읽으면서 주님의 사랑을 느껴봅시다. -河-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1) : 배움

올해 우리 교회의 키워드는 “배움”입니다. 만물 가운데 사람은 가장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서 완전히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가운데 배우고 익히는데 상당 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마치는데 20년이 소요되고 요즘은 대학교육까지 의무처럼 되었으니 학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특징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살면서 배워야 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배워야 하고, 성숙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 배움이 꼭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배움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배워지는 것은 거의 없고 에너지를 들이고 때로는 물질을 투자해서 배워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만큼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지겨운 마음이 들지만 배움의 끝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또한 배움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것을 깨우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배움이 깊어지면 인격이 성숙해지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배우는 학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은 성경에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배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손길과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여갑니다.

올 한해 우리의 배움이 깊어지고 넓어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떼어놓기로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함께 할 때 효과가 배가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꼭꼭 씹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대로 행함으로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이야말로 성경 다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성도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과 이웃을 우리의 스승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책인 셈입니다. 겸손하게 그리고 마음을 열면 최고의 스승들이 가정에 교회에 그리고 우리들 주변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참빛 교회 식구들 간에 풍성한 교제와 깊은 배움이 있길 원합니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북돋아주면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배우고 자라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풍성함을 누리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잠언이 주는 교훈 4 : 인도하심

올해의 마지막 달에 잠언을 한 장씩 읽으면서 지내기로 했는데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 달 뿐만 아니라 2013년도 이틀 남았으니 이제 새해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잠언 말씀의 핵심은‘여호와를 경외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경외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갈망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더욱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결심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갈망하기 원합니다.

잠언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이 언어생활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에 읽은 말씀에도 말에 대한 교훈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에게 조언을 해봐야 지혜로운 자의 말을 무시할 것이니 조심해야 한답니다(잠23:9). 정직한 말을 하면 마음이 기쁘고 가벼울 것이라고 했습니다(잠23:16). 적당한 말로 대답하는 것은 입맞춤처럼 하나 됨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잠24:26). 이웃과 분쟁이 생기면 자기변명을 그치고 남의 비밀은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잠25:9). 경우에 맞는 말은 금으로 아로새겨진 쟁반에 들어있는 사과와 같다고 했습니다(잠25:17).

잠언 후반부로 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을 자랑하지 말라는 하나님 경외가 다시금 강조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순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대로 따르면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결국 잠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생길을 인도해주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하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잠5:21).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그것이 사망의 길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잠14:12). 사람이 마음으로 길을 계획할 찌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잠16:9). 사람이 가는 길을 하나님만 아신다고 가르쳐줍니다(잠20:24). 사람이 자신의 앞길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입의 말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고 앞길을 두고 자신만만할 수 있지만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인생길입니다. 인생의 부귀영화를 모두 경험한 솔로몬의 가르침이니 진리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길을 훤히 내다보시고 약속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입니다:“하나님, 주님 뜻대로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이 최선의 길임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또 한 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아멘! -河-

잠언이 주는 교훈 3 : 입술의 말

생명나무가 잠언에 등장하는 것이 뜻 깊습니다. 잠언을 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잠언에 나오는 말씀들을 지킬 때 이 세상에서도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생명나무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생명의 삶을 사는 방법을 잠언을 통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지혜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갈 때 잠언의 생명나무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마지막 네 번째 생명나무는 온순한 혀였습니다.:”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4). 여기서는 온순한 말과 패역한 말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온순한 말의 의미 속에는 부드러운 말이라는 뜻과 동시에 치유의 말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 언어를 통해서 가능하고 그때 우리의 말이 생명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패역한 말은 속이는 말입니다. 한 군데로 치우친 고집스러운 말입니다. 이런 말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상황을 구부러뜨려서 오해를 사고 혼란을 야기합니다. 온순한 혀 즉 부드러운 말이 생명나무라는 말씀을 통해서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웁니다. 말이 생명나무가 되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치명적인 공격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잠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고스란히 받고 지켜 행할 것을 부탁합니다. 지혜의 말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주는 구원의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리석은 말을 삼가라고 교훈합니다. 어리석은 말은 분별력이 없는 말입니다. 경우에 맞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관계를 끊어놓습니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말은 진실 되지 않고 행함이 뒷받침되지 않은 헛된 말입니다.

잠언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언어를 통해서 형성되고 말을 통해서 우리들의 존재와 삶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에는 창조력이 있고, 구속력이 있고 일을 이루게 하는 에너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인생길이 갈립니다. 언어사용이 삶을 새롭게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줍니다. 언어에는 구속력이 있어서 일단 밖으로 나온 말을 뒤돌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 인생을 이루는 힘이 말을 통해서 생겨나고, 사회의 경우도 말을 통해서 힘이 응집되고 공동체의 대의(大義)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생활은 신앙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18장 12절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죽고 사는 문제가 판가름 난다니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언어는 훈련이고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리는 말을 하기 원합니다. 매일 쓰는 일상적인 말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살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 원합니다.-河-

잠언이 주는 교훈 2 : 생명나무

성경에서 눈에 띠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생명”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누리는 최상의 축복은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eternal life)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생명을 동일시합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선포합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하신 목적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얻었고, 생명을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생명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표현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생명나무”입니다. 성경에서 생명나무라는 표현은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 그리고 우리가 읽고 있는 잠언에만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놓으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선과 악을 판단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가르쳐주시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들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하나님처럼 영생을 얻을까해서 불꽃이 나오는 검으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창3:22).

창세기 이후로 생명나무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 않다가 잠언에 와서 네 번 등장합니다. 첫째는 지혜가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지혜가 곧 생명이라는 것입니다(잠3:18). 신약성경에서 지혜는 예수님과 동일시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확대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의인이 맺는 열매가 생명나무라고 말합니다(잠11:30). 구약 성경에서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의롭게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의인의 열매가 생명나무라는 말씀도 성경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입니다. 소원을 이루는 것이 생명나무라고 했고 마지막 네 번째는 온순한 혀가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입술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줍니다(잠15:4). 이처럼 잠언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확장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되었던 생명나무에 대한 말씀은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 네 번 나옵니다. 그것도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새롭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등장합니다. 구원받는 자들,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에게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십니다(계2:7). 하늘나라에는 생명나무가 심겨져 있고 그 잎사귀들은 치료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계22:2).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생명나무의 회복입니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나무를 소망하고, 잠언에서 배운 생명나무의 법칙을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하면서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잠언이 주는 교훈 1 : 지혜

세상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공부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지만 지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참되고 의미있게 사는 법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그의 인생길을 제시해주고, 지혜가 그의 사람 됨됨이를 결정해 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들은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111편 10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그의 계명[말씀]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사모하는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특별히 구약의 잠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고 하고 새해를 맞는 올 해의 마지막 달에 하루에 잠언을 한 장씩 읽고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는 비결임에 틀림없습니다.

잠언(Proverbs)은 말 그대로 삶의 지혜를 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늘의 지혜를 얻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1절에서 가르쳐줍니다. 잠언이 어떤 말씀인지 가르쳐주는 1장의 초반부에서는 지혜, 훈계, 명철이 말씀과 더불어 등장합니다.“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이라는 1장 3절 말씀을 통해서 잠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의 잠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줍니다.

잠언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구절이 잠언에만 18 번 이상 나옵니다. 잠언의 주제절이라고 할 수 있는 1장 7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목숨까지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잘못행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올 해의 마지막 달에 잠언 말씀을 매일같이 읽고 묵상함으로 우리 안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굳게 자리잡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고 그것을 통해서 험하고 복잡한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우리의 신앙이 세워져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함을 얻기 원합니다.-河-

감사

“감사”라는 말이 우리말 성경에 180번 이상 나옵니다. 그 가운데“감사하라”는 명령이 서른다섯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다보면 감사에 대한 말씀은 물론“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서른 번 이상 듣게 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사하라는 명령을 따라 살면 더욱 좋겠지요. 하루에 서른다섯 번씩 감사할 것을 생각하고 말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부요해지고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본 겸손과 회개와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감사하기보다 교만하거나 높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아등바등 살게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작은 것만 얻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 감사를 느끼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의 자리로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오라고 권면합니다. 염려하는 마음에 감사가 사라집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꽁꽁 얼어붙게 만듭니다. 염려를 떨치고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할 때 감사가 살아나고 어려움을 이길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이처럼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며 엎드릴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 3장에서도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이나 행함에 감사가 넘쳐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시와 찬미가 임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감사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리네 서민들의 경제는 여전히 힘겹습니다.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순간순간 느꼈을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파도가 밀려오듯이 크고 작은 일들이 쉬임없이 밀어닥쳤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주일을 맞게 됨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가운데 젊은 성도님들이 새로 오셨습니다. 교회에 어린아이들이 뛰며 노는 소리만큼 우리들의 마음도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도움의 손길을 사방에서 제 때에 보내주셨고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낮은 자의 자리에 내려가서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가난한 교회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회개의 자리로 나가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되어야 할 부끄러운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기쁠 수밖에 없음을 추수감사주일을 지내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河-

갈망

우리는 4주에 걸쳐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요즘세대는 자신을 한껏 높이고 자랑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만큼 인간의 문명이 발달한 적도 없었기에 인간의 교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에 대한 간절함이나 갈급함이 많이 식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물질적으로 부유했지만 미지근한 신앙을 가졌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이 우리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나가야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 높으신 하나님이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과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회개하게 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회개는 단순이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가 있어야 함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만을 기다리고 구하는 것을 넘어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자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떤 일이 닥치든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신앙으로 자라가길 원합니다.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첫 시간에 읽었던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지난 세 시간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악한 길에서 떠나는 회개와 스스로 낮추는 겸손, 그때 마음에 임하는 감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갈망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간절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믿기보다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있다면 얼른 회개하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갈증을 하나님으로 채움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죄사함과 치유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들어가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합니다. 올해의 남은 한 달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회개

회개 또는 회심이라는 말을 교회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두 가지 경우가 비슷한 뜻이지만 회개(repent-ance)가 앞에 있고 회개한 이후에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회심(conversion)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회심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셈입니다.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현관문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회개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옛 모습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주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유아독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살았던 인생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회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는“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삶,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부정하던 마음,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던 교만함을 깨닫고, 인정하고, 그런 옛날의 삶에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모두 담당해 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죄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옮겨졌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찌꺼기가 남아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이 우리를 죄 가운데로 유혹합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죄가 우리에게 달려 붙는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회개는 매일의 과업입니다. 아니 순간순간 죄의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멋지게 자라가야 합니다. 앞에서 회개를“돌아섬”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비롯한 가치관도 바뀌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가 단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또는 죄책감을 해결하는데 만 머물러서 안 됨을 발견합니다. 회개는 삶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그는 서둘러 내려와서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개했습니다. 말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을 완전히 청산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삶의 변화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향해서“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삶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회개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우리의 남아있는 죄성과 그릇된 행동을 회개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기 원합니다. 회개는 우리 모두를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河-

겸손

2013년 한 해도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았습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맞설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에 시간을 막아보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푸념하기보다 올 해 초 송구영신 예배에서 말씀드린 대로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가 아니라 가치와 추억이 가득 담긴 시간“카이로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봅니다. 시간의 끝이 죽음이기에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어떤 경우는 끝이 있음을 망각한 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구약 전도서 기자의 고백처럼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크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4주 동안“우리의 가난함, 주님의 부요하심”이라는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연속 설교의 제목을“가난한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정했었는데 연말에 너무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에 우리들은 미천하고 가난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부요하시다는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백성들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실제로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거할 집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친히 입히시겠다고 성경 곳곳에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면서 양을 치던 유목민들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 같은 가난한 민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도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나라를 약속하신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고 부요하심을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능력을 자신 안에 가득 채우려는 마음이자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7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한 길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낮추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낮출 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려고 작정을 하신 것을 거두셨습니다(왕상 21:29).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옷을 찢으며 회개하면서 주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왕하22:19). 사자 굴에서 살아났던 다니엘은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겸손하게 살기로 결심한 첫 날부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단10:12). 오늘 본문에서도 주의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주님이 계신 성전에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땅을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낮추는 겸손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경험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지나치게 교만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아가 살아나고 경험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스스로 낮추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이름이 드높여지길 원하십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