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망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몇 주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그곳을 지나던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버스 승객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12층 콘도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백여 명의 실종자가 있어서
사망자 숫자가 더 늘어 날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생긴 사고는
건물 철거 작업 중에 도로를 폐쇄하는 등
안전관리 소홀이 애꿎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버스에 탔던 승객들의 사연을 대하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은 40년 전 습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수년 전부터 건물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세밀한 검사 없이 무시하다가 어이없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의 잔해를 보면서
1995년 6월 퇴근 시간 무렵에 무너져 내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2.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 있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명이 죽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눅13:1-5)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 몇을 죽여서 그 피를 제물에 섞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빌라도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것임을 은근히 밝히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는 의인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당한 사고를 죄와 연결하고
자신은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어리석고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결코 죄가 많은 것이 아니라고 일갈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서 18명의 사상자를 낸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을 언급하십니다.
망대의 붕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신, 누구도 그런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개를 당부하십니다.

 

3.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는데
예전에는 자연재해나 큰 사고를 죄와 연결하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자칫 그런 재난을 겪지 않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오만함의 표출일 수 있고
재난당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그릇된 심보입니다.

 

광주나 플로리다 참사와 같은 사건 사고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철저히 구축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입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말아야겠습니다.

 

2021년 하반기의 시작인
7월 새달의 첫날을 맞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하나님,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각종 사건과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 이-메일 목회 서신)

추임새

좋은 아침입니다.

 

1.

“옛날, 옛적에”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작되던 도입부입니다.

 

누구든지 옛날 이야기를 전할 때는
빼놓지 않고 “옛날 옛적에”로 시작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별것 아닌 데도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각색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했습니다.

 

2.
탁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쏙- 빼앗아 갑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처음은 호기심 가득하지만
뒤로 가면서 시들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 재미가 없다고 딴청을 피우거나
이야기를 마다하면,
다시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기 힘듭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도 자신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조금 지루해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등등의 추임새를 넣어주면,
자기 생각과 지식, 상상력까지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3.
<다시 성경으로>라는 책을 쓴
레이철 에반스라는 작가는 마지막 결론에서
“세상에! 그래서?”라는 추임새를 매우 적절하게 사용했던
마키라는 자기 올케를 소개합니다.

 

저자의 올케는 이 두 마디 추임새로 동네는 물론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흥을 돋워 주었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독차지했습니다.
“세상에! 그래서?”라는 추임새 두 마디로 이룬 행복입니다.

 

레이철 에반스가 말하듯이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그리고 and”입니다.

 

“그리고”는 이야기와 사건을 계속해서 이어줍니다.
어느 순간에 끝날 것 같은 이야기도 “그리고”를 만나면
새로운 말씀으로 발전하니,
“그리고”는 성경의 추임새인 셈입니다.

 

4.
지난주일 설교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을 이루길 기도했습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은 지루한 여정입니다.
단숨에 정답을 찾기 어렵고, 결론에 도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추임새”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추임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 “그리고…” “아하…” “조금만 참자” 등등
그리고 바울의 기도대로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누군가 곁에서 추임새를 갖고 격려해주면
그 자체가 힘이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지가 있다면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의 “그리고”를 통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견딤과 오래 참음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힘으로” 북돋아 주시고
그 힘이 우리 안에 능력이 되어서
모든 견딤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견디고 오래 참으실 참빛 식구들을
“멋지십니다”는 추임새로 응원하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11절)
Being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Colossians 1:11)

 

하나님,

주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 곁에서
추임새와 함께 힘을 더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24 이-메일 목회 서신)

희망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막막했는데
엊그제부터 세상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그 답답하고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뎠습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백신의 개발도
온 세상이 연대하고 협력하니 예상외로 일찍 개발되어서
샌프란의 경우 집단 면역에 가까운 숫자가 백신 접종을 끝냈습니다.

 

물론, 아직도 서로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행여나 2-3주 후에 코로나 케이스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어렵게 문을 연 경제와 세상이 다시 닫히면 안 됩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학교에 가고
우리 교회도 얼굴을 보면서 예배할 수 있고
팬데믹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소상공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 합니다.

 

팬데믹의 충격이 하도 컸기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선뜻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망설여지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2.
힘든 일을 견디면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이 있습니다.
끝나기까지 조바심과 불안, 염려에 휩싸이곤 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에도 끝이 있습니다.

 

견뎌냈다는 자긍심도 갖게 됩니다.
물론, 코비드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
사업이 힘겹거나 직장을 잃은 분들,
정신적으로 힘겨웠던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예행연습>이라고 했듯이
어려움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 휴지와 물,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사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요.
사재기는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함도 배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모든 여정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납니다.

 

4.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변이 바이러스도 조심해야 하고
모든 것이 풀리면서 사람들의 긴장까지 풀어져서
무분별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아시안 혐오에 대한 소식도 종종 들려옵니다.

 

팬데믹 이후에 생길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개인적 격차도 큰일입니다.
요즘 시장에 가면 물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올랐답니다.

 

코비드보다 더 무서운 지구온난화도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한 가지 밀려온 파도를 넘고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바른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를 해냈으니
그 다음 문제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말입니다.
이제부터
좋은 소식만 들려오길 기대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Rejoice in hope, be patient in tribulation,
be constant in prayer (Rom 12:12)

 

하나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비추시는 빛(끝)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17 이-메일 목회 서신)

혁신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월요일, 셀폰에 속보가 떴습니다.
치매(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미국 FDA가 승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이오젠이라는 회사에서 신청한
치매를 늦추는 약을 FDA가 승인한 것입니다.
물론, 약효가 완전히 증명된 것이 아니어서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답니다.

 

새천년인 2000년대가 시작될 즈음,
2010년이 되면 암이 정복되고
치매 예방 주사까지 나올 것으로 예측한 경우도 있었는데
2020년이 지났는데도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이번 치매 치료제 승인이
치매의 완전 정복에 첫걸음이 되길 기대합니다.

 

2.
같은 날인 지난 월요일,
애플에서 장차 애플 제품에 장착될 신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운전 면허증을 애플에 다운로드하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캘리포니아 주가 승인하면,
앞으로 지갑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겠습니다.

 

자동차 키도 애플 전화기와 연결할 수 있다니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바람대로
사람의 몸과 정신, 마음까지 지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대단한 혁신입니다.

 

책꽂이에 있는 2007년에 출판된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s>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부터 14년 전, 2007년의 세상을 분석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영역별로 예측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니
재택근무(stay-at-home workers)에 대한 글이 있었습니다.

 

책이 출판된 당시에 미국에서는
420만 명 정도가 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90년에 비해서 23%가
80년에 비해서 100%가 증가한 수치랍니다.

 

주로 전화를 통한 상담과 마케팅 관련 직종이었습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고학력,
그리고 백인들의 재택근무 비율이 높다는 통계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자칫 자택 근무가 대세가 될 상황입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팬데믹은 물론 zoom과 같은 화상 기계가 유행할 것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집에서 일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인류가 꿈꾸고 그것을 이뤄내는
혁신(renovation)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암이나 치매 같은 난치병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매달려서 씨름하고 있으니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씩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혁신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팬데믹 기간 동안
유튜브로 예배하고 zoom으로 모임을 하고 있으니
이미 신앙의 혁신을 경험하고 있네요.
그래도 멈춰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장착한
새로운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의 약진도 기대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Ps 37:4)

 

하나님,
참빛 식구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10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는 …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그렇듯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골 1:9-12)를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제자 에바브라가 세운 골로새 교회를 마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단과 잘못된 사상이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케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앞으로 한 달여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중간중간에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에 대해서도 나누겠습니다.

 

2.
잠시 멈춰서
‘기도’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기도(prayer)는 명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간청하고, 교제하고,
이웃을 위해서 간구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2) 기도는 동사(움직임)여야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걸으면서 기도합니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기에 기도는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행여나 기도에 대해서 게을렀다면,
다시 마음을 잡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길 기대하는 것도
기도가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결과(열매)는
사물이나 사건, 인물(하나님)에 대해서 묘사하는 형용사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평화롭고, 간절합니다.
“내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기쁘다”는 찬송대로
기도하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솔직히, 기도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조급해지고, 참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는
기쁨을 넘어서 전율할 정도로 경이롭습니다.

 

기도라는 명사는 단순합니다.
기도한다는 동사는 활기찹니다.
기도와 관련된 형용사는 기도에 얽힌 모든 것을 풍성하게 드러냅니다.

 

3.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 마음과 신앙에
기도를 표현하는 형용사들이 셀 수 없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느낌, 감사, 생각이 계속해서 확장되길 바랍니다.

 

기도로 살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기도하는 참빛 식구들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사이에
수많이 이야기들이 생기는 2021년 기도에 대한 말씀 나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Continue steadfastly in prayer, being watchful in it with thanksgiving (Col 4:2)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한없이 풍성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3 이-메일 목회 서신)

 

 

레위 법전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아침에 함께 나누는 말씀이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출20-23장)입니다.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은
십계명을 서두로
하나님 백성의 삶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의 생활 관습과 신앙이 깃들어 있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대로 지킬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구약의 율법과 우리 사이에는
문화적, 시대적, 심지어 신앙의 간격(gaps)이 존재합니다.
구약의 율법서를 읽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2.
많은 경우,
구약은 세상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신약은 예언의 성취라는 도식으로 설명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구약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외에도
다채로운 사건, 이야기, 지혜가 들어 있기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일갈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신약 성경도 예언의 성취 이상으로 다양한 말씀들로 이뤄졌습니다.

 

3.
사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아우르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을 비롯한
율법의 정신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관습을 따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우리)이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사랑의 언약 관계가 아니라
남남이라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구약 율법의 정신입니다.

 

4.
구약의 율법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율법 조항이 있습니다.
때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조항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많은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존중,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공정함, 공평함,
특히 약한 자에 대한 배려를 비롯한 이웃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구약의 율법서를 읽어갈 때는
그 속에 숨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메시지를
보물 찾듯이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대의 문화와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업입니다.

 

그때 지루한 율법서가
흥미롭고 귀한 교훈으로 뒤바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하나님,
어려워 보이는 구약의 율법 속에서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보화를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7 이-메일 목회 서신)

 

씨케이다(cicada)

좋은 아침입니다.

 

1.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4년
인디애나에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매미 천지가 되었습니다.
창문에도, 자동차 위에도, 길에도, 나뭇가지에도
심지어 길을 갈 때 매미가 옷에 와서 붙을 정도입니다.
셀 수 없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씨케이다(cicada)라는 매미였습니다.
17년 동안 땅 밑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한꺼번에 성충으로 지상에 나타나서 짝짓기를 하고 한두 달 후에 사라집니다.
자연의 신비입니다.

 

2.
엊그제 신문에 보니
동부에 씨케이다가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2004년 인디애나에서 씨케이다를 본 후
정확히 17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씨케이다를 보면
다음 씨케이다가 태어날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다음 씨케이다를 볼 수 있을지,
아이들은
다음 씨케이다가 나올 때 몇 살이 되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
17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막연한 소원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씨케이다 생애 주기를 보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저희도 2004년 씨케이다를 보면서
17년 후에는 저희 부부가 60 가까이 될 것이라며 놀라워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른을 넘거나 가까이 갈 것이라면서
그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올여름에도 동부와 중서부에는 매미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매미 철이 지나면,
앞으로 17년을 떠올리면서 각자 인생의 꿈을 꾸겠지요.

 

3.
씨케이다가 살아가는
17년이라는 주기(cycle)는 너무 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하루,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 한 달, 일 년을 삽니다.

 

각각의 주기에 맞게
삶을 준비하고, 펼치고,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17년 전, 씨케이다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올해 다시 나온다는 보도에 갑자기 씨케이다가 그리워집니다.

 

어쩌면 펜데믹을 비롯한 지금 우리의 삶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께름칙한 것들도 있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립고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회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present)로 주신 오늘 현재(present)를
마음껏 누립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 3:11)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to man’s heart. (Ecc 3:11)

 

하나님,
길고, 때로는 짧게 느껴지는 삶의 순간을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0 이-메일 목회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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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로마서 1장 3-4절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절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을 주(主, Lord)라고 고백하는 것은
초대 교회의 매우 중요한 신앙이고 전통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주”라고 불렀기에
제국의 황제가 아닌 나사렛 출신 예수를
“주”라고 부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칫, 로마 당국에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순교를 각오한 위험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주”라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선포했습니다.

 

2.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주후69-155년)은
불에 타서 순교했습니다.

 

폴리갑은 당시 로마 총독과 친구였습니다.
친구를 잃는 것을 주저한 로마 총독이 폴리갑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주가 아니라 로마 황제를 주로 부르면)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폴리갑이 남겼다는 말이 유명합니다:
내가 86년간 예수님을 섬겼고,
그분이 나를 모른다고 한 적이 없으신데,
내가 어떻게 내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순교 사화에 의하면 폴리갑이 순교하기 위해서
원형 경기장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폴리갑이여, 강건하라! 대장부답게 싸워라!

 

폴리갑을 죽이기 위해서 불을 붙였을 때, 불꽃이 그를 둘러쌓고
신비로운 향기가 원형 경기장을 가득 채웠답니다.
폴리갑은 그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순교했습니다.

 

3.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초대 교회의 전통은
2천 년 교회사는 물론
오늘 우리 참빛 교회까지 변함없이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헷갈릴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여러 가지로 대답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똑같이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면
더할 것도 감할 것도 없는 완벽한 신앙 고백입니다.
기독교에 입문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이요 첫 단추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모든 대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이 한마음으로 한 목소리로
그리고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드러내기 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4)

 

[He] was declared to be the Son of God in power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Jesus Christ our Lord. (Rom 1:4)

 

하나님,
교회에서, 가정에서, 각자의 삶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한결같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13 이-메일 목회 서신)

포모 증후군

좋은 아침입니다.

 

1.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예전 같으면 속속들이 알 수 없었던
개인의 삶과 친지들의 모임이 전부 알려지고 있습니다.

 

행여나 자기 삶이 남들보다 자랑스럽지 못하거나
친지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때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상하고, 소외된 느낌이 듭니다.

 

1990년 처음 소개된 포모 증후군입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 소외되었거나 자신만 배제된 듯한 두려움입니다.
우리 말로 “고립 공포감”이라고 옮기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 성취, 행복 등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은 행복한 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것 같을 때
고립 공포감이 찾아옵니다.

 

미국의 GameStop 신드롬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투자를 통해서 큰돈을 벌려는 현상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그때 자신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주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자신만 대열에서 배제된 것 같은 고립 공포감(FOMO)을 느낍니다.

 
2.
자기만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포모(FOMO)는
현대인들이 겪는 커다란 심리적 부담입니다.

 

고립 공포감을 갖게 되면
자아 존중감이 떨어지고,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잃고
심리적으로 무척 위축되게 마련인데
많은 현대인이 포모( FOMO)를 느낍니다.

 

그러니 무엇엔가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이든 해야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나눴듯이
자칫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종으로 붙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립 공포감이 아니라
도리어 배제되었다는 기쁨(JOMO: Joy of Missing Out)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데
세상에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포모(FOMO)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되시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행여나, 세상일에 조금 배제되고 밀려나는 느낌이 들어도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을 느낍니다.

 

배제되었다는 공포가 아니라
배제되었어도 기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 식구들이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가 되고, 개인의 삶이 속살까지 드러나고
자랑이 앞서는 시대가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고립 공포감(FOMO)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같은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배제의 두려움이 배제의 기쁨으로 변하길 기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하나님,
참빛 식구들과 항상 함께 하소서.
행여나 외롭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6 이-메일 목회 서신)

마스크 대란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CDC(질병관리본부)에서
백신을 맞은 경우 산책, 야외 소그룹 모임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안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백신 이후에 상황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작년 이맘때
미국은 마스크 대란을 겪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아니었던 미국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습니다.
대통령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버젓이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스크 자체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의료진들까지 마스크가 부족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마스크를 선물해주고 선물 받는 것이
생명줄을 얻는 것만큼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2
일 년이 지난 지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공공건물은 물론 작은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 불가입니다.

 

게다가, 이제 마스크가 남아돕니다.
웬만한 상점에 가면 쉽게 마스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입니다.

 

그러다 보니
생명줄처럼 귀했던 마스크가
조금씩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이 아쉽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마스크야말로 백신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준 최고의 무기였는데 말입니다.

 

3.
작년의 마스크 대란이 엊그제 같은데
일 년도 안 돼서 마스크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첫째로, 어떤 일이 닥쳐도 초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마스크뿐 아니라 물과 휴지, 손 세정제를 두고도 전쟁을 벌였는데
지금은 넘쳐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지천입니다.

 

우리가 조급하고 초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별것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차분하게 시간을 벌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둘째는,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은 금세 사라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토록 귀하던 마스크도 공급이 늘어나면서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품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스크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애지중지 여기고
온 힘을 다해서 추구하는 것들이
언젠가는 허무하게 사라지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금세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쏟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 앞에서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큰 그림을 볼 줄 압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붙들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깨닫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앞으로 주일 예배에서
로마서의 첫 일곱 구절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흔들림 없이 꼭 붙들고 살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고
믿음의 길에 견고히 서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6)

 

하나님,
진실로 귀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마음에 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4. 29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