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말에
미국 중서부 여덟 개 주에 30회 이상의 토네이도가 덮쳐서
1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와 상당한 재산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언론과 유튜브 등에서 보도되는
토네이도가 훑고 지나간 참상을 보고 있으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되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켄터키의 경우
아주 오래된 교회 건물이 거의 사라졌고
시청 건물도 반 이상이 무너졌습니다.

 

일리노이의 아마존 창고도 토네이도로 인해서
절반이 무너지고 사상자가 났으니
아무리 견고하게 짓고 오랫동안 견뎌왔던 건물이라도
이번에 몰아닥친 토네이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
예전에 인디애나에 살 때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10m 정도 되는 넓이로 토네이도가 지나간 흔적이었는데
마치 트랙터로 집이며 나무를 밟고 지나간 것처럼
명확히 길이 날 정도로 부서져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면서 저도 모르게
“와—” 하는 안타까움과 놀라움의 탄성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종종 중서부를 강타하는 토네이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지붕이 날아가고, 토네이도 한 중심은 자동차도 날려 보낼 기세입니다.

 

그 위력을 알기에
중서부에서는 정기적으로 토네이도 대비 훈련을 합니다.
토네이도 경보가 울리면, 우선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식입니다.
혹시 집 안에 있다면, 건물이 파괴될 것을 예상해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 피신해야 합니다.

 

100여 명에 가까운 숫자가 적지 않지만
이번에도 미리 대피했기에 사상자 숫자를 줄였을 것입니다.

 

3.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 노력할 뿐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름철 플로리다와 동부에 밀어닥치는 허리케인,
중서부의 토네이도
서부의 지진과 최근의 산불 등
미국에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재해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가뭄, 홍수와 해일,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심판 또는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능력으로 여겼는데
수천 년이 지나고 과학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재난과 그에 따른 고난인데
그때마다 피조물인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습니다.

 

아침에 읽는 욥기에도 토네이도 급의 폭풍이 등장합니다.
욥이 믿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심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폭풍 속에 임하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욥이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욥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입니다.

 

4.
토네이도 정도는 아니어도
크고 작은 어려움에서 면제되는 인생은 없기에
철저하고 올바르게 준비할 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더 없는 축복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밀어닥친 토네이도로
어려움을 겪을 이재민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힘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욥 38:6-7)

하나님,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16이-메일 목회 서신)

엘리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마다 읽는 말씀이
내일(금)부터 다시 욥기로 돌아갑니다.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셈입니다.

 

다시 읽을 욥기는
엘리후의 연설(32-37장)과
폭풍속에서 욥을 찾아오신 하나님 말씀(38-42장)이 주요 장면입니다.

 

욥기 전체에서 엘리후의 연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혹자는 엘리후가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볼 정도로 엘리후의 연설이 탁월합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돔 출신의 이름을 가진 세 친구와 달리
엘리후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는 이스라엘 배경도 갖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나 친구들에 비해서 젊습니다.
당시에는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든 장로들이 지혜롭다는 생각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이러한 관습에 도전합니다.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속에 있는 영에 하나님의 숨결이 임했을 때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후가 그렇게 주장할 만합니다.
그는 욥이나 세 친구와 달리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개인과 역사에 임하는 섭리를 강조합니다.
엘리후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넓이가 깊이가 있습니다.

 

2.
엘리후는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과
욥에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세 친구를 싸잡아 비판합니다.

 

엘리후는 자기 지식을 과신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펼칩니다.

 

이런 엘리후를 보고 있으면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목회에 나온 젊은 전도사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세상이나 신앙에 관해서 거침없이 판단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욥이나 욥의 친구 모두 잘못했고
자신만 옳다는 일종의 양비론(兩非論)과
엘리후의 자기 교만이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등장하자마자
욥과 친구들을 향해서 화를 내는 것도
엘리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엘리후와 예수님을 비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엘리후에게 점수를 후하게 준다면,
이어서 등장하시는 하나님과 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 정도입니다.

 

3.
우리는 빌레몬서를 함께 읽으면서
“품격”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나 연장자라는 나이를 들어서
빌레몬에게 명령하거나 그를 몰아붙이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이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받아 주기를
신사적으로, 절차를 지키고 배려하면서 부탁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엘리후의 연설은 자기 과시입니다.
아무리 바르고 옳은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의 성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에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듣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살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해 동안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 인격’을 갖췄는지 돌아보고 싶습니다.

 

마음 씀씀이, 언어 습관, 소소한 행위와 삶을 돌아보면서
믿음과 사랑이 함께 가는 주님의 사람, 예수님을 닮은 주의 백성이 되기 원합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빌1:5)

 

하나님,
한해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주님의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9 이-메일 목회 서신)

생명의 약속

좋은 아침입니다.

 

1.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지난주 감사절 목요 서신을 보낼 때만 해도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벗어날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볍고
마스크 속의 입가에 환한 미소도 살짝 보였고
거리에 자동차도 예전만큼 늘었습니다.
드디어, 끝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아공에서 들려온
오미크론 바이러스 소식에 세상이 다시 긴장하고 있습니다.
“오미크론”은 헬라어 24개 알파벳 가운데 열다섯 번째이고
영어 “O”(오) 음가를 갖습니다. 정말 “오—“하고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델타 변이 때는 백신이 막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오미크론 변이는 기존의 백신으로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에
세계가 더욱 긴장하고 여러 나라가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비즈니스, 학교, 여행 등의 길이 열렸는데
며칠 만에 분위기가 급냉각되고 있습니다.

 

감염속도는 빠르지만, 치명적이지 않다고 하는데도
지난 2년 동안 워낙 힘들게 살았기에
지레 겁을 먹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2.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할지요?
언제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이웃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지요?
과연 우리 교회는 내년 3월에 완전히 열 수 있을지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무슨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것일까?
바이러스가 이처럼 오래 지속될 때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등등.

 

머릿속에서는 질문이 계속되지만,
결국 저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세상을 살려주세요!”

 

인간의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3.
엊그제 아침 묵상에서
아들 같은 자기 후계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도 바울이
“생명의 약속(the promise of lif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는
죽음의 반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온 피조물이 신음하는 타락한 세상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지만,
죽음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이 쌓여가지만,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생명의 약속”을 꼭 붙들고 싶습니다.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세상에
빛과 생명을 선포하고, 생명의 약속이 있음을 보이고 싶습니다.
어려울수록 힘차게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
생명의 약속, 소망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하나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안에 심어진 “생명의 약속”을 꼭 붙들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2이-메일 목회 서신)

 

행복한 감사절

감사절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교회 정리를 마치고
근처 쇼핑몰에 들렸는데
주차 자리를 찾기 위해서 20여 분을 돌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주차장이 차들로 꽉- 찼습니다.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니
주차 자리를 찾는 것이나 줄을 길게 서는 것에
짜증보다 왠지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예전의 일상으로 회복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감사절을 지킬 엄두를 내지 못했고
문을 열지 않은 상점도 많았습니다.
가족 모임까지 제한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올해 감사절은 거의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2.
여행 전문 기관인 AAA의 예측에 의하면
올 추수감사절에 5천 3백만(53 mil) 정도가 이동한답니다.
2005년 이래, 한 해 여행객 증가율 최고 수치입니다.
그만큼 작년에 발이 묶였던 셈입니다.

 

가스 값이 무척 비싼 데도
자동차 여행이 으뜸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비행기와 기타 대중교통 수단이 나머지 10%입니다.
항공편을 이용한 여행객은 작년보다 배가 늘었습니다.

 

AAA에서는
올해 감사절 여행을 즐기되 마스크를 꼭 챙기고,
도로는 물론 공항까지 인파로 붐빌 것을 예상하고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라는 팁을 전했습니다.

 

3.
팬데믹 한 가운데 있을 때는
이 정도의 일상 회복도 기약할 수 없었는데
함께 노력하고, 조심하니 이런 날이 찾아왔습니다.
어두운 밤이 계속될 것 같아도
새벽이 찾아오듯이 …

 

팬데믹 뿐 아니라
우리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도
결국에는 빛에 굴복하고 좋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를 기대하고, 신앙 가운데 앞을 보면서
인생의 골짜기를 걷는 것이지요.

 

4.
아직은 아슬아슬한 측면이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변이가 등장할 수도 있고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돌파 감염이 늘어나서
다시 문을 닫는 유럽 국가도 있습니다.

 

감사절을 맞아서 출타하신 참빛 식구들도 많으신데
안전한 여정이길 기도합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과
마음껏 즐기시고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행여나
추수감사절을 맞는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저 앞에 빛으로 계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감사절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결국에는 빛이 찾아올 것입니다.

 

 

해피 땡스기빙!!!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For with you is the fountain of life;
in your light do we see light. (Ps 36:9)

 

하나님,
감사절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풍성함을 더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25이-메일 목회 서신)

다함께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보도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야생 사슴에게서 발견되었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변종이 있어서
야생 동물에서 발견되곤 했지만,
이번처럼 사슴에게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특이한 현상이랍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이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아이오와주에서 채집한
사슴의 8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였답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400여 개의 사슴 샘플 가운데
30% 이상에서 바이러스 항체가 발견되었답니다.

 

하지만, 사슴이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겼거나
반대로 주택가를 비롯한 사람들과 친숙한 사슴이 사람에게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슴에게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상
보건 당국은 사냥한 사슴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동부나 중서부에서는 사슴 사냥이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지난 2년 동안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팬더믹”이라는 용어에 걸맞게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인류가
남녀노소, 빈부귀천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래도 온 세계가 함께 대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백신을 발명한 과학자들, 의료진들, 행정 당국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심지어 교회 건물까지 문을 닫을 정도로 협조한 시민 정신의 승리입니다.

 

아직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백신 접종률이 낮아서
델타 바이러스처럼 코로나 변종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동안 인류가 연대했던 뒷심을 발휘하면
결국에는 팬더믹을 극복할 것입니다.

 

3.
사슴에게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로 인해서 타락한 세상을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으로 요약했는데
지난 2년여 팬더믹을 보내면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그렇다면 이제 살길을 여는 것도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힘을 합쳐서 한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위임하신 인간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4.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역시 혼자 살 수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그동안 우리를 돕는 손길들이
언제나/어디서나 있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가 다 함께 힘을 합쳤기에
올 한 해도 소처럼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인도하심, 도우심,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이곳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신앙의 동지가 되고
주님의 백성이 가야 할 길을 다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사랑으로 완성된 믿음의 교제가 우리 안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하나님,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주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18이-메일 목회 서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좋은 아침입니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난주 설교 시간에 스치듯 말씀드린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미카일이라는 천사가
세 가지 질문을 갖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아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성당을 지나던 구두 수선공이
성당 앞에서 맨몸으로 누워있던 미카엘 천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구두 수선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것을 본 미카엘 천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구두 수선집을 방문해서
아주 까다로운 모양의 장화를 주문하면서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미카일 천사는 장화가 아니라 죽는 사람이 신는 슬리퍼를 만듭니다.
그것을 본 주인이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때 부자의 하인이 들어와서 자기 주인이 죽었다면서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주문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까지 죽은 이웃집 쌍둥이를
그 부인이 맡아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미카엘은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2.
세상에 사랑이라는 언어가 흘러넘칩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도 많이 사용해서
진부한 표현으로 취급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랑 앞에 “진실한”이란 형용사를 붙이고 읽으면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 숙연해집니다.
진실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사모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조건 없이 맞아 주시는 아가페 사랑,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맞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나눈
골로새 교회의 영적 지도자 에바브라와 빌레몬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고
그 진실함에 감격해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 처소로 자기 가정을 개방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맛보니 그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 속의 천사 미카엘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해답을 찾아내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사랑으로 살아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0)

 

하나님,
우리 안에 임한 주의 사랑을
꼭 세상에 전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11이-메일 목회 서신)

감사의 달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달력이 달랑 두 장 남았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닥칠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얼른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건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헬라어에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일 년 365일 달력의 숫자를 따라서 사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힘을 가진 사람도
벽 위에 있는 시계의 초침을 다스릴 수 없듯이
우리는 크로노스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와 달리 통제 가능합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365일을 각자의 자리에서
뜻깊은 시간으로 만드는 창조적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쫓기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다만 한순간이라도 의미를 찾고 가치 있게 만드는
창조적인 시간 카이로스를 추구합니다.

 

2.
야고보서에서는
크로노스를 사는 인생은 안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약 4:14).

 

“안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트미스>는
물방울(vapor), 연기(smoke), 내쉬는 숨(exhalation)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백세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크로노스의 인생길만 산다면 인생이 늘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안개와 같다는 말에 사로잡히고 아쉬움만 쌓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연수에 상관없이
우리 삶이 참된 의미로 채워질 때
밀도 있고 보람된 삶이 될 것입니다.

 

3.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 있다면
“사랑과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고
선행(charity), 작은 사랑이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를 표현하는 말과 행동 역시
의미 있는 삶을 이끄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인도합니다.

 

11월 한 달은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봅시다.

 

감사 속에 임하는 기쁨, 행복, 은혜, 넉넉함을 누립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28)

 

하나님,
감사의 새달을 맞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4이-메일 목회 서신)

피난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10월도 저물어갑니다.
길가에 낙엽이 뒹굴고
엊그제 단비까지 내리면서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싹이 돋는 봄을 좋아하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 없어서
어느덧 60 번에 가까운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싹이 트고, 파란 잎과 열매를 맺고
거기에 멈추면 좋은데
마지막으로 화려한 단풍과 함께
하나하나 잎이 떨어질 때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도 생각나고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있는 샌프란 도심은
사시사철 서늘하고 계절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권사님들이 연세에 비해서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2.
하여튼
가을이 찾아오면 한 해를 돌아봅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들은 나뭇가지에 달려있습니다.
바닥에는 힘들고 외롭고 막막한 일들이 낙엽처럼 뒹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역시 연약하고 부족해서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기쁨과 감사보다
길가에 뒹구는 어려운 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밟힙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많이 생긴 식구들
힘들지만 참으면서 한 해를 믿음으로 사신 식구들
예상치 않은 일들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하신 식구들
선하게 살았는데 힘든 일이 닥치니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신 식구들
혼란하고 악한 세상을 보면서 하박국처럼 탄식하고 질문하시는 참빛 식구들.

 

목사로서는
어려운 한 해를 사신 참빛 식구들께 마음이 더 쓰입니다.
목회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3.
무엇보다
어려운 중에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이 남아있고
그 믿음이 우리를 견인하는 것에 역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주님”
무심코 또는 간절히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도 감사합니다.

 

주일에 하박국을 함께 살펴보면서
“탄식(lament)”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탄식은 금기 사항이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모범 답안처럼 여겼는데
하박국과 아침에 읽는 욥기를 통해서 “탄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요소/덕목임을 배웠습니다.

 

10월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서기 원합니다.
우리 힘으로 다스리기 어려웠던 것들
저절로 눈물이 나오고 원망과 탄식이 나왔던 순간들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내어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고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마음껏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흘려보내고
홀가분하게 올해 남은 두 달을 맞이합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하나님,
주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쏟는
참빛 식구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28이-메일 목회 서신)

작은 손길 큰 도움

단비가 내리는 좋은 아침입니다

 

1.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종종 외로운 순간을 맞습니다.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작은 일에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견디지만,
때로는 신앙까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작은 일에도 흔들립니다.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를 힘들게 하는 큰 일이 찾아오면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에 휘말립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꼭 잡아주고,
마음과 기도로 함께 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요.

 

2.
지난 월요일 참빛 카톡방에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Jill Biden)에 관한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2015년 장성한 아들(46세)을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질 바이든은 그때부터 4년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배우는
탄식의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엄청난 비극에 신앙의 축이 흔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대통령 유세를 하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브루클랜드 침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주로 아프리칸 아메리칸100여명 교인이 참석한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아내가 질 바이든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
“제가 당신의 기도짝(prayer partner)이 되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수요일마다 텍스트를 주고받았고
그 작은 도움으로 인해서 질 바이든은 다시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질 바이든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브루클랜드 침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경호원들이 교회에 배치되는 등 특별한 일이 생겼지만,
목사님 부부는 상원의원 정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영부인이 예배에 와서 자신이 어떻게 신앙을 회복했는지 간증까지 했더랍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을까요!

 

3.
우리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속을 내보이면,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마음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혼자서 끙끙 매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작은 마음 씀씀이가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랄 경이로운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천사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손과 마음이 되어서
이웃을 보듬어 앉아주고 기도짝이 되고
같은 길을 걷는 신앙의 동지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주님 보내신 천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21이-메일 목회 서신)

코비들의 그림자

좋은 아침입니다

 

1.
1년 6개월 이상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괴롭혔던
코비드19의 어두움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입니다.

 

우리 지역은 내일(15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도 완화되어서
사무실을 비롯한 일터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됩니다.
물론, 많은 군중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마스크 착용은 의무입니다.

 

백신 접종률과 3차 접종을 고려하면
올해 겨울만 잘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예전의 일상을 거의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 상황, 팬데믹으로 인한 마음의 답답함 등을 고려하면
더 이상 코로나바이러스에 붙잡혀 살 수 없습니다.

 

하여튼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나갈 것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속담도 생각납니다.

 

2.
지난주일 AP통신 뉴스는
코로나로 인해서 부모님, 할머니/할아버지, 후견인을 잃은 아이들이
미국에만 14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4만 명 정도라고 했는데, 다른 방법으로 조사하니
10만 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유색인종 출신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의 67%가 히스패닉 가정입니다.
미시시피의 경우, 57%가 흑인 가정 출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비드로 부모와 후견인을 잃은 아이들은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코비드19이 만들어 놓은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조지아에 사는 케이트 켈리(Kate Kelly)는 54세 된 아버지를 코로나바이러스로 잃고
두 명의 자매와 어머니와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 사회는 물론 이웃들의 도움이 이어졌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발길이 뜸해지고 국가가 주는 지원금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칩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주목하니 위로와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면, 관심은 식고 섬처럼 외롭게 남겨지게 마련입니다.

 

20년 전에 일어난 9.11 에서 남겨진 가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코비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총체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AP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3.
세상은 크고 넓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삽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고, 부모와 가족을 잃고
삶이 완전히 망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간다면
어둠의 그림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분들도 계십니다.

 

종종 멈춰서서
우리가 모르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상의 뒷면도 살피기 원합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앞만 보고 나가는 발길을 잠시 멈춰서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삶을 돌아보고 반추하기 원합니다.

 

코비드가 지났다고 모든 사람이 기뻐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여전히 슬픈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이웃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68:5)

 

하나님,
외롭고 슬픔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의
보호자와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