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6)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빌레몬서는 한 장 밖에 되지 않고, 바울과 오네시모 그리고 빌레몬 세 사람만 등장하는 단출한 말씀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신앙과 사랑이 잔뜩 베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에게 잘못하고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 주길 부탁했습니다. 오네시모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만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서 바울의 심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알리지 않고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을 수 있었고, 알리더라도 명령조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자기에게 보내라고 강요할 수 있었지만, 신사적으로 부드러운 마음과 말씨로 빌레몬에게 부탁했습니다. 빌레몬이 “자의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바울의 부탁을 들어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절차의 중요성과 믿음의 백성들이 서로 배려하는 품격을 느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잘못했거나 행여나 재정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이 있으면 자신이 대신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오네시모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같은 주님을 믿는 형제로 받아주라는 부탁입니다. 바울은 믿음과 사랑의 사람 빌레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빌레몬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을 확신합니다: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1절).

 
바울의 부탁이 매우 특별한 것이었지만, 바울과 빌레몬 사이에는 흔들림 없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 역시 옛 주인 빌레몬과 새로 섬기기 시작한 바울의 믿음과 성숙함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더욱더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 오네시모라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배출되는데 바울이 아들이라고 말했던 빌레몬서의 오네시모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빌레몬서를 읽으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해 주신 예수님과 바울이 겹쳐서 떠오릅니다. 오네시모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바울이 대신 청산해 주겠다는 말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우리와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등지고 떠날 때가 많이 있으니 오네시모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빌레몬서는 골로새 교회를 넘어서 그 이후에 예수님을 믿게 된 하나님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화평케 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河-

 

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5)

사랑받는 형제로

 

빌레몬서의 주인공은 세 사람입니다: 편지를 쓴 사도 바울, 바울의 편지를 갖고 빌레몬을 찾은 오네시모,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레몬.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 편에 빌레몬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이 용서하고 받아 주길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세 사람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도망친 종을 받아 주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자기처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 주길 부탁합니다. 종을 넘어서 자유인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바울이 그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내 심복”이라고 불렀지만,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는 큰 상처와 손해를 입힌 도망친 종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대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사도 바울의 증언(편지)뿐입니다.

 

오네시모도 도망친 노예들이 당하는 처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을 다시 살려준 사도 바울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빌레몬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 오네시모 역시 옛 주인을 만나서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으니 큰 모험을 감행한 셈입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지 않고 로마 감옥에서 바울 자신을 섬기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빌레몬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빌레몬의 승낙을 받고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함께  동역하려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기쁨으로 바울의 부탁을 받아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14절).

 

바울은 오네시모를 단지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자기 곁에 두겠답니다. 그러니 빌레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오네시모를 대해 주길 부탁합니다. 행여나 오네시모가 여전히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울이 보증을 서고 책임지고 갚겠답니다.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 가운데 서서 두 사람을 용서와 화해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주의 형제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신뢰가 전제된 파격적인 부탁입니다.

 

우리에게도 빌레몬서의 세 인물과 같은 신뢰가 형성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경험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4)

내 심복이라

 

빌레몬서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한 종 오네시모를 형제로 맞아주라는 바울의 부탁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고, 성도들과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선한 일은 물론 예수님께 자라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평안을 주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빌레몬은 예수님을 닮은 멋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4-7절).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도주한 노예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도주한 종을 환대하고 보호하라는 말씀이 있지만(신23:15-16), 초대 교회 당시는 종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도주한 종을 보호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종이 다시 주인을 찾아와도 쉽게 용서해 주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에게서 도망한 오네시모는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만나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향해서 자신이 낳은 아들, 나의 심복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심복”이라는 말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고, 오네시모 역시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며 최선을 다해서 섬겼다는 뜻입니다. 7절에서 빌레몬이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고 했는데,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나>가 심복에도 쓰였습니다.

 
오네시모의 이름은 “유익함(benefit)”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을 버리고 도망한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무익한 종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면서 그의 이름 뜻대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1절). 무익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크레스토스>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헬라어 발음에 매우 가깝습니다.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무익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과 현재가 완전히 바뀐 바울의 심복이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계속 돕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와 승낙 없이 오네시모가 자기를 돕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낸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믿음과 사랑의 사람 빌레몬이라면 할 수 있었기에 바울이 부탁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세심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절차를 무시하지 않고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를 중재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신앙은 변화입니다. 신앙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주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河-

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3)

– 사랑으로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추수”라는 표현을 앞에 부치는 것이 어색합니다. 그래도 한 해의 삶을 결산한다는 의미에서 추수 감사절입니다. 영어 표현 그대로 “감사 주일 (thanksgiving Sunday)”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2021년 한 해도 팬데믹을 살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랫동안 세상을 괴롭힐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백신 접종이 계속되면서 치명적인 환자들이 줄었고 우리 지역은 “위드 코로나”에 가깝게 일상을 회복했습니다. 올겨울만 넘기면 내년 봄부터는 훨씬 자유로운 세상이 찾아올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 3월에 완전체로 모이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조심하면서 각자 신앙의 자리를 지켜야겠습니다.

 

감사절은 한 해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무엇보다 어둠과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해서 빛으로 인도하신 생명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겹지만, 이 길이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믿고 한 해를 산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딘 가족들과 참빛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가족이 있기에 어려운 시간을 견뎠습니다. 예배로 함께 모이지 못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마음으로 격려하고 힘을 주는 참빛 식구들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팬데믹을 지날 수 있도록 백신을 개발하고 환자들을 진료한 과학자들과 의료진들, 전염병 관리에 온 힘을 쏟은 행정당국과 어려운 시간에도 각자 생업의 자리를 지키고 개인 생활까지 희생하면서 정부의 지침을 따른 모든 분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온 인류가 이렇게 한마음이 되어서 전염병과 싸운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빌레몬서에서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감사했듯이 우리도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할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이웃에게도 꼭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 빌레몬서 본문처럼 감사 속에는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매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감사가 생깁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감사절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주님의 사랑이 넘치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 전파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2)

– 믿음과 사랑

 

사도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는 방식으로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익숙한 형식의 편지를 받았고, 낯설지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장뿐인 빌레몬서 역시 인사말, 감사와 축복에 이어서 본문이 시작되고 마지막 인사로 끝나는 바울 서신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빌레몬서의 인사말에서는 바울과 디모데가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빌레몬과 그의 가족, 빌레몬 집에서 모이는 골로새 교회가 편지를 받는 수신인이었습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말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인사말에 이어서 등장하는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감사와 축복 (기도)입니다(4-7절).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편지를 받는 빌레몬과 사도 바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장면입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예수님과 성도들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는 믿음이, 성도들을 향해서는 신뢰와 성실함이 빌레몬의 믿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빌레몬은 하나님은 물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컸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성도들과 나눴습니다. 물론, 본문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사랑은 성도들을 향한 마음으로 나눠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참고 골1:4).

 

이어지는 6절과 7절은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번 각각 부연해서 설명합니다. “믿음의 교제”는 빌레몬이 골로새 교인들은 물론 동역자인 바울과 나눈 믿음안에서의 사귐과 행위입니다. 교제는 마음이 하나 되는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빌레몬이 나누는 믿음의 교제는 선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돕는 구체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했기에 “믿음의 교제”라고 불렀습니다.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은 믿음과 사랑이 자리 잡는 자리입니다. 믿음의 교제가 이뤄지는 자리가 빌레몬을 비롯한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바울도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사랑은 서로 짝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허상이고, 믿음 없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힘이 우리 참빛 교회 속에서도 역사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