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파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21일)
21세기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였던 폴 파머(Paul Farmer) 교수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폴 파머는
아이티에서 시작해서 페루와 아프리카까지
지구상의 가난한 사람들의 폐결핵, HIV/AIDS,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한 의료 혜택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Partners in Health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서
하버드 병원의 의료수준을 아이티와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제공하려는 꿈을 갖고 실제로 실천하신 아주 큰 나무, 거목이십니다.

 

2.
폴 파머는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플로리다에서 자랐습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둘째였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버스에서 온 가족이 생활해야 했습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이티로 가서 현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폴 파머의 가슴에 아이티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무치게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해방신학을 접하게 됩니다.
현지 신부님을 통해서 행동이 있는 신앙의 중요함을 배운 것입니다.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는데,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에 아이티로 날아가서 주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3.
폴 파머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평생 동지를 만납니다.
다트머스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한국인 2세 김용 교수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비영리 단체가 Partners in Health입니다.
현재는 저개발국의 의료와 보건을 지원하는 매우 큰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폴 파머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퇴치와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게이트 재단과 협업하는 등
국제 보건의 아버지답게 전염병과도 싸웠습니다.

 

인류학을 전공한 사회학자인 그는
국제 보건과 가난한 국가의 의료 개선에 평생을 바침과 동시에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애쓴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4.
세상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삶을 사시는 훌륭한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전파됩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원했던
폴 파머의 정신과 삶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곳 저곳에서 크고 작은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힐 것입니다.

 

5.
폴 파머의 삶과 사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의 활짝 웃는 모습, 모든 사람을 살리지 못해서 근심하는 얼굴,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그의 삶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지난 화요일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신앙의 선배가 계셨고
폴 파머만큼 유명하지도, 큰 업적을 펼치지 못해도
지금도 어디선가 참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실 테니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는 주의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나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작은 빛으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24 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동네를 산책하면서
사거리 길을 건너는데
4 way stops에 대기하던 승용차가 제 앞으로
우회전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횡단보도 사고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조심해서 건너길 다행이지 서둘러 도로로 뛰어들었다면
자칫 사고를 당할 뻔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급해지고 여유를 잃어가는 듯합니다.
팬데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꼬박 2년을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마음이 좁아지고 불안함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2.
엊그제
LA 공항을 떠나서 워싱턴 DC로 향하던 여객기가
캔자스 시티에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조종석에 들어가려 하더니
갑자기 비행기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승무원들이 신속하게 이 사람을 제압했고
비상 착륙한 후에 FBI에 넘겼답니다.

 

어쩌면, 비슷한 사고가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팬데믹과 연결시키게 됩니다.

 

3.
얼마 전까지 아시안 혐오로 인해서
아시안이 많이 사는 샌프란까지 바싹 긴장했었습니다.
엊그제 뉴욕에서는 노숙자가 30대 한인 여성을 집까지 따라가서
살해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자동차 유리를 깨서 물건을 훔쳐가거나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있는 물건을 가져갔다는 글이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작은 절도나 손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분도 있습니다.

 

4.
저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까지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 샬롬을 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길 기대합니다.

 

팬데믹 막바지로 오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사람들의 분노와 그릇된 본성이 터져 나올 수 있는데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차분하게 일상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사라져야 합니다.
치안 당국의 더 현명한 대처를 기대합니다.

 

5.
저는 셀폰이나 지갑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을 싫어해서
지갑을 차에 두고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꼭 주머니에 챙겨서 갑니다.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고
더불어 사는 협력과 사랑이 임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16:33)

 

하나님,
여호와 샬롬,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7 이-메일 목회 서신)

 

루지(Luge)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4년 전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남북대화의 물고가 트였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4년이 지났습니다.

 

베이징 올림픽도 지난 동경 하계 올림픽처럼
팬데믹 가운데 열리는 올림픽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외교 사절을 파송하지 않는 등
최근에는 판정 논란까지 크고 작은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고
스포츠를 통한 올림픽 정신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2.
동계 올림픽 종목 가운데 “루지(Luge)”가 있습니다.

 

루지는 프랑스어로 “썰매”라는 뜻입니다.
썰매를 타고 80마일 이상의 속도로 곡선 주로를 타고 내려옵니다.
선수가 썰매에 몸을 맡기고 누워서 내려오는데
워낙 속도가 빠르니 부상 위험이 큰 위험한 스포츠랍니다.

 

루지는
19세기 중반 스위스에서 벌어진 썰매 경기에서 유래했고,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네 일반인들은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썰매 경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
네 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은발의 여성 선수가 눈에 띕니다.

 

한 남자 선수는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썰매가 전복하면서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대회에 출전했답니다.

 

이 선수의 최종 성적은 34명 가운데 33위였습니다.
비록 순위는 거의 최하위였지만
큰 부상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도 정신 승리입니다.

 

3.
올림픽이
점점 정치에 이용되거나 패권 분쟁에 휘말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어릴 때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올림픽에 참가했었습니다.
올림픽이 상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본격적으로 허용되더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남자 농구 dream team까지 등장했습니다.
프로가 존재하면서도 아마추어 선수들의 출전만
허용하는 종목은 복싱뿐이랍니다.

 

무엇이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올림픽 정신이 그대로 유지되고 인류 평화를 위한 축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루지를 비롯한
인기 없는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도 응원합니다.

 

올림픽 근처에 갈 수 없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분을 응원하고,
오늘도 일상을 살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도 힘껏 응원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16)

 

하나님,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0 이-메일 목회 서신)

초점 맞추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또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또는 장차 가게 될 천국만 소망하는 식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참빛교회 목사로서
말씀과 예배, 성경 공부,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맛보는 것을 안내하고
참빛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실제로 간증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릴 적 돋보기를 태양에 비추고
작은 초점을 맞추면서 검은 종이를 태웠던 놀이를 소개했습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인데
그 빛이 돋보기를 통해서 종이에 작은 초점으로 모이면
열이 나고 종이를 태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 손바닥에도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아서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았더니
금세 손바닥이 뜨거워서 얼른 치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듯이
밀도 있게 작은 초점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모함과 구도자의 태도,
때로는 자연 속에서, 일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심지어 책을 통해서 등등 하나님의 사랑을 모으고 그것을 느끼는
통로를 각자 개발하길 부탁드렸습니다.

 

2.
제가 예전에 선물했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미세한 손길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려면 우리는 자주 그분을 생각하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네 (61)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듯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시고 경험하는 신비로운 과정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 것을 통제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봅시다.
아니 하나님을 우리 안에 돋보기의 작은 점으로 모시는 겁니다.

 

이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우리도 예레미야 애가 기자처럼 주께서 가까이 함께 하시는 것과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애3:56)라는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8)

 

하나님,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3 이-메일 목회 서신)

뺨을 돌려대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애가서 말씀 중에 까다로운 구절을 만났습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애 3:30)

 

하나님 앞에서 큰 재앙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입니다.
앞 구절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선지자를 통해서 예고하신 매우 큰 재앙이 찾아왔음을 알립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동안의 잘못을 조사하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아침마다 의지했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애가서가 알려주는 깊은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이스라엘은
입을 땅의 티끌에 대면서 회개했습니다.
잘못했지만,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소망을 구했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를 치는 자들에게 뺨을 돌려대서
치욕으로 배부르게 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에 재앙이 찾아오니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잘못한 것을 가볍게 피해가지 않고
충분히 죄의 값을 치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수요일에 살펴보는 사무엘하 말씀에서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연거푸 치욕스러운 일을 겪는 것도 생각납니다.
다윗은 묵묵히 자신이 감당할 멍에를 지고
어려운 기간을 견디고, 주어진 길을 갑니다.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는 죄값을 충분히 감당하는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의 본심을 발견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은
“오른편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폭력 운동을 주창했던 월터 핑크는 그의 저서 <예수와 비폭력 저항>에서
당시 유대의 습관을 갖고 예수님 말씀을 풀어갑니다.

 

(상황을 눈에 그리면서 자세히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의 오른편 뺨을 치려면 왼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 관습에서 왼손 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른손 손등으로 상대의 오른편 뺨을
치욕스럽게 “찰싹찰싹” 때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주인이 노예를,
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치욕을 줄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애가서에서 첫 번째 뺨을 맞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때 왼편 뺨을 돌려대면,
상급자는 왼편 손등을 사용해야 상대방에게 치욕을 줄 수 있는데
왼손은 사용 불가이니 할 수 없이 오른손을 들어서 왼편 뺨을 때려야 합니다.
오른손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을 동등한 경쟁 상대로 여기는 행위이기에
상급자는 몹시 당황해서 더 이상 폭력을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 오른편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서
상대방을 어이없게 만드는 식으로
폭력에 저항하길 알려주셨다는 것이 월터 핑크의 해석입니다.
“치욕으로 배불릴 지어다”라는 애가서 말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예레미야 애가에서 뺨을 돌려 대면서 치욕을 감수하는 것은
한편에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뺨을 내리치는 사람에 저항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얘가서 3장 30절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모두 “그(he)”여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립니다.

 

3.
때때로 어려운 성경 본문을 만납니다.
애가서처럼 재앙을 겪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벌로 여기는 말씀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에 모순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말씀을 곱씹으면
말씀에 담긴 새로운 의미와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심을 발견합니다.
숨은 그림을 찾고 보물을 찾는 것과 같은 성경 읽기의 묘미입니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만,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의 열정이 만나서
성경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가 3:33)

 
하나님,
아침마다 주시는 주의 말씀, 그 깊이에 스며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 27 이-메일 목회 서신)

멍에를 메고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예레미야 애가 본문에서
“멍에(yoke)”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고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메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설교에서 의미를 설명했지만,
멍에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멍에는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국들,
심지어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소나 나귀 같은 가축의 목에 걸어서 통제하고,
밧줄로 연결해서 농기구를 끌게 하는 기구입니다.

 

성경에서 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우선, 노예 상태 또는 억압의 의미입니다(레26:13).
멍에에서 풀려나는 것을 해방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멍에를 풀어주시는 해방자가 되십니다.

 

둘째로, 감당해야 할 짐입니다(렘27:2)
예레미야가 멍에를 매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을 멍에로 설명했습니다.

 

셋째로, 멍에는 연결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멍에 하나로 두 마리의 소를 연결해서
밭을 갈거나 농사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멍에는 두 번째 감당할 짐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할 멍에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벗겨 주실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참된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고 가던 율법의 멍에와 대비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과도한 멍에를 강요했습니다(마23:4)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자유가 없었고
신앙과 종교가 도리어 백성들을 억압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것을 “종의 멍에”라고 불렀습니다(갈5:1)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참된 은혜의 종교,
진정한 해방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멍에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명입니다(마22:36)

 

게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죄의 짐도 모두 없애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쉼을 얻게 됩니다.

 

3.
주일 날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두 지고 가는 멍에가 있습니다.

 

행여나, 어떤 일이나 사람 또는 환경에 눌린 멍에가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 자유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또한 가정이나 세상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감당해야 할 멍에는 기쁘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마음에 쉼을 얻으면서
올 한 해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9-30)

 

하나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 20 이-메일 목회 서신)

지루함을 넘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두세 문장의 <아침 기도>를 만들어서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아침 기도가 새날을 여는
아침 의식(morning ritual)이 되길 원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하루를 사는 기도문을 만들고
그것을 매일같이 반복해서 기도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아침 기도문을 다시 소개합니다:
하나님,
새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세요.
저도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

 

2.
특정한 일을 반복해서 실천하면 그 일이 습관이 되고,
결국에는 성품과 인격으로 승화됩니다.
반복이 주는 효과요 선물입니다.

 

물론,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싫증이 나고 지루함도 느낍니다.
그때부터 그 일을 소홀히 하게 되고
많은 경우 자기도 모르게 슬쩍 내려놓습니다.

 

별것 아닌 일이라면 괜찮지만,
중요한 일이었는데 지루해서 포기했다면 꽤 아쉽습니다.

 

우리 말로
<원자 습관/Atomic habits> 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 책의 저자는
원자 알갱이같이 작은 일들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딱 맞는 규칙 goldilocks rule>입니다.
어떤 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너무 쉬운 과제도, 너무 어려운 과제도 아닌 딱 맞는 일을 찾아서
규칙적으로 실천하라는 제안입니다.

 

테니스를 배운다면,
너무 쉬운 상대를 택해서 쉽게 이길 생각을 하거나
너무 잘하는 상대를 만나서 기죽지 말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잘하는 “딱 맞는 상대”와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다 보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 것입니다.

 

지루해지거나 중간에 포기하기 쉬운 과제일수록
자신에게 딱 맞는 방식을 선택해서
끈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 역시
언젠가 지루해질 것입니다. 시들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쉼 없는 반복을 통해서
아침 기도가 의식/습관이 되고
아침 기도의 유익과 힘을 실제로 맛보았을 때,
아침 기도가 흥미진진한 딱 맞는 기도(goldilocks prayer)가 될 것입니다.

 

아침 기도뿐 아니라
세상에서 소중하고 귀한 일들은 지루한 반복이 많습니다.
눈을 크게 뜨게 만들 정도의 흥미/재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지루함을 넘어서 신비로운 영역까지 꿋꿋하게 나가고
지루함을 예술로 발전시키는 카이로스를 살기 원합니다.

 

오늘 아침도 기도로 열고
힘차게, 열심히, 그리고 희망차게 시작합시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가 3:23)

 

하나님,
지루함을 극복할 신앙의 신비를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 13이-메일 목회 서신)

아침마다 새로우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새롭게 시작합시다>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는

달력이 알려주는 1월 1일입니다.

 

인류는 매우 지혜로워서

수천 년 전에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밤에 뜨는 달의 변화를 보고 음력을 만들어서

농사를 비롯한 실제 삶에 적용했습니다.

 

4천여 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재 우리가 쓰는

태양력을 발명해서, 1년 365일, 12개월로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1년은 정확히 365.24219879일이어서

365일을 1년으로 하면 나중에 가서 차이가 생깁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 (1582년)>에서는

4년마다 찾아오는 윤달로 차이를 조정했습니다.

 

이처럼 달력을 따라서 1년, 12개월을 사는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가 발명하고 실천한 삶의 양식입니다.

 

2.

달력을 따라서 사는 것을

헬라어로 <크로노스>라고 부르고,

단지 찾아오는 달력의 날짜를 살기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를 찾으면서 창조적인 시간을 만드는 것을

<카이로스>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6일에 걸쳐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알려주지만,

6일이라는 시간 크로노스보다

빛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 사건,

즉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중요합니다.

 

크로노스라는 시간에 떠밀려 살면,

가는 시간이 아쉽고 오는 시간이 두렵습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우리가 시간을 통제합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스스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보는 겁니다.

그러면 시간의 흐름보다 시간에 채워 넣기(창조하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꿈 같은 휴가를 다녀오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해내면

그 시간이 꽉 찬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허송세월을 보내면

하루는 물론 일주일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3.

새롭게 2022년을 맞았습니다.

올해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힘차게 그리고 담대하게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올해 주제 말씀처럼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매일같이 성실하심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2022년 한 해는 카이로스, 창조적인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가 3:23)

 

 

하나님,

주님과 더불어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6이-메일 목회 서신)

시작과 마무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성탄절에 지구 한쪽에서는
25년간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서 완성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WST)이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기아나가 어디인지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남미 브라질 위에 위치한 국가로 생전 처음 들어온 지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그곳을 찾은 동방 박사들이
유대 땅 베들레헴이 어디인지 생소했을 것과 비슷합니다.

 

이번에 발사된 우주 망원경은
1990년에 발사된 허블 망원경의 관측 능력보다
100배가 큰 성능을 갖추었답니다.

 

테니스장 크기의 태양 막과
18개의 육각형 거울이 달린 6.5m의 주경까지
크기나 정확도에서 엄청난 망원경입니다.

 

우주 망원경은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답니다:
– 은하의 형성과 진화 연구
– 별과 행성계의 형성 연구
– 행성계와 생명의 기원 연구.

 

전문가가 아니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행성계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게 된다는 것에 눈이 갑니다.

 

앞으로 최첨단 우주 망원경이 보내오는 우주의 자료들을 갖고
과학자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할 것입니다.
과연 과학자들이 밝혀내는 우주와 생명의 처음(기원)은 어떤 결과일지요?

 

2.
혹자는 미국의 NASA가 주도하는 우주개발이
현대판 바벨탑이라고 부를 것 같습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탐하고 차지하려는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견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자칫 세상에서 고립되어서
문명을 거부하고 따로 생활하는 아미쉬들과 같은
배타적 기독교가 될 수 있다는 염려도 생깁니다.

 

물론, 하나님 없이 진행되는 과학 문명의 발달에
비판 없이 편승하는 것도 조심할 일입니다.

 

저는 이번에 발사된 우주 망원경이 가져올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정보가 무척 궁금합니다.

 

혹시 이들의 정보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인간은 성탄절에 망원경을 쏘아 올려서 우주의 기원을 찾겠다고 나섰고,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은 위로 올라갔고, 하나님은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인간은 생명의 처음(기원)을 찾아 나섰지만,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마지막,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알리십니다.

 

세상의 처음, 창조의 기원과 현장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올 한 해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예수님을 따르며 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샬롬!!!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1:6)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
시작과 마무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올 한 해 우리를 귀히 여겨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30이-메일 목회 서신)

 

케노시스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독교는 말 그대로 “기독(基督)”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성탄절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처럼
세 가지 예물을 갖고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매력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셨는데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 즉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자기를 비워(emptied himself)”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명사형이 “케노시스(kenosis)”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같은 본성,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모두 비우시고
사람이 되셨다는 케노시스의 정신은 기독교의 독특함입니다.

 

흉내만 내시거나, 겉모습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또한, 케노시스
–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종의 모습,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연약한 자와 함께 하고
고난받는 자를 같은 심정으로 위로하고
사랑받고 대우받기보다, 사랑하고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3.
2021년 성탄절이 내일 모레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휴일 기분에 도취되거나
욕심과 탐욕,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느라
진정 중요한 케노시스(비움)의 예수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흘려보낼 것을 흘려보내고
지나치게 높은 곳에 눈길을 주다가
진정 지금 여기서 돌보고 사랑해야 할 것을 놓치고
훗날 아쉬워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베들레헴 작은 마을, 마구간에 오신
우리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예수님을 많이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꼭 갖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2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