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웅

좋은 아침입니다.

 

1.
우여곡절 끝에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2020년 도쿄(Tokyo 2020)라는 명칭을 보면서,
팬데믹으로 잃어버린 1년을 되찾는 느낌도 받습니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감동, 안타까움, 절망과 희망 등
수많은 이야기가 생성됩니다.

 

엊그제는
미국 최고의 체조선수 바일스(Biles)가
경기 중간에 기권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일스는 체조 코치의 성폭력을 폭로한 선수로 유명합니다.
미국 최고의 스포츠 영웅(GOAT; Greatest of All Time)칭호도 받았습니다.

 

24세로 체조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바일스이지만,
첫 번째 경기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자
그 중압감에 “내 마음을 지켜야겠다”라면서 나머지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2.
바일스 뿐만 아니라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스트레스 정도가 무척 높답니다.

 

평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종목이나 선수들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 명예와 부(富)를 얻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올림픽에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경기에 임하는 부담감이 상당하답니다.

 

한순간에 4년은 물론 평생의 꿈이 무너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조국을 대표해서 경기하는 부담감도
자부심 못지않게 클 것 같습니다.

 

바일스의 경기 포기를 두고
올림픽 선수들의 심리, 정신적 부담감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각계에서 바일스의 포기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부담감을 숨기고 억지로 경기하는 것보다
자신을 찾으려는 솔직함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준 것입니다.

 
3.
평소에도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저는
미국 올림픽 중계사인 NBC를 켜 놓고 일하곤 하는데
올림픽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은 비인기 종목들도 매우 많습니다.

 

동네에서 자주 보던 스케이드 보드도 올림픽 종목이었고
13살 소녀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인기 종목에서 자기와 싸우고,
조국을 위해서 땀을 흘린 선수들이 주는 감동이 큽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의 길을 가는 작은 영웅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인기 종목이 아니어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선수들,
행여나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해도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선수들,
중간에 경기를 포기할 정도로 부담감에 휩싸였던 유명 선수까지…

 

생각해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청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 어색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청중이 없는 곳에서 주어진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청중이 되심을 믿고 걷는 길이요, 인생의 경주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작은 영웅, 일상 영웅인 셈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의 경주, 인생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내딛으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발걸음마다 우리 주님께서 동행하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작은 영웅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3-24)

 

 

하나님,

오늘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의 손을 붙들어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29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눈과 귀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화요일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시편 12편 말씀을 나눴습니다.

 

여기서 “가련한 자들”은 폭력에 희생될 정도로

업신여김을 받는 힘없고, 돈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궁핍한 자”는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하고

결핍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부족합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없으니

한숨이 나오고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눌림과 탄식을 보시고

직접 일어나셔서 그들이 원하는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힘없는 사람들이 겪는 눌림(학대)과 업신여김을 보고,

하나님의 귀는

꼭 필요한 것조차 없는 궁핍한 사람의 탄식을 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2.

요즘 세상은 매우 풍요롭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을 갖고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욕심이 한이 없고

우리의 삶이 상대적이어서 결핍과 뒤처짐을 느끼지만,

시편 12편에서 말하는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 비하면

우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어려운 삶을 사는 분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궂은일에 종사하지만

결코 생활이 나아질 수 없는 분들입니다.

 

3.

지난주 제 전화기에 도착한

월스트릿 저널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제가 열리면서, 여기저기서 사람을 구하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경쟁력을 갖춘 분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경제가 열리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끝나도 예전의 직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였습니다.

 

레이티온(Raytheon)이라는 항공 산업 관련 업체는

비행기 여행이 감소하면서 21,000명을 해고했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공장 자동화를 비롯한 기업의 혁신으로

해고한 사람들을 모두 재고용할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하얏트와 같은 호텔들 역시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많은 종업원을 해고했는데

팬데믹 이후에는 룸서비스 횟수를 대폭 줄이면서

그곳에서 종사하던 저임금 직원들을 다시 부르지 않을 예정이랍니다.

 

이런 현상은 고속도로 톨 게이트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미 감지되었는데

팬데믹 이후에 저임금, 비전문인 고용이 부쩍 줄어들 것이라는 기사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들이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궁극적이고 커다란 문제점이 제기됩니다.

세상이 잘 나가는 사람들만의 리그로 변하면,

경쟁에 뒤쳐진 사람들은 가련함과 궁핍함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 편이라고 시편 기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네요.

 

4.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눈과 귀가 이들을 향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들에게 마음을 두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적어도 함께 울며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시편 12:5)

 

 

하나님,

힘겹게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땅의 백성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22 이-메일 목회 서신)

방심

좋은 아침입니다.

 

1.
델타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도 백신 접종률이 80%에 이르지만
바이러스 감염곡선이 머리를 들고 위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내에서는 아직 많은 분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식당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만큼 규정도 완화되었습니다.

 

우리 지역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난주일 영국에서
영국과 이탈리아의 유럽 축구 결승전 경기가 있었는데
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수많은 관중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국도 감염자 숫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2.
제 컴퓨터에서 홈페이지로 쓰는
MSN에 설문조사가 열렸습니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80%가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답했습니다.

 

델타 바이러스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31%는 전혀 염려되지 않고, 26% 약간 염려되고
32%는 신경이 쓰일 정도, 11% 만이 크게 염려된다고 답했습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변이 바이러스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반 이상이 올여름 다른 주로 여행을 갈 계획이고
편안하게 극장에도 출입하겠다고 답한 사람들이 57%였습니다.

 

75%가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고,
72%는 식료품점에 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우리 지역은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을 보는데
마스크 없이 상점에 드나드는 지역도 많은 것 같습니다.

 

3.
물론 MSN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설문 조사이고
80%가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들이지만,
델타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고려했을 때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매우 느슨해졌음을 느꼈습니다.

 

하긴, 팬데믹이 이렇게 길어질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집에 있는 것도 지칠 만합니다.
혹자는, 백신 접종을 끝냈으니 감기 정도로 지나갈 것을 예상하고
편하게 생활하자고 큰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잘- 참았으니
마지막까지 말 그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대합니다.

 

4.
코로나 바이러스만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과 삶도 느슨해지지 않았는지요?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깨끗이 닦고
거리 두기를 하던 습관이 슬며시 무너지지 않았는지요?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어렵습니다.
시작은 잘해야 절반이니 자칫 중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팬데믹 시국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자칫 공든탑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방심하지 마시고, 처음 마음을 갖고 더욱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팬데믹 뿐만 아니라 매사에
처음보다 끝이 좋은,
아니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은 신앙과 삶을 간직합시다.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살후2:13)
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God for you, brothers beloved by the Lord,
because God chose you as the first fruits to be saved, through sanctification
by the Spirit and belief in the truth. (2The 2:13)

 

 

하나님,
처음 사랑과 처음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게 하고
오늘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5 이-메일 목회 서신)

눈물

좋은 아침입니다.

 

1.
7월 한 달 동안
주일 예배에서 읽을 말씀은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듯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눈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렘9:1)

 
2.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무덤으로 가시면서
나사로의 누이들과 친지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요11:32)

 

곧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이신데도
형제들의 슬픔에 잠시라도 진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망가진 것을 보고
두 번째로 우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는데
히브리서에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히5:7).

 

이처럼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3.
우리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처럼
안타까운 세상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자신이 힘들 때도 눈물이 나옵니다.
마음 아픈 과거를 생각해도,
어려움이 예상되면 여지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밤잠을 설치고, 침상을 적셨던
시편 기자의 고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눈물의 또 한가지 기능은
카타르시스(정화)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눈물이 가져다 주는 선물입니다.

 

모든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연기이지요.
예레미야나 예수님은 가슴으로 우셨습니다.

 

4.
인생길을 걷다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울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때는 마음껏 우셔야 합니다.
물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우시기는 것도 꼭 잊지 마십시오.

 

한 걸음 나가서
누군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더없이 고귀한 순간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마지막 부분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한 주간, 예레미야의 파토스, 그 마음을 닮아 봅시다.
함께 울고, 함께 공감하고, 정말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세상에 못된 사람들, 미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번 울어봅시다.
특히, 흩어진 참빛 식구들을 눈에 그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마음으로 하나되는 우리 교회이길 원합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5)
Jesus wept (John 11:35)

 

 

하나님,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참빛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8 이-메일 목회 서신)

실로암 망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몇 주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그곳을 지나던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버스 승객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12층 콘도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백여 명의 실종자가 있어서
사망자 숫자가 더 늘어 날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생긴 사고는
건물 철거 작업 중에 도로를 폐쇄하는 등
안전관리 소홀이 애꿎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버스에 탔던 승객들의 사연을 대하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은 40년 전 습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수년 전부터 건물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세밀한 검사 없이 무시하다가 어이없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의 잔해를 보면서
1995년 6월 퇴근 시간 무렵에 무너져 내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2.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 있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명이 죽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눅13:1-5)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 몇을 죽여서 그 피를 제물에 섞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빌라도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것임을 은근히 밝히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는 의인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당한 사고를 죄와 연결하고
자신은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어리석고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결코 죄가 많은 것이 아니라고 일갈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서 18명의 사상자를 낸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을 언급하십니다.
망대의 붕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신, 누구도 그런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개를 당부하십니다.

 

3.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는데
예전에는 자연재해나 큰 사고를 죄와 연결하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자칫 그런 재난을 겪지 않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오만함의 표출일 수 있고
재난당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그릇된 심보입니다.

 

광주나 플로리다 참사와 같은 사건 사고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철저히 구축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입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말아야겠습니다.

 

2021년 하반기의 시작인
7월 새달의 첫날을 맞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하나님,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각종 사건과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 이-메일 목회 서신)

추임새

좋은 아침입니다.

 

1.

“옛날, 옛적에”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작되던 도입부입니다.

 

누구든지 옛날 이야기를 전할 때는
빼놓지 않고 “옛날 옛적에”로 시작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별것 아닌 데도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각색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했습니다.

 

2.
탁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쏙- 빼앗아 갑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처음은 호기심 가득하지만
뒤로 가면서 시들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 재미가 없다고 딴청을 피우거나
이야기를 마다하면,
다시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기 힘듭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도 자신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조금 지루해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등등의 추임새를 넣어주면,
자기 생각과 지식, 상상력까지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3.
<다시 성경으로>라는 책을 쓴
레이철 에반스라는 작가는 마지막 결론에서
“세상에! 그래서?”라는 추임새를 매우 적절하게 사용했던
마키라는 자기 올케를 소개합니다.

 

저자의 올케는 이 두 마디 추임새로 동네는 물론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흥을 돋워 주었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독차지했습니다.
“세상에! 그래서?”라는 추임새 두 마디로 이룬 행복입니다.

 

레이철 에반스가 말하듯이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그리고 and”입니다.

 

“그리고”는 이야기와 사건을 계속해서 이어줍니다.
어느 순간에 끝날 것 같은 이야기도 “그리고”를 만나면
새로운 말씀으로 발전하니,
“그리고”는 성경의 추임새인 셈입니다.

 

4.
지난주일 설교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을 이루길 기도했습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은 지루한 여정입니다.
단숨에 정답을 찾기 어렵고, 결론에 도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추임새”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추임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 “그리고…” “아하…” “조금만 참자” 등등
그리고 바울의 기도대로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누군가 곁에서 추임새를 갖고 격려해주면
그 자체가 힘이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지가 있다면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의 “그리고”를 통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견딤과 오래 참음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힘으로” 북돋아 주시고
그 힘이 우리 안에 능력이 되어서
모든 견딤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견디고 오래 참으실 참빛 식구들을
“멋지십니다”는 추임새로 응원하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11절)
Being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Colossians 1:11)

 

하나님,

주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 곁에서
추임새와 함께 힘을 더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24 이-메일 목회 서신)

희망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막막했는데
엊그제부터 세상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그 답답하고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뎠습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백신의 개발도
온 세상이 연대하고 협력하니 예상외로 일찍 개발되어서
샌프란의 경우 집단 면역에 가까운 숫자가 백신 접종을 끝냈습니다.

 

물론, 아직도 서로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행여나 2-3주 후에 코로나 케이스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어렵게 문을 연 경제와 세상이 다시 닫히면 안 됩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학교에 가고
우리 교회도 얼굴을 보면서 예배할 수 있고
팬데믹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소상공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 합니다.

 

팬데믹의 충격이 하도 컸기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선뜻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망설여지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2.
힘든 일을 견디면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이 있습니다.
끝나기까지 조바심과 불안, 염려에 휩싸이곤 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에도 끝이 있습니다.

 

견뎌냈다는 자긍심도 갖게 됩니다.
물론, 코비드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
사업이 힘겹거나 직장을 잃은 분들,
정신적으로 힘겨웠던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예행연습>이라고 했듯이
어려움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 휴지와 물,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사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요.
사재기는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함도 배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모든 여정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납니다.

 

4.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변이 바이러스도 조심해야 하고
모든 것이 풀리면서 사람들의 긴장까지 풀어져서
무분별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아시안 혐오에 대한 소식도 종종 들려옵니다.

 

팬데믹 이후에 생길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개인적 격차도 큰일입니다.
요즘 시장에 가면 물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올랐답니다.

 

코비드보다 더 무서운 지구온난화도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한 가지 밀려온 파도를 넘고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바른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를 해냈으니
그 다음 문제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말입니다.
이제부터
좋은 소식만 들려오길 기대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Rejoice in hope, be patient in tribulation,
be constant in prayer (Rom 12:12)

 

하나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비추시는 빛(끝)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17 이-메일 목회 서신)

혁신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월요일, 셀폰에 속보가 떴습니다.
치매(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미국 FDA가 승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이오젠이라는 회사에서 신청한
치매를 늦추는 약을 FDA가 승인한 것입니다.
물론, 약효가 완전히 증명된 것이 아니어서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답니다.

 

새천년인 2000년대가 시작될 즈음,
2010년이 되면 암이 정복되고
치매 예방 주사까지 나올 것으로 예측한 경우도 있었는데
2020년이 지났는데도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이번 치매 치료제 승인이
치매의 완전 정복에 첫걸음이 되길 기대합니다.

 

2.
같은 날인 지난 월요일,
애플에서 장차 애플 제품에 장착될 신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운전 면허증을 애플에 다운로드하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캘리포니아 주가 승인하면,
앞으로 지갑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겠습니다.

 

자동차 키도 애플 전화기와 연결할 수 있다니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바람대로
사람의 몸과 정신, 마음까지 지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대단한 혁신입니다.

 

책꽂이에 있는 2007년에 출판된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s>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부터 14년 전, 2007년의 세상을 분석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영역별로 예측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니
재택근무(stay-at-home workers)에 대한 글이 있었습니다.

 

책이 출판된 당시에 미국에서는
420만 명 정도가 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90년에 비해서 23%가
80년에 비해서 100%가 증가한 수치랍니다.

 

주로 전화를 통한 상담과 마케팅 관련 직종이었습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고학력,
그리고 백인들의 재택근무 비율이 높다는 통계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자칫 자택 근무가 대세가 될 상황입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팬데믹은 물론 zoom과 같은 화상 기계가 유행할 것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집에서 일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인류가 꿈꾸고 그것을 이뤄내는
혁신(renovation)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암이나 치매 같은 난치병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매달려서 씨름하고 있으니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씩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혁신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팬데믹 기간 동안
유튜브로 예배하고 zoom으로 모임을 하고 있으니
이미 신앙의 혁신을 경험하고 있네요.
그래도 멈춰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장착한
새로운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의 약진도 기대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Ps 37:4)

 

하나님,
참빛 식구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10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는 …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그렇듯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골 1:9-12)를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제자 에바브라가 세운 골로새 교회를 마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단과 잘못된 사상이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케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앞으로 한 달여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중간중간에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에 대해서도 나누겠습니다.

 

2.
잠시 멈춰서
‘기도’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기도(prayer)는 명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간청하고, 교제하고,
이웃을 위해서 간구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2) 기도는 동사(움직임)여야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걸으면서 기도합니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기에 기도는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행여나 기도에 대해서 게을렀다면,
다시 마음을 잡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길 기대하는 것도
기도가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결과(열매)는
사물이나 사건, 인물(하나님)에 대해서 묘사하는 형용사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평화롭고, 간절합니다.
“내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기쁘다”는 찬송대로
기도하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솔직히, 기도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조급해지고, 참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는
기쁨을 넘어서 전율할 정도로 경이롭습니다.

 

기도라는 명사는 단순합니다.
기도한다는 동사는 활기찹니다.
기도와 관련된 형용사는 기도에 얽힌 모든 것을 풍성하게 드러냅니다.

 

3.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 마음과 신앙에
기도를 표현하는 형용사들이 셀 수 없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느낌, 감사, 생각이 계속해서 확장되길 바랍니다.

 

기도로 살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기도하는 참빛 식구들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사이에
수많이 이야기들이 생기는 2021년 기도에 대한 말씀 나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Continue steadfastly in prayer, being watchful in it with thanksgiving (Col 4:2)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한없이 풍성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3 이-메일 목회 서신)

 

 

레위 법전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아침에 함께 나누는 말씀이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출20-23장)입니다.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은
십계명을 서두로
하나님 백성의 삶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의 생활 관습과 신앙이 깃들어 있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대로 지킬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구약의 율법과 우리 사이에는
문화적, 시대적, 심지어 신앙의 간격(gaps)이 존재합니다.
구약의 율법서를 읽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2.
많은 경우,
구약은 세상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신약은 예언의 성취라는 도식으로 설명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구약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외에도
다채로운 사건, 이야기, 지혜가 들어 있기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일갈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신약 성경도 예언의 성취 이상으로 다양한 말씀들로 이뤄졌습니다.

 

3.
사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아우르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을 비롯한
율법의 정신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관습을 따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우리)이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사랑의 언약 관계가 아니라
남남이라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구약 율법의 정신입니다.

 

4.
구약의 율법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율법 조항이 있습니다.
때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조항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많은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존중,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공정함, 공평함,
특히 약한 자에 대한 배려를 비롯한 이웃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구약의 율법서를 읽어갈 때는
그 속에 숨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메시지를
보물 찾듯이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대의 문화와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업입니다.

 

그때 지루한 율법서가
흥미롭고 귀한 교훈으로 뒤바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하나님,
어려워 보이는 구약의 율법 속에서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보화를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