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나는 새를 보라 2 : 돌아옴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자기의 처음 서식지나 알을 낳는 곳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귀소본능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연어입니다. 태평양 바다에 있던 연어들이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잊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간직해 둡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귀소본능입니다.

새들에게도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제비가 대표적입니다. 철새인 제비는 추녀 끝에 지푸라기와 진흙으로 지어 놓은 집을 이듬해에 와서 다시 사용하기도 합니다. 비둘기도 귀소본능이 뛰어난 새입니다. 노아가 홍수가 끝났을 때 까마귀를 먼저 내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비둘기는 두 번씩이나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은 비둘기 우편제도를 활용할 정도입니다. 어떤 새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니 새를 비롯한 동물들의 귀소본능이 대단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영적인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인간에게는 절대자를 찾고 자신의 창조주에게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초월적인 신을 찾고 믿으려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믿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예레미야 8장 4절 말씀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뜻대로 살면 좋을 것 같지만 끝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예배하는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예레미야 8장 7절에는 철새들의 이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전 600여년 경에 철새의 이동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대단해 보입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학(황새)는 정한 시기를 안다고 했습니다. 철새들이 정확한 시기에 맞춰서 이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황새뿐만 아니라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도 철새로 언급됩니다. 물론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꼭 똑같지는 않지만 세 가지 종류 모두 철새들입니다. 철새들은 계절에 맞게 옮겨 다니면서 서식합니다. 그들이 가야할 곳을 알기에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자신들의 살길을 찾습니다.

귀소본능을 가진 동물들과 철새를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늘에 철새가 목적지를 향해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절을 좇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제 멋대로 사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매 순간 철새들이 살길을 찾아서 날아가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살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성경에서는 회개라고 합니다. 죄악된 세상에 살지만 일주일에 한번 주님께 돌아와서 예배합니다.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합니다. 철새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서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다음 한 주간 우리들의 발걸음이 매 순간 주님께로 향하길 원합니다. -河-

공중나는 새를 보라 1 : 도우심

지난 달 초에는 야외예배로 모였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공중 나는 새들을 보면서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존 스토트 목사님의 “새”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영국 성공회 신부님으로 작년에 작고하셨는데 성경과 신학에 대한 저술은 물론 사역을 통해서 복음주의 교회를 이끌었던 훌륭한 지도자셨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신학과 목회 외에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관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가운데 새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셔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는 새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를 방문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앞으로 스토트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새: 우리들의 선생님>이라는 책을 참고해서 새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9,000여종의 새들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약 10여종이 넘는 새들이 등장합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새는 노아의 홍수때 땅이 말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노아가 세상으로 내 보냈던 까마귀입니다(창6:7).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 물이 마르기까지 공중을 날아다녔습니다. 두 번째로 내보낸 비둘기는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그릿시냇가에 숨었을 때 까마귀가 그에게 음식을 날라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까마귀 새끼를 먹이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를 길조(吉鳥)로 여기지 않습니다. 까만 색깔과 음산한 울음소리 때문입니다. 실제로 까마귀는 농산물을 해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썩은 고기를 먹는 등 좋지 않은 행동을 한답니다. 까마귀들은 우두머리 없이 각자 생활하는데 여기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반면에 까마귀는 암컷이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수컷이 먹이를 공급해 줍니다. 거동하지 못하는 어미 새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렇다고 까마귀가 결코 아름다운 새는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도 까마귀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레11:15,신14;1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는 까마귀 새끼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욥기 38장 41절에서는 까마귀 새끼가 먹이를 찾는 모습을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처럼 묘사합니다:“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하나님께서 울부짖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예비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공중 나는 새들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도 먹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먹잇감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새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들이야말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해야 합니다.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움직여야 합니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잽싸게 가로채야합니다. 때로는 자기보다 큰 맹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주의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함을 공중 나는 새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울음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먹을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도우심이 참빛 교회 성도님들 모두에게 매일같이 임하길 간절히 원합니다.-河-

광야길이 주는 교훈 4 : 신실하심

광야길이 주는 교훈이라는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광야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역설적으로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삭막한 들판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모든 것이 힘겹고 막막합니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광야 길을 가고 있으면 때때로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야는 심판과 시험의 장소입니다.

광야에 대한 또 다른 성경적 의미는 광야가 하나님의 먹이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광야의 삭막함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광야의 고독함이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무엇보다 광야는 세상과 단절된 영적인 장소가 될 수 있기에 초대교회 이래 신앙훈련을 위해서 광야로 나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광야는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을 뜻합니다. 사방이 막혀있는 인생의 광야 길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하늘길만 열려 있습니다. 절박함 가운데 찾는 하나님이기에 신앙의 순수함과 간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광야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더 많이 체험했다는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광야 길을 신앙 가운데서 견뎌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겸손하게 받아드릴 줄 아는 아량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광야길이지만 하나님의 훈련과 인간의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광야 길은 지나가는 길이지 결코 광야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모세의 설교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광야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광야에서 체험한 하나님을 잊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광야에서 훈련했던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간직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 신앙을 잃어버리면 약속의 땅이 축복이 아니라 심판과 저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광야보다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의 땅은 아름답고 풍부한 곳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해가 될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인도해 주셨건만 자신들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자랑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약속의 땅의 풍요로움에 도취되어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버리고 세상 방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버거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면 세상 민족들이 멸망하듯이 똑같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자신이 세운 언약을 분명히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광야 40년을 지내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없이 낮추셨고 이를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의 끝에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16절). 아멘! -河-

광야길이 주는 교훈 3 : 인도하심

광야와 같은 인생길이지만 우리가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속단하다가 그만 벌을 받아서 광야 40년을 지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광야 40년을 훈련의 기간으로 삼으셨고 도리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는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먹을 음식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무도 먹어보지 못한 신비로운 음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셔서 40년 동안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루 양식만 거두는 훈련을 통해서 매일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것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족하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삭막한 광야에서 자신의 백성이 길을 잃지 않도록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렇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먹이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기에 광야 생활을 견딜 수 있었고 드디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을 때는 광야생활의 끝도 이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소개합니다. 그곳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광야 40년의 고생을 보상받고도 남을 멋진 곳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신명기 8장에서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곳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껏 기대감을 불어넣어줍니다. 이제 고생 끝이라는 것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길에도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내리막길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 닥쳐도 6절에 있듯이 첫째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며, 셋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루치 만나만 거두라는 말씀을 그대로 따르면서 매일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힘든 순간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더욱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도 하나님의 함께하심 속에서 광야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길은 순간순간 닥쳐옵니다. 아니 인생 전체가 어떤 면에서 광야길입니다. 인생의 광야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아름다운 땅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 앞에 있음을 믿고 끝까지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河-

광야길이 주는 교훈 2 : 먹이심

“인생길은 광야길이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한 평생 살아가는 인생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광야의 특징 그대로 외롭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광야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막막함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광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가 내포하고 있듯이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로 나가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후였기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셨을 것입니다. 그때 마귀가 돌을 갖고 떡을 만들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고 응답하셨습니다(마4:4).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갖고 마귀의 시험에 말씀으로 응수하신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히 반대하십니다(마4:7). 셋째는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줄 것이라는 권력의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역시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만 섬기라는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이처럼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임과 동시에 마귀의 유혹이 있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신명기 8장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음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벌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광야는 낮아짐의 훈련 장소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지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광야가 주는 교훈이 또 들어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먹이심과 공급하심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는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날마다 진영에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루 분 양식만 거둬야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라는 훈련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서 먹이신 것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훈련시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을 살려주신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걸어가는 인생의 광야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가 지치고 힘든 여정이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우리를 필요를 채워주시는 손길입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먹이시는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어려울 때 함께 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공급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河-

광야길이 주는 교훈 1 : 낮추심

인생길을 가다보면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정상에 있는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산등성이를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니 우리 인생의 대부분이 골짜기를 걷는 삶이 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늘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타락한 세상에 살아갑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실낙원, 낙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왜곡됩니다. 땅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냅니다. 인간은 물론 이 땅에 살아가는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합니다. 한번 들어온 죄가 창조질서를 구부러뜨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질서정연한 세상을 만드셨건만, 인간의 죄로 인해서 다시금 세상은 혼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타락한 세상에 살다보니 모든 것이 예측불허입니다. 악이 고난을 가져다줍니다. 잘못된 세상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인간관계는 물론 세상의 질서들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 살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들 안에 남아있는 죄성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자초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4주간동안 살펴볼 신명기 8장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직선도로로 가면 일주일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으니 그들에게 닥친 고난이 엄청났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인생길도 지름길만 다녀야하건만 4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낸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다가 그만 일종의 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일을 행하시던지 그 안에 선하신 뜻을 품고 계십니다. 설령 자신의 백성들이 그릇행해서 벌로 광야 40년을 거치게 하셨지만 그 안에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우는 광야 길의 교훈은 첫째로 광야 40년이 낮추심의 훈련이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비하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최고의 힘은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내면서 교만은 물론 자기비하까지 모두 없애고 진정한 겸손, 낮아짐의 훈련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둘째로 신뢰의 훈련이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광야의 훈련이 길어질수록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줄 하나님도 아셨기에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신뢰의 훈련을 시키시면서 훈련과정에 징검다리를 놓아주신 셈입니다.

우리들도 인생의 골짜기를 힘겹게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듯이 인생의 광야 길을 낮아짐과 신뢰를 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생의 광야길을 겸손하게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바라보는 시간으로 만들기 원합니다.-河-

참 아름다워라

오늘은 우리 교회가 격년으로 갖는 야외예배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드리는 예배이기에 더욱 은혜가 넘칩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노래합니다.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들꽃의 영성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기쁜 마음으로 야외로 나오신 참빛 교회 식구들의 모습이 자연과 잘 어울릴 만큼 아름다우십니다. 잘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세상 시름을 모두 잊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찬송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찬송해도 광활한 자연에 묻힐 것입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는 가끔씩 딴청을(?)하셔도 괜찮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십시오. 새가 지나가면 바라보시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면서 온갖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해 내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신 꽃보다 아름다우신 성도님들을 지긋이 바라보시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이렇게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기 원합니다.

야외예배에서는 성도의 교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풍성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다이어트 생각하지 마시고 배가 불룩할 만큼 육의 양식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었습니다. 식탁을 함께 나누면서 마음을 나눈 것입니다. 정다운 담소와 격려 그리고 서로를 향한 기도제목도 함께 나누는 식탁의 교제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풍성한 먹거리 앞에서 가난하고 주린 이웃들을 늘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본문입니다.

온 교우들의 친교시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선교회에서 놀이와 운동 그리고 성경퀴즈까지 다양한 순서를 준비했답니다. 옛날 가을 운동회의 추억을 되살리시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웃고 즐기는 친교의 시간을 통해서 서로 간에 다소 서먹했던 관계들이 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참빛 가족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처럼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도 근처 공원에 나올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맛보고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내고 감격하길 잊고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을 호흡하기 원합니다. 신앙적으로는 물론 우리의 육신도 재충전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야외 예배를 준비하신 남선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한 교회로 불러주시고 서로 사랑하면서 참빛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뛰놀며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흥겨운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야외예배에 오신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河-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으로 시작했던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사방에 흩어져있던 뼈들이 모여서 골격을 이루고, 거기에 살이 붙고 가죽이 입혀지는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생기가 불어넣어지자 흩어졌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죽어있던 뼈들이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모습은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을 연상케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3절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것을 두고 소속이 달라서 생긴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불순종하는 그룹에 속해있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의 유행을 따랐고, 육체의 욕심을 채우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곧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한없이 크시고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죽어있던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그대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살렸고 결국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리셨듯이 은혜로 우리를 살리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입니다. 에베소 2장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 구원을 누리는 매스터 키가 곧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은혜로 인도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이뤄지는 프로세스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릴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구원을 두고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존재라는 뜻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군대가 된 것도 하나님께서 손수 하신 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을 새롭게 지으신(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서 세상 풍조와 육체의 욕심을 쫓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사명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도 자신의 성품은 물론 가정과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른 뼈가 살아난 하나님의 군대, 죄와 허물로 죽었다가 은혜로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길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을 걸어가시는 근사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河-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지난주에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죄와 허물로”죽어있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여기서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자기가 왕입니다. 신앙의 세계인 영적인 부분을 알지 못하기에 육체가 원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충동적인 삶이되기 쉽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살아가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기에 세상 풍습을 쫓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 곧 허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고 그 예수님을 마음에 믿으면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십니다. 또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에 깃든 구속의 은혜입니다. 우리 혼자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가운데 진행됩니다.“은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곧 선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주관합니다. 선물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거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이 곧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이 선물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 자신의 것(선물)으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6절에 있듯이 1)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것, 2)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보상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임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믿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는 그 순간 믿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지속적인 자라감입니다. 한번 믿고 마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또는 상황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으면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은혜로 임한 구원의 선물이 활동하고, 구원의 은혜가 넘치게 임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행위를 따라서 나눠주신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저 선물로 받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이 세상사는 동안 서로 격려하면서 믿음의 공동체/구원 공동체를 은혜 가운데 세워 갈 뿐입니다.-河-

너희를 살리셨도다

지난주에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나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생기(영)가 임하면서 다시금 생명을 회복하는 예언이었습니다.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랬을까요? 우리들도 마른 뼈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절망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뼈들이 모이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붙고 마지막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듯이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요약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사랑”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크고 넓은 주님의 사랑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이웃과 세상에 나눌 때 사랑이 완성될 것입니다. 신앙을 요약하는 또 다른 표현은 “소망”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예수님을 만날 소망을 가슴에 품고 떳떳하게 주님을 맞기 위한 삶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을 사모합니다. 현재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주님께서 주시는 빛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을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 그것도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 안에 사망권세를 이길 생명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에베소서 2장 말씀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임한 것을 증거합니다. 1절부터 대단한 말씀이 선포됩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우리를 다스리던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요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 살지 모르지만 결국 그 끝은 죽음이라고 성경이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찾아오신 것과 같습니다. 4절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나타나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그 큰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로 표현합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깃든 생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 가운데 거저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품고 삽니다. 죽을 육체로 살지만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의 능력으로 한 주간 힘차게 사시길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