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는 교회 (2) : 시편 118편 1

지난 주일에는 코스타 강사로 오셨던 김도현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을 하나님께 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이웃들에게 갚아가면서 사시길 원하실 뿐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이처럼 복음전도와 믿음에 합당한 삶이 곧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진 빚을 갚는 길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올 해 우리 교회 주제처럼 “축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웃들을 축복하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초청할 수 있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받은 복을 더불어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연속 설교 처음 시간에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복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복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부귀영화, 무병장수, 자녀들의 성공과 출세와 같은 세상의 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비할 바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복이 아침안개처럼 없어질 유한한 복이라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리게 되는 복은 영원한 복임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급이 되시는 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눌 복은 예수님을 믿고 누리게 되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그 복을 흠뻑 받았습니다.

오늘 살펴본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두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기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돕는 자들을 붙여주시고 그들과 더불어 주님의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광활한 곳에 세우실 것입니다.

시편 118편의 기자는 고통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광활한 곳에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났기에 담대하게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온 백성을 향해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고통이 밀려오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할 것을 초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받은 복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세상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먹는다고 축복하는 교회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길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축복을 흠뻑 체험해야 합니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그것을 간증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그때 우리들의 말은 물론이고 삶까지 받은 축복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주헌절을 지내면서…

교회력은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회가 여러 절차를 걸쳐서 제정한 교회의 달력(church calendar)입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교회력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가톨릭의 성자들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 교회력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습니다. 교회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전반부 6개월은 예수님의 탄생, 사역, 고난,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들이고, 후반기 6개월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성령과 더불어 동행하는 성도와 교회의 삶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교회력을 따라서 한 해를 보내면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령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주일 예배순서 앞에 교회력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부터 시작됩니다. 성탄절 4주전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실 것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또한 교회력을 상징하는 색깔이 있는데 대강절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온 인류를 구하실 메시야요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성탄절 이후 사순절 전까지의 6주간은 주현절입니다. 주현(Epiphany, “빛으로 나타나심“)이라는 의미대로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public life)를 시작하십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할 메시야이심을 세상에 보이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주현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주현절의 색깔은 흰색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주현절이 끝나고 고난주간 전까지가 사순절(Lent)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되는데, 금식과 선행 등을 실천하면서 1년 365일 가운데 10분의 1이 조금 넘는 40일을 경건하게 보내게 됩니다. 사순절의 색깔도 대강절과 마찬가지로 보라색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거룩한 삶을 통해서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면 고난주간(Passion week)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우리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기로 결단하는 기간입니다. 고난주간의 색깔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빨강입니다. 고난 주간이 끝나면서 곧이어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절기입니다. 부활주일의 색깔은 흰색입니다. 부활주일 새벽에 흰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활절 후 7주간이 끝나면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의 약 6개월 기간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강조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순절 이후부터 그다음 대강절까지 긴 6개월 동안의 색깔은 초록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과 신앙의 성숙을 뜻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력을 따라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매주간 주보에 있는 교회력을 따라서 올 한해를 주님과 동행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축복하는 교회 (1) : 참된 복

새해를 맞아서“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물론 우리들 자신도 누구를 만나든지 똑같은 인사를 건넵니다. 이처럼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누구나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으시면서 과연 여기서 말하는 복이 무엇일까를 잠시라도 생각해 보셨는지요? 교회에서 말하는 복이나 옛날 우리 조상들이 뒤꼍에 냉수를 떠놓고 새벽정성을 드리면서 복을 비는 것과 같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복” 또는 “축복”에 대해서 성경적인 관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하나님을 믿고 복 받는 것이나 조상들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면서 복을 빌던 것을 똑같은 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같은 동양인들이 복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칫 우리의 신앙도 기복주의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실제로 교회에 나오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녀들이 출세하는 형통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믿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녀들에게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부모를 공경할 때 장수의 복도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단지 세상에서 누리는 복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우리들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에베소서 1장 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신령한”이라는 말에서부터 세상의 복과 차이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다윗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가장 큰 상급”(창15:1)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요 축복입니다. 시편 73편 28절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복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복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 속에 간섭하시고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질이나 장수에 대한 복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물질의 복은 물론 건강과 자녀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믿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복을 많이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열심히 믿으라는 표시입니다. 만약에 조금 가난하고 세상에서 그리 출세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알고 영생의 삶을 누린다면 그것 역시 똑같이 복된 인생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기준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축복하는 교회”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믿고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해서 그것을 갖고 세상을 축복해야 함을 깨닫습니다.“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믿읍시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와 참빛 교회 식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2012년을 맞으며

새해 첫날입니다. 어제 저녁 송구영신예배로 모였고 또 다시 새해 첫날 신념감사 주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새해 첫 번째 날이 주일인 경우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새해 첫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래서 올 한 해가 더욱 은혜가 넘칠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작년이 교회적으로 매우 뜻 깊은 해였다면, 새해는 이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부흥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올 해 우리 교회 주제가 “축복하는 교회”입니다. 가만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복이 자꾸만 생각나서 나중에는 하나님께 불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더 많은 것을 받기 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는 욕심과 집착을 보이곤 합니다. 올 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원합니다. 축복을 받는 교회에서 축복을 하는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서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였을 때, 서로 축복하기 원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이웃을 축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와 미국을 축복하고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도 축복하기 원합니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축복을 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늘의 복이 전해질 것을 믿고 기대하기에 마음껏 축복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의 인사가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로 확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마음으로 말로 또 우리의 행함으로 축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 원합니다. 외국 사람들에게도 “God bless you”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 자신이 복의 통로로 손색이 없는 정결함과 투명함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닮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릇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겸손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 복이 우리 안에서 차고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출구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게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모두 진실된 신앙을 갖기로 결심하고 애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어디서나 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은 힘이 있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가 되기로 함께 결심하고 그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둘째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있고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매사에 어떤 일을 앞두고잠시 멈춰서“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깁시다.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 된 공동체로 만들 것입니다.

셋째로, 한 해 동안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토요일은 새벽기도회에 오셔서 주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기도가 우리를 힘입게 만들어줍니다.

올 한해도 참빛 교회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울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주님 안에서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한 분 한 분을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河-

잠언이 주는 교훈 (3)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위주로 세상을 삽니다. 자기 마음에 맞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쾌하고 그릇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심하게 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갑니다. 소위 줏대가 없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물질중심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 즉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물질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이 많이 등장합니다. 부유함은 부지런히 산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잠11:16), 물질로 친구를 사귀는 등 재물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간과하지 않습니다(잠9:4).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 때에 물질의 복도 주신다는 말씀도 나옵니다(잠 22:4). 하지만 불의의 재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잠 11:4).

무엇보다 잠언 말씀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최고의 행복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최우선에 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는 첫 번째 시간에 세 가지로 정리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을 실제로 두려워하는 삶,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삶. 잠언 말씀을 읽어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이 나오는 구절들을 따로 노트해보시면 하나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금방 깨닫게 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자신감(confidence)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기에 자신 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감보다는 절망 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물질도 금방 없어지고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기에 궁극적인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자신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데서 옵니다. 여기서부터 이웃사랑도 나와야 하고, 세상에서의 형통함도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the fountain of life)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핵심이 빠지면 나머지 것들도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자동차에서 엔진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자동차라도 단지 고철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할 때 그 복이 우리 자녀들에게도 임합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26절)

여호와를 경외할 때 사망의 그늘이 우리 곁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의인의 삶을 걸어갈 때, 죽음의 순간에도 피할 길이 열리고 소망을 얻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 백성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원천입니다.-河-

잠언이 주는 교훈 (2)

잠언을 한 장씩 읽어가면서 올해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잠언 말씀을 읽고 묵상하신 분들은 잠언이 가르쳐주는 지헤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지 실감하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줍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의인화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잠언 1장 20절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인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지혜에 해당하는 단어가 “호크마”인데 이것은 여성명사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잠언에서는 지혜를 여성처럼 그리고 인격화해서 지혜가 우리를 부르고 초대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지혜를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지혜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야함을 깨우쳐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대조해 가면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 깨우쳐줍니다. 우선, 속이는 저울과 공평한 추입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저울을 미워하십니다. 반면에 공평한 추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속임수와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평과 정직을 쫓아 살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정직과 패역도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정직은 안과 밖이 같은 것입니다.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것이 곧 정직입니다. 반면에 패역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으 패역입니다. 정직한 길을 좇아갈 때 그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6절에서 다시 한번 정직과 패역을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고 패역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멸망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직한 길에 서야 합니다. 그 길이 살길이요 구원의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멸시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2절). 지혜는 남을 비난하거나 깍아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철한 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잠잠히 있을 뿐입니다. 남의 것을 참견하고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묵묵하게 주어진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멸시하는 구체적인 예가 13절에 나옵니다. 두루 다니면서 험담을 하는 것은 이웃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말이 많으면 남의 비밀을 여기저기에 퍼뜨리게 됩니다. 물론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입이 무거운 것이 좋습니다. 입술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실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남의 비밀을 숨겨주고 도리어 그것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해 줍니다.

지혜를 따라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알고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주님의 백성들은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살리는 길에 섭니다. 지금까지 읽으신 잠언 말씀에 “생명”또는 “생명나무”라는 말이 여러번 반복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오늘도 지혜가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도록 초대합니다. 잠언을 읽어가면서 우리의 삶이 하늘의 지혜로 가득 찰 수 있기를 바랍니다. -河-

잠언이 주는 교훈 (1)

12월 한 달은 잠언을 하루에 한 장씩 읽어 가면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잠언은 시편과 전도서와 더불어 구약성경에서 성문서에 속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성문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편) 사랑하며(아가서), 세상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행실로 살아야하는지 (욥기, 잠언, 전도서)를 가리켜주는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하늘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자세히 가르쳐줍니다. 전통적으로 잠언은 솔로몬 왕이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지난주까지 살펴보았던 말씀의 주인공이기도 한 솔로몬왕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참빛교회 식구들께서 솔로몬의 잠언을 매일같이 읽으시고 하늘의 지혜를 구하시면서 새해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잠언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왕 솔로몬의 잠언이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샬”은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지혜나 지혜의 스승들이 전해주는 짧은 경구(警句)를 가리켰습니다. 또한 비유라는 뜻도 있는데 실제로 잠언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들을 비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의 삶을 개미의 움직임에 비유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처럼 잠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교훈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잠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혜, 훈계, 명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잠언이라는 말의 해설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위해서 잠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의롭고 공평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모습이고 세상에서는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슬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처세를, 지식과 근신은 앞길이 밝은 젊은이들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그것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넷째로, 이미 지혜롭고 명철한 자들에게는 학식과 지혜를 더욱더 알려서 더 깊고 오묘한 지혜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쉬지 말고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잠 1:7).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믿음과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잠언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올 한해를 마무리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온 세상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해를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잠언 말씀 속에 숨겨놓으신 하늘의 지혜와 교훈을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내시고 삶 속에 그대로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께 아름다운 관과 금 목걸이처럼 존귀하고 아름다운 하늘의 지혜로 장식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기도하는 집 (4)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뜻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면서 드린 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되길 기도했습니다. 성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임하고 밤낮으로 하나님의 눈과 귀가 성전을 향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누구든지 성전에 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죄를 짓고 어려움이 찾아 왔을 때 죄를 돌이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쳐서 꼼짝달싹할 수 없을 때도 성전에서 손을 펴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전에 나와서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까지 들어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성전에 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갔거나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있는 자리에서 성전을 향해서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건물에 불과합니다. 동시에 성전에서 기도가 끊어진다면 하나님의 전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눈이 주야로 성전을 향하시는 것은 주의 백성들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참빛 교회 성전이 만민이 나와서 기도하는 집이 되길 원합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마친 솔로몬이 이제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을 축복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축복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가만히 헤아려보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년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디로 갈지 몰랐고 때로는 우리의 생각을 고집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정해놓으신 시간표에 따라서 정확하게 일하셨음을 우리 모두 체험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참빛 교회 식구들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정확하게 일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연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몸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도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백성들과 더불어 고백하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빠짐없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손색이 없는 신앙과 삶을 겸비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상 만민들이 우리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들이 복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전해지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빛교회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기도하는 집 (3)

토요일 새벽기도회에서는 이사야서 56장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이사야서는 후반부로 가면서 심판에 대한 예언에서 구원과 회복에 대한 말씀으로 바뀌고, 구원의 지경이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서 온 세상 사람들로 동심원처럼 퍼져 나갑니다. 이사야서 56장도 모든 민족의 구원에 대한 말씀을 여는 서문과 같은 장(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민족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어려웠고 하나님 역시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56장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과 연합하여[믿고]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종[백성]이 되어서 주님의 말씀과 약속을 지키는 경우에 해당하지만, 구약시대에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솔로몬왕은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믿는다면 성전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 와서 크고 높으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능력이 임한 신약시대라면 당연히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임하지만, 예수님 이전의 구약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이방인들에게 성전을 개방한 것 역시 굉장한 파격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성전의 문은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사야서 56장 7절에서는 이것과 연관해서“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누구나 성전에 와서 손을 펴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서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전쟁터에서 주님의 성전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길 솔로몬이 간구합니다. 우리들의 경우 세상의 삶이 전쟁터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으로 우리를 보내셨기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있는 자리에서 성전을 향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돌봐 주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우리들안에 여전히 죄악된 모습이 남아서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고 해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성전을 향해서 하나님께 회개와 결단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그리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주의 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누리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참빛교회 새 성전에 주님의 이름이 임하고, 모든 사람들이 와서 주님께 부르짖는 기도하는 집이 되길 원합니다.-河-

기도하는 집 (2)

새 성전에서 모이는 두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자체 건물을 갖게 된 것은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일입니다. 새로운 예배처소를 주시길 열심히 기도했지만 우리의 기도가 이토록 빠르게 현실로 이루어질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때(time)를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올 봄에 저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친히 인도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였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교회를 통해서 체험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에 5분씩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렸고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임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교회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성전까지 갖게 된 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밤 10시에 기도하던 것, 하루에 5분씩 기도하던 것도 계속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이“항상 기도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비결입니다. 무엇보다 새벽기도회에 많이 오셔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연속해서 살펴보는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솔로몬 역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임할 것을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고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오늘 본문은“만일”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구절이 4번 나옵니다. 만일로 시작되는 말씀은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일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주님께 죄를 짓고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회복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민족이 주님께 죄를 범해서 가뭄과 기근과 같은 자연재해가 임했을 때에도 성전에 와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를 내려 주신답니다.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도 성전에 나와서 손을 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하나님과 세상을 잇는 장소입니다. 무엇보다 죄를 범한 자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 성전이 말 그대로 기도의 집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더 기도로 세워지고 기도의 사람들로 가득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