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주보에 싣고 있는

케빈 캐럴(Kevin Carroll)의 <빨간 고무공의 법칙>을 소개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 전체를 촉진하고, 변화시키고

이끄는 촉매(catalyst)가 되었습니다.

 

촉매에 해당하는 영어 <카탈리스트 catalyst>는

그리스어 <카타류인>에서 왔는데, “풀어내다”는 뜻입니다.

 

잔뜩 막혀 있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

촉매가 투입되면 열어젖히고 풀어냅니다.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에 촉매를 첨가하면 빠르게 활성화됩니다.

 

저자는 무엇을 하든지

어릴 때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NBA 프로 농구팀의

피지컬 트레이너(physical trainer)를 두루 거친 후에

나이키 창업자에게 발탁되어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그 모든 인생 여정에서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에 촉매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떠나고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작고 왜소하고 내성적인 소년이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있었습니다.

그 정신과 그때의 행복을

인생 굽이굽이에 적용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말 그대로 촉매가 되었습니다.

 

2.

우리에게도

지루한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고,

막힌 인생을 열어주고,

한 단계 두 단계 상승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가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동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깜짝 놀랄 정도로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에 정체를 경험하고 있다면,

촉매를 통해서 신앙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촉매가 있다면,

당연히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하나님 말씀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침반처럼 살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웁니다.

 

예배는 어떨까요?

예배 속에서 삶을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동지를 만나고,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면서

행복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자체가 우리 인생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닮은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촉매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촉매입니다.

 

3.

삶에 초대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주고

마음에 뿌듯한 감동이 밀려오고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동기와 힘이 되는 촉매,

빨간 고무공!

 

우리 각자의 빨간 고무공을 촉매 삼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갑시다.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이

촉매가 되어야 함도 잊지 맙시다.

 

내게 이르시기를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촉매가 되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30 이-메일 목회 서신)

작심삼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20일이 넘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대입하면

벌써 일곱 번은 새로 결심할 시간입니다.

 

오십이 되기 전까지 새해를 맞으면

하나님 앞에서 하고 싶은 일,

이웃과 관계에서 해야 할 일

저 자신과 관련된 일로 나눠서

새해 계획을 꼼꼼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새해에 세운 계획을 일일이 점검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서

제가 주도하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작정으로

따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들

몇 가지를 선정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작심삼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2.

2-3년 전부터 세우는 새해 계획이 있습니다.

책꽂이의 책들 가운데 읽지 않고 꽂아만 놓았던

책을 꺼내서 한 장(chapter)라도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책 몇 권 꺼내서 읽다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같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먼지가 앉을 정도로

케케묵은 책들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20일이 지났건만,

아직 시작을 못 했습니다.

작심만 하고 20일이 흘렀습니다.

올해는 꼭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개운할 것 같습니다.

 

3.

결심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것,

사람들에게 결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결심한 것을 모두 지킨다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계획하고 결심한 것을

스스로 만족할 정도만이라도 지키기를 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아하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감정적인 의미보다

언약을 지킨다는 ‘의지적인 면’이 더 큽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을 지킨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늘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올 한 해 새해에 계획하고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언약)한 것을 지키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의지’가 우선함을 기억합시다.

 

저도 올해 계획한

책 읽기를 절반이라도 꼭 실천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절대 작심삼일이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에이카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 봄 안식 기간에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한 폼페이에 갔었습니다.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40여 분 내려갔는데

유명한 관광 명소답게 세계 각지에 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폼페이는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로 유명하듯이,

주 후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18시간 만에 모든 도시가 화산재에 뒤덮였습니다.

 

로마보다 먼저 세워진 유력한 도시였습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도시를 계획했고

물고기 눈에 해당하는 원형 경기장은

폼페이 유적지 남쪽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592년 운하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땅 밑에 숨겨진 도시를 발견해서

폼페이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도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화산재가 밀어닥치면서

화려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연회장이나 친목의 장소였던 커다란 대중목욕탕도

검투사(그레디에이터) 경기장도

귀족들이 살고 있었다는 대저택들도

뜨거운 화산재에 녹아 내렸습니다.

 

미처 도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죽은

폼페이 주민들의 모습이 화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폼페이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이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3.

AI까지 동원해서 재해를 관리하는 요즘에는

웬만한 자연재해는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LA 산불을 보면서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멍하니 TV 화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화마(火魔)가 훑고 간 도시는

폼페이가 생각날 정도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미리 대피할 수 있었기에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2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생명이 중요하기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TV 화면에 뜰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3.

정확히 2년 전인 2023년 1월 8일

목요 서신의 제목도 오늘과 똑같이 <에이카>였습니다.

 

히브리어 <에이카>는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함락되고

하나님의 성전까지 무너진 것을 놓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탄식하면서 외친 한 마디였습니다.

 

“어찌하여!” “슬프다” 는 탄식입니다.

 

2년 전에는

예레미야 애가를 아침에 묵상하면서 에이카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세상에 닥친 재난과 비극, 위기와 혼란 앞에서

실제로 <에이카>를 외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분들을 위로해 주옵소서.

살려 주옵소서.

 

에이카!

어찌하오리이까!

 

슬프다[에이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애가 1:1)

How lonely sits the city that was full of people! (Lam 1:1)

 

하나님,

믿음 안에서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는 세상을 기다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16 이-메일 목회 서신)

예언자 아모스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때

구약 성경 아모스를 펼쳐 읽습니다.

 

아모스는 남유다 예루살렘 출신인데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올라가서 활동했습니다.

텃세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아모스의 예언은 집요했고, 거칠었고

그릇된 것을 고발하고 지적하기에 충분히 예리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 살 때입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했고 강한 자들이

약한 백성들을 약탈해서 자기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공의(바름)와 정의(공평)가 무너졌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고 고발합니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참 빛이 세상에 왔지만,

어두운 세상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빛을 빛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치부가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수치심이라도 있었으면 다행입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어두움의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지요.

 

어두움 속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무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자기 배만 채우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과 같은

거친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악의 실체요 본성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3.

지난 토요일 아침 기도회에서

성경에는 예언자 신앙과 제사장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신앙은 예루살렘 성전이 중심입니다.

체제를 보호하고 기존의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전통을 유지해야 하기에 많은 사람을 품고 갑니다.

 

예언자 신앙은 모세로 대표되는 광야 신앙입니다.

제사장 직분이 세습되는 것과 달리

예언자들은 그때그때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에 외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몸짓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체제를 향해서 쓴 소리하고

잘못된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공의와 정의를 촉구했습니다.

 

제사장이 인기를 얻었다면,

예언자들은 대부분 미움을 받았습니다.

 

2025년 새해의 시작이 쉽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을 쫓아 살았습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꿈꾸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오직 정의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하나님,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9 이-메일 목회 서신)

새해에는…

1.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 않습니다.

 

연말에 한국에서는 너무 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사연을 듣고 읽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저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부를 뿐입니다.

 

주님의 깊은 위로를 구합니다.

비행기를 만든 회사이든지,

비행기를 운항하던 회사이든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든지,

어디서든지 사람의 실수가 발견된다면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완벽하게 개선해야 하겠습니다.

 

2.

새해가 되었는데,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도 오리무중입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비상계엄의 상처가 너무 큽니다.

 

무엇보다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렵답니다.

환율이 IMF 이래 가장 높이 올랐습니다.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으로서 큰 부담입니다.

소상공인들에게 그 모든 짐을 지우는 격이 됩니다.

힘없는 백성들을 살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미국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예측불허의 성격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번 대통령에서 물러날 때,

미국 국회에 난입했던 폭도들을 지지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분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서류를 갖추지 못한 불법체류자들에게

냉혹한 겨울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이민자들에게도 절대 이롭지 않습니다.

 

본인이 큰소리쳤듯이

취임하고 한 달 안에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치게 한다면 그나마 점수를 주겠습니다.

꼭 약속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3.

지금부터 120년 전

구한말 나라를 팔아버린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와 똑같이

올해도 뱀띠해 을사년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하루속히 안정되고 바른 나라로 세워지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생애 마지막 대통령직을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엄중하게 수행하길,

몇 년째 계속되는 지구상의 전쟁이 그치길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눴듯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지혜,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결(일편단심 一片丹心)을 갖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머뭇머뭇할 수 없습니다.

포기해도 안 됩니다.

소망의 노래를 부르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살아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

 

 

하나님,

해도 시시때때로

살아갈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2 이-메일 목회 서신)

한 가지 소원

좋은 아침입니다.

 

1.

성탄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경축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신 33년은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우리도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할 텐데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이기적인 면이 너무 많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쓰기가 두렵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고

진짜가 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뿐입니다.

 

2.

헤르만 헤세의 <아우구스투스>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호적을 명령한 인물입니다.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여윈 상태에서 아들(유복자)을 낳고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라고 지었습니다.

남편 없이 키우게 될 아들이 위대한 인생을 살기 바란 것입니다.

 

이웃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이 찾아와서 어떤 아이가 되길 바라는지 묻습니다.

여인은 자기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소원대로 아들은 정말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랑을 받기만 하던 아이는 응석받이로 자랐고,

받는 것에 익숙한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에 실패하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만 받다 보니 인생이 도리어 망가진 것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 이 아이에게

어머니를 찾아왔던 노인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동안의 삶이 행복했는지 묻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 아이는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미워하고 조롱하고 핍박하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서 좋은 것을 찾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자 노년의 삶이 행복했습니다.

주는 기쁨을 새롭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여기저기서 사랑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과 받은 사랑을 대조해 보면

받은 사랑이 더 많아서 “마이너스(-)” 계좌가 되었습니다.

베푼 사랑이 더 남아야 하늘나라에 예금이 될 텐데요…

 

단지, 받는 것에 길들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남은 며칠은

사랑을 베풀면서 사랑의 빚을 갚아 봅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하나님,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2. 26 이-메일 목회 서신)

토네이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토요일 새벽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20여 분 동안

토네이도 경보가 내렸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토네이도라니요!

경고음에 잠이 깬 주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에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쓰나미 경보기 내린 바 있어서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가는데

한 권사님께서 zoom에서

모이자는 제안을 주실 정도로 급박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토네이도가 상륙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80마일에 육박하는 비바람이 불어서

주택가는 물론 Golden Gate Park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산호세 남쪽의 스캇 밸리에

토네이도가 불어 닥쳐서

나무들이 쓰러지고, 자동차가 뒤집히고

인근 주택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2.

20여 년 전, 인디애나에 있을 때는

토네이도 경보 사이렌도 종종 울리고,

학교 기숙사 전체가 정기적으로

토네이도 대피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는 지역에서 40여 분 떨어진 곳을

토네이도가 쓸고 간 흔적이

마치 커다란 트랙터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들판은 물론 집까지 밟힌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미나리로 유명한 정이삭 감독이

1996년에 제작된 토네이도 영화의 원조 <트위스터>의 속편으로

<트위스터스>를 제작해서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토네이도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토네이도의 신비를 밝히고, 방지할 방안을 모색하는

대표적인 재난 영화입니다.

 

3.

지금 생각해도 샌프란에 토네이도 경보가 내린 것,

실제로 샌프란에서 70여 마일 떨어진 스캇 밸리에

토네이도가 상륙한 것 등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물론 고대 시대에 자연재해를

신의 심판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토네이도급 계엄이 선포되었다니,

국민들에 의해서 6시간 만에 제지가 되었지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연재해로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니

전쟁은 물론 계엄까지

인간이 만드는 재앙은 그쳐야 하고 꼭 막아야 합니다.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가 안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동네를 넘어서 태평양 건너 조국 대한민국이

다시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 각자의 삶에 세상의 물질과 힘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샘물처럼 솟아나길 기도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계 3:16)

 

하나님,

안팎으로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2. 19 이-메일 목회 서신)

요한 계시록 읽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마다 요한 계시록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읽는

성경의 마지막 책 계시록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마지막 종말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을 비롯한 하나님의 천사들과

악한 세력들이 벌이는 천상의 전쟁과 천지개벽의 종말은

요한 계시록을 묵시(apocalypse)라는 문학 장르에 편입시켰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도 계시록은

앞에 있는 성경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전체는 물론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 세계의 종말을 전하고 있으니

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2.

요한 계시록은

666과 같은 마지막 때의 환난, 악과 선의 싸움,

마침내 성취될 하나님 나라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일곱 두루마리,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어린양 예수의 승리로 끝나고,

이마에 인을 받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 가서 환상을 보고 기록한 말씀이기에

계시록에는 상징이 넘칩니다:

악한 세력을 가리키는 바빌론,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는 각종 보석과 유리 바다 등등.

 

상징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계시록을 바라보는 입장도 많이 갈립니다.

계시록은 역시 어려운 말씀입니다.

 

3.

그런데, 요한 계시록은

초대 교회 당시 네로 황제를 비롯한 로마 제국의 박해 한 가운데 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이랍니다.

 

장차 이뤄질 일들을 미리 알려주면서

현재의 고난을 끝까지 견디고 신앙을 지킬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니,

요한 계시록의 실제 의도는 미래가 아닌 현재입니다.

현재를 견디는 힘과 지혜, 소망을 주시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이뤄질 미래를 당겨와서

현재를 사는 데 꼭 필요한 하나님 말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서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까? 종말은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 등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선의 최후 승리와 최종 구원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공상 영화 같은 이야기들은

사실(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채롭게 읽고,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에 빠져야 합니다.

 

4.

우리의 삶도 절대 쉽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려움이 늘 상존(常存)합니다.

 

아침마다 계시록 말씀을 읽으면서

어려움에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미래를 상상하면서

소망의 기쁨과 능력을 장착하기를 원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현재의 삶을 단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계시록 말씀을 읽는 자세랍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침마다 새롭건만

나는 언제나 무거운 눈꺼풀로 아침을 맞이한다.

피부가 너무 두꺼워 성령의 바람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 궁창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영광도 듣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나다.

유진 피터슨,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하나님,

계시록 읽기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힘과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2. 12 이-메일 목회 서신)

단순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소망의 인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갖고 있던 소망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를 비롯한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임박한 종말론을 믿었습니다.

핍박과 환난이 거세지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소망이 더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님이라는 기대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교회에서 상투적으로 가르치고 말하는

일반적인 교회 용어일 수도 있습니다.

 

2.

초대교회가 갖고 있던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언제든지 기쁨으로 그리도 당당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사는 그리스도인은

수시로 삶을 정리 정돈합니다. 필요 없는 것을 버립니다.

거추장스러운 삶을 못 견뎌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수시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사는 것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사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3.

단순한 삶입니다(Be simple).

중요한 것, 서너 가지 우선하여 선정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삶입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영성가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때 신앙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연스레, 주어진 삶에 집중하면서

밀도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은 물론 삶의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조로운 삶’은 경계해야 합니다.

삶이 단조로우면 지루합니다.

무색무취, 특색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듯이

분명한 색깔과 맛, 영향력이 있는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삶입니다.

 

단조로움이 흑백 텔레비전이라면

단순함은 다양하고 선명한 색상의 컬러텔레비전입니다.

대신, 너저분하고 불필요한 채널이 없을 뿐입니다.

 

4.

올해도 마지막 달을 맞이했습니다.

한해 내내 끌고 다니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과감히 가지치기(pruning)하고

가벼운 발길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장 2절)

 

하나님,

단정한 신앙과 삶을 갖추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2. 5 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나무 마루가 있었습니다.

 

옛날집 마루는 신발을 벗어 놓고 올라가는 앞쪽이 트여 있습니다.

가지고 놀던 작은 공이나 구슬 같은 것들이

마루 밑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마루 밑이 깜깜하니

군대에서 사용하는 군청색 플래시(손전등)를 갖고

마루 밑을 비춰서 공이나 구슬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마루 밑을 손전등으로 비추면

온갖 쓰레기들과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여기저기를 비추고 자세히 살펴야

마루 밑으로 굴러 들어간 공이며 구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예전에 잃어버렸던 제 물건도 덤으로 찾곤 했습니다.

먼지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순간이었습니다.

 

2.

겉으로는 번드레해도

우리 삶의 뒷면은 꽤 복잡합니다.

마루 밑창처럼 먼지를 비롯한

쓸데없는 것들이 쌓여 있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것들’이 정말 많지요.

마루 밑에 슬쩍 넣어버린 것들도 많구요.

먼지가 쌓여가는 것들입니다.

 

비유가 심한 것 같아 보여도

솔직한 우리 모습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마루 위만 신경 쓰지 말고

마루 밑도 살피기를 원합니다.

 

3.

그런데요!

제가 잃어버린 구슬이 마루 밑에 숨어 있듯이,

그곳에도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더 사랑하시거든요.

 

우리 삶이 너저분하고 부끄러워도

그곳에 숨겨진 하나님 손길의 흔적이 꼭 들어 있습니다.

숨은 축복들(hidden blessings)입니다.

 

4.

믿음의 잣대로 우리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곳을 빛 되신 예수님으로 비춰서

빛의 자녀에 걸맞은 신앙과 삶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던

숨은 축복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축복이 아닙니다.

마루 위에 올려놓고 세상에 자랑할 축복도 아닙니다.

먼지 속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축복입니다.

잃어버린 축복이고, 꼭 찾고 싶었던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임을,

우리가 믿는 믿음이 생명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임했음도

덤으로 그리고 새롭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숨겨진 축복을 찾아내는

감사절이 되길 바랍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하나님,

감사절을 맞아서

잃어버린 진짜 중요한 축복들을 찾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1. 2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