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배자 (4): 노아/ 창세기 8장 20-22절
성경 속 예배자 (4): 노아/ 창세기 8장 20-22절
노아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서 보았듯이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점점 빗나갑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나무 뒤에 숨었던 아담과 이브에 비해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묻는 가인의 모습은 훨씬 뻔뻔합니다. 이처럼 에덴을 떠난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의 정도가 심각한 지경으로 악화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땅에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근심하고 한탄하십니다:“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창 6:5-7).
하나님께서 물로 땅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십니다. 땅에서 인류를 없애고, 당대의 의인이자 완전한 자인 노아와 그의 가족만 구원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로 계획하십니다. 노아는 당시 모든 사람 가운데 맨 앞에 서 있는 최고의 의인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산에 방주를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조롱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심판의 날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짐승 가운데 암수 둘씩,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방주에 들여보냅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생물들만 남고,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은 홍수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밤낮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게 150일이 되었을 때, 배가 아라랏산 중턱에 멈추고 땅이 마르고 새로운 식물이 자랐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 문을 열어서 모든 생물을 풀어줍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제2의 창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가 드린 번제의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노아는 홍수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첫 번째 시간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당대의 의인답습니다.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무지개가 하나님 언약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동물을 먹을 수 있지만, 생명의 상징인 피는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노아 이후의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河-
성경 속 예배자(3): 가인과 아벨 (3)/ 창세기 4장 9-24
가인과 아벨 (3)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특히, 독립 선언서를 준비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개신교 인사가 다수였습니다. 이분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으며, 우리도 미국에서 자부심을 품고 살아갑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독립운동가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간직해야겠습니다.
성경에 처음 나오는 예배자들인 가인과 아벨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 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마음과 태도가 언제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릇된 모습이 발견되면 다음에 고치면 됩니다. 가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 하나님을 향한 섭섭함이 분노로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셔서,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으니, 죄를 다스리라고 당부하십니다. 이와 관련해서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팀셸”이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의미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부탁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동생 아벨을 데리고 들로 나갑니다. 그리고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불리게 된 슬픈 사건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죄로 발전했고, 동생을 죽이는 어이없는 엄청난 잘못을 범했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11절)는 말씀이 안타깝게 들릴 뿐입니다. 아벨(히브리어 ‘하벨’)은 전도서에 나오는 “허무함”에서 왔는데, 그의 이름처럼 한숨 같은 허무한 인생을 살다 갔습니다. 신약 성경의 세례 요한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죽으신 예수님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았듯이, 히브리서 말씀대로 아벨의 믿음은 대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가인은 태연하게 자신은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가인의 말은 뻔뻔하게 들립니다. 죄를 범한 이후에 가인의 말과 태도는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서 완악해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은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고, 그가 농사를 짓는 땅에서 저주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계가 끊어지는 벌입니다.
가인은 회개는커녕 하나님의 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투덜댑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이마에 표시하셔서 사람들이 가인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가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河-
성경 속 예배자 (2): 가인과 아벨 2/ 창세기 4장 6-7절
가인과 아벨 (2)
<성경 속 예배자>라는 주제의 연속 설교 가운데 창세기 가인과 아벨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예배자입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였지만,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아 주셨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본문이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을 갖고 설명해 보았습니다:“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물론 창세기 본문에는 아벨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대신, 아벨이 자신이 키우던 양들 가운데 첫 번째 새끼를 갖고 각을 떠서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에서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면, 가인은 땅에서 추수한 열매로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물과 제사법에 비해서 가인의 제물은 밋밋합니다.
아벨이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것은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형식은 같았어도, 제사를 드리는 마음(정성)은 아벨이 앞섰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의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생각하면, 공평성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전통적인 해석이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를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를 거부한 것을 두고 형 가인이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를 냅니다.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해서 가인이라는 사람을 거부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가인을 찾아오셨고, 행여나 가인의 분노가 더 큰 죄로 발전하는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시작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가인이 얼굴을 들지 못하는 모습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나무 뒤에 숨은 것이 생각납니다. -河-
성경 속 예배자 (1): 가인과 아벨 2/ 창세기 4장 1-4절
가인과 아벨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선의 길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거하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는 물론 세상 속에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곧 예배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배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광야의 성막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후에는 성전에 모여서 다같이 예배했습니다. 바빌론 포로 기간에는 가정과 회당에서 예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에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면서 교제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으로 펴져 나가면서 각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 시대 모두 자신의 백성을 예배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이 두루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개인과 가정, 민족과 공동체들입니다.
앞으로 “성경 속 예배자”라는 제목으로 성경에 나오는 예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간의 제약으로 전수 조사하듯이 성경 속 모든 예배자를 공부할 수 없습니다. 대신,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배자들의 모습을 함께 나누면서,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참된 예배자로 신앙의 길을 가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예배자는 가인과 아벨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낳은 형제들입니다. 이브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가인(얻음)”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분명하지 않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이브가 주도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이어서 둘째 아들인 “아벨(헛됨)”을 낳았습니다.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형 가인은 농사짓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가인과 아벨이 각자 준비한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河-
찬송가 해설 (15):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마태복음 13장 44-46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요즘 금과 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답니다. 전쟁 등 세상이 불안하니 안전 자산인 금과 은을 사 모으고, 거기에 왠지 귀금속을 갖고 있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포모(FOMO)까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금이나 은이 실제 산업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경우 대부분 희소성의 가치 때문에 금을 사 모읍니다. 온 세상이 금과 은으로 이뤄져 있고,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황금을 돌처럼 볼 텐데 말입니다.
연속 설교 중간에 찬송가에 깃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영어 가사 첫 구절은 “나는 은과 금보다 차라리 예수님을 선택하겠습니다”입니다.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하는 금과 은보다 예수님이 더욱 귀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예수님께서 천국을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모든 재산을 팔아 밭을 삽니다.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밭에 숨겨진 보화를 보았습니다. 천국에 예수님을 대입하면 오늘 우리가 배우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라는 찬송가 가사가 됩니다.
요즘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 많습니다. 금과 은과 같은 보화들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가운데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면, 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산 사람처럼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찬송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던 밀러(Miller, 1894-1966)부인이 작사한 찬송입니다. 밀러 부인은 돈만 생기면 술을 사먹는 아버지가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아버지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로 시작하는 간증을 하였고, 앞에 앉아 있던 밀러 부인은 아버지의 간증을 정리해서 찬송시로 만들었습니다.
밀러 부인의 찬송시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찬양으로 섬기던 조지 셰이(George Shea,1909-2013)는 그의 어머니가 손 글씨로 써 놓은 밀러 부인의 시를 발견하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 없네”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