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니고데모 (2)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의 선생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찾아온 것을 보니 그에게 고민 또는 예수님을 만나서 풀고 싶은 문젯거리가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나사렛 목수 출신 예수님을 찾아오는데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심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신 랍비(스승)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로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이 정도로 높이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일입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표적에 관심이 없습니다. 표적을 본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오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니고데모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입니다.

 

거듭남에는 “다시”라는 뜻과 “위로부터”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땅의 존재(old being)가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존재(new being)가 되는 것이 거듭남(born-again)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 성경에서 배경 화면처럼 익숙하고 중요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찾아와서 다윗 왕국과 같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거듭남은 니고데모에게 생소한 말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묻습니다:“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4절). 사람이 한번 태어났고 나이가 들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 다시 모태에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냐는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일반적인 상식을 갖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과의 대화를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차근차근 예수님과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열었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물과 성령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에스겔 36장 25-27절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은 서로 짝입니다. 물로 정결케 된 부드러운 마음에 성령이 임해서 새로운 존재가 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된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입니다.-河-

예수님과 니고데모 (1)

니고데모

 

올봄에는 요한복음 3장과 4장을 차례로 공부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속에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등장합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들의 자치 조직으로 행정과 사법을 총망라하는 최고 의결 기구였습니다. 이들을 유대인의 지도자(ruler)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니고데모의 사회적 위치가 무척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구약의 율법을 해석하고 그대로 따라 살아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회복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된 당파였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리새인을 위선적인 사람들로 묘사하지만, 바리새인들 가운데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진실한 랍비들도 있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에서 유대인의 스승인 랍비가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은 그의 종교적 성향과 열심을 알려줍니다.

 

니고데모가 산헤드린 공회에 들어갔으니 유대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헬라어에서 왔습니다. 당시 로마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는 헬라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도 많았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이름은 “백성들의 정복자 (conqueror of the people)”라는 뜻입니다. 이름 속에서 니고데모의 지위와 힘이 느껴집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지위를 감안했을 때, 대낮에 공개적으로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님을 찾아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소문,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셔서 장사꾼들을 내쫓고, 성전이 기도하는 집임을 선포하신 사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요2장).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사역을 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원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예삿일이 아닌데,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고백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는 그가 갖고 있던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용기를 닮기를 원합니다.-河-

찬송가 해설 (10) 목마른 내 영혼

목마른 내 여혼 (찬송가 309장)

 

새해 우리 교회 표어 <든든히 서게 하소서>에 관한 연속 설교가 끝나고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는 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309장 <목마른 내 영혼>입니다. 두 주전 수요예배에서 이 찬송가를 함께 불렀는데, 경쾌한 멜로디와 진실함이 깃든 가사에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목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 주소서”(1절).

 

작사가 헨리 젤리(Henry Zelley, 1859-1942)는 뉴저지에서 태어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테일러 대학에서 철학박사(Ph.D)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1929년에 은퇴하기까지 1,500편의 찬송을 작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입니다.

 

<목마른 내 영혼>의 경쾌한 멜로디를 작곡한 헨리 길모어(Henry Gilmour, 1836-1920)는 10대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페인크공으로 일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입대해서 남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청년 시절을 보낸 길모어는 서른세 살에 치과의사가 됩니다. 뉴저지에 살면서 개척 교회를 돕고 40여 년 찬양대를 섬겼습니다. 목사가 아닌 평신도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갖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목마른 내 영혼>을 작사한 헨리 젤리는 박사학위까지 받은 목사요 부흥사였습니다. 게다가 천 편이 넘는 찬송시를 작사한 시인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에게 받은 은사를 갖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 그가 지은 찬송가 두 편이 그때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한반도, 대한민국 찬송가에 실려서 즐겨 불릴 것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목마른 내 영혼>을 작곡한 헨리 길모어도 예외가 아닙니다. 십대에 이민 와서 전쟁터에 나갔던 헨리 길모어가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40여 년 교회 찬양대를 인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힘겨운 인생길을 하나님 의지하면서 힘차게 살았던 인물입니다.  <목마른 내 영혼> 찬송의 경쾌한 멜로디가 그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주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하루하루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모릅니다.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하는 일까지 귀하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한 주간 힘차게 삽시다.-河-

2024년 2월 2주 말씀

나그네의 영광/ 시편 39편 6-13절 (안근조 교수, 호서대 구약학)

슬기로운 참빛교회 생활

팬데믹 동안에 우리는 교회에 모이지 못하고 각자 가정에서 예배했습니다. 영상예배가 없었다면, 교회는 물론 우리 각자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상으로 예배를 전송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초기에는 팬데믹의 공포가 상당해서, 시장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압도했습니다. 교회에 함께 모이지 못하니 목사로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슬기로운 참빛교회 생활> 10가지를 작은 표로 만들어서 카톡방에 띄웠습니다. 그것만 지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물론 우리 삶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소개했던 10가지는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 필요한 한두 가지 빼고 지금도 유효합니다. “든든히 서게 하소서”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도 적합한 가이드라인입니다.

 

첫째, 팬데믹 동안 유튜브 예배에 참석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지금은 현장 예배와 유튜브 전송을 겸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오시지 못하는 경우, 유튜브 주일예배에 동시간에 접속해서 참여하시거나, 사정이 있으시면 추후에 꼭 챙겨서 예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정기적인 예배 참석과 참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입니다.

 

둘째, 아침마다 카톡으로 배달되는 말씀 묵상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매일 챙겨서 읽지 못하셔도 몰아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보내는 500자 내외 묵상 글보다 성경 본문을 먼저 읽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셋째, 현장과 zoom에서 진행되는 수요예배는 물론 성경 공부에 참석하시면, 우리 신앙과 삶이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수요예배에서는 성경을 한 주에 한 장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슬비에 옷이 젖는 은혜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넷째, 목요일은 복습하는 날입니다. “목요일에 설교를 챙겨서 다시 듣습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요! 반복에 힘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와 수요 성경 공부 녹음만 목요일에 다시 들으셔도 신앙이 견고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다섯째, 매일 저녁 10시는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거의 20여 년 계속된 전통입니다. 전도사님과 어머니 권사님들께서 매일 10시에 기도로 뿌리신 씨앗을 우리가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통은 이어받아서 잘 살려야 합니다. 토요 아침 기도회에 참여하시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2204 새해 (5)

더 넘치도록

 

올 한 해 우리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로 했습니다. 든든히 서기 위해서 터를 넓게 잡아야 하고 뿌리를 깊게 내려야합니다.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이요 최고인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선 순위를 세워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처음에 놓아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함께 가야 합니다. 신앙이 삶을 통해서 표현되고,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신실(신실)함 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충실한 기초공사를 통해서 각자의 신앙, 가정, 교회를 멋지게 세우기 원합니다. 웬만한 폭풍우에 끄떡하지 않는 신앙을 갖추기 원합니다.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앙의 복원력을 갖추기 원합니다.

 

굳게 그리고 든든히 서는 신앙을 위해서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한 달여 공부했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갖고 있는 형식(구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무릎 꿇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준비했습니다. 기도를 끝낸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기도에는 준비와 끝이 있었습니다. 급하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나님께 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 영광의 풍성함과 성령의 능력이 마음에 임하길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들어가길 기도했던 것과 짝을 이루면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됨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속마음이 강건하길,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터가 굳어지고 뿌리를 내리고, 지식을 뛰어넘는 예수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고 경험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에베소 교회에 흘러 넘치길 기도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능력으로 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도 바울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기도한 것이 우리 신앙과 삶에 그대로 임한다면, 틀림없이 굳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바울의 마음에 뜨거움이 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에베소 교인들과 기도로 교제하고 연합할 수 있음이 감동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능력”을 강조합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 가운데 구한 것은 물론 생각했던 모든 것에 더욱 넘치도록 주님의 은혜가 임하길 기원합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에베소 교회에 흘러 넘치고 그 영광이 영원 무궁하길 찬송한 것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멋진 모습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