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변화 (2007.1.28)

“삭개오의 용기”, “삭개오의 구원” ‘삭개오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전한 삭기오에 대한 말씀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삭개오는 어쩌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식민지하에서 세리장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겁니다. 비록 백성들에게 착취한 것이지만, 삭개오는 상당한 재산도 모았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 외에도, 세리라는 직업으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자기 배를 불렸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살아있었다면 밤마다 괴로움에 시달렸고 무척 외로웠을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창피를 무릎쓰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을 것입니다.

이런 삭개오를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에게 찾아 오셔서 우러러 보시면서 삭개오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삭애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복음(福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집에 머물겠다는 의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의 집에, 삶의 집에 머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계3:20). 그 말을 듣고 나무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삭개오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그때부터 삭개오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삭개오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숨기고 핑계대는 것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죄까지 드러내놓고 고백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동안 남의 재산을 탈취하면서 살았다면 이제는 나눠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죄인”에서 “아브라함의 아들”로 지위가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삭개오에게 임한 행복한 변화가 우리에게도 그래도 임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놀라운 스타트 (Wonderful Start)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은혜를 힘입는다는 사실은 매우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말이나 논리로 설명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비(mystery)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서 경이로움을 종종 경험합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깜짝 놀랄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임한다면 온 몸이 얼어붙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사건은 정말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그 사람은 이름도 없습니다. 그냥 40평생을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며 살았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으니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업어다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운 사건이 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의 구걸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힘차게 외칩니다.:“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돈을 던져주는 손만 보면서 평생을 보낸 앉은뱅이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베드로가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즉시 앉은뱅이에게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만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발을 뛰어보니 걸을 수 있습니다. 뛰어보니 뛸 수도 있습니다.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앉은뱅이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렇게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40년 묵은 타성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신비로움과 경이 속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새해를 예수 이름의 권세로 삽시다. 일어납시다. 걸어 봅시다. 뛰면서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河-

삭개오의 구원 (2007.1.21)

지난주에 이어서 삭개오에 대한 말씀을 시리즈로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과 키가 작다는 열등감을 뒤로 한 채 용기를 내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예수님께서는 뽕나무 위의 삭개오에게 찾아 가셔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하겠다”(눅19:5)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나무에서 내려와서 그동안의 삶을 회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라”(눅19:9).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악명 높은 세리였습니다. 재물은 많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삶은 분명히 불만족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니 외로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키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테니 신체적인 열등감이 그를 괴롭혔음에 틀림없습니다.

삭개오는 용기를 내서 예수님을 찾는 자리인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신앙에는 어느 정도의 모험과 용기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의 삭개오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회개했습니다. 세금을 과하게 부과해서 손해를 입힌 것이 있다면 율법의 최고법인 네 배로 보상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회개와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입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과거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새로운 삶을 향해서 달려 나가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복음 안에서 힘차게 앞으로 나갑시다. -河-

삭개오의 용기 (2007.1.14)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예루살렘에서 약 17마일 떨어진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입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이면 로마 식민지하에서 나름대로 출세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동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둬야하는 그의 직업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키가 작은 그의 외모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문을 듣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키가 작은 삭개오는 군중 틈으로도 예수님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자존심을 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키가 작다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요, 사람들의 핀잔과 조소를 스스로 유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한번 뵙고 싶다는 삭개오의 열망 앞에 사람들의 이목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 – 이곳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던 자리였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도 올라가야 할 뽕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삭개오가 달려가서 쉽게 올라갔듯이 뽕나무는 우리들 가까이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뽕나무에 올라가려는 용기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버릴 것이 있습니다. 자존심입니다. 때로는 무시할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직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꼭 만나 뵈리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외롭고, 삶이 힘겹고, 자신의 현재 모습에 실망스러울 때는 우리들 삶 속에 드리워진 뽕나무로 달려갑시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찾아오셔서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만나주실 것입니다. -河-

굿 스타트 (Good Start)

2008년 새해를 맞아서 “시작(始作)”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무슨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아서 어떤 열매가 맺게 될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지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그런데 시작에서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일의 성격입니다. 어떤 경우는 동기가 그릇되어서 시작과 상관없이 그 결과가 보기 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시작의 동기와 목적을 점검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는 “착한 일”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착한(선한)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거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착한 일의 범주에 들지 않습니다. 착한 일은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을 하라고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서는 자신을 깨끗이 해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그릇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에 사용하신다고 교훈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넉넉히 하려는 것이라고 깨우쳐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에 쓰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실 뿐 아니라 친히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시작해 봅시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순수한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나는 선한 일입니다. 큰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아시면 됩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굿 스타트  (Good Start) – 한 해를 훌륭하게 시작합시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비결은 바로 착한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올해 내내 “예수 믿기 잘했다”는 행복한 고백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