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좋은 아침입니다.

 

1.

3주에 걸쳐서

‘길’에 대한 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길은

베드로와 바울이 걸었던

로마의 <아피아 가도>였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을 모두 겪는 인생이지만,

예수님과 더불어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예루살렘 외곽에 위치한

“해골(골고다, 갈보리)”이라는 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지은 죄의 무게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도 많이 지치셨습니다.

유월절 만찬과 겟세마네 기도,

대제사장들과 빌라도의 심문, 군인들의 조롱까지

밤새도록 시달리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병정들은

유월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아프리카 북부 구레네 사람 시몬을 시켜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도착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2.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순례길이 있답니다.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는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순례하는 것은

기독교의 오래된 전통이었습니다.

 

빌라도 법정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십자가에 달리고, 무덤에 묻히신 것을 기념하는
“성묘 교회(Holy Sculpture Church)”까지

600미터 (2000ft)에 달하는 길입니다.

 

비아 돌로로사에는 14개의 스테이션이 있답니다.

앞에서 말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곳,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예수님께서 세 번 넘어지셨다고 추정되는 곳들을 지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힌 무덤이 마지막입니다.

각 지점마다 교회가 세워졌거나 기념물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를 걷는 순례객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3.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비아 돌로로사”를 생각하고 걷기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지나온 발길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예수님을 초대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걷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모두 지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지난주에 나눴던 조지 베나드(George Bennard) 목사님의

“갈보리산 위에(Old Rugged Cross)”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 우리도 걷겠습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So I’ll cherish the old rugged cross,

till my trophies at last I lay down;

I will cling to the old rugged cross,

and exchange it some day for a crown.

 

 

하나님,

낡고 거친 십자가 붙들고

예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4. 17. 이-메일 목회 서신)

인생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길(道)”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생도 우리가 걸어가는 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어 <할라크>는 “걸어가다”는 뜻인데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도(道)”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행18:26).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걸어야 할 길,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자체가 “길(道)”입니다.

 

2.

우리가 걷는 길이 결코 일정하지 않습니다.

평평한 인생길은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곧게 뻗은 길이 있으면

구불구불한 길이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길이 지나면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이 나옵니다.

오솔길도 있고, 신작로도 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우리는 모든 길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迂餘曲折)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때로는 옆에 펼쳐진 길은 쉽고

자신이 걷는 길은 늘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떤 길도 쉽지 않습니다.

우여곡절이 없는 길은 없습니다.

 

3.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국의 한 재판관의 사연을 보았습니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자폐증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잘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폐 아들을 키우면서 겪는 아픔이 너무 컸습니다.

아들이 달려드니 부부의 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고

네 식구가 외출하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마음이 편치 않답니다.

그래도 주말이 되면 아들과 등산하는 것이 기쁨이고

그 아들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보였고,

그 분이 걸어온 길은 쭉- 뻗은 고속도로같아 보였는데,

말못할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발자국만 들어가보면,

한두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눠 보면,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 평탄치 않습니다.

돌멩이를 가슴에 안고 걷는 무거운 발길입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평안하게, 그리고 감사하면서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4.

우리의 삶도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 앞에서만 했던 말들을 모으면 한 자루는 될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눈에 그리고 꾸역꾸역 걸어갑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옆에서 걸어가시는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 1:9)

 

 

하나님,

함께 하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4. 10. 이-메일 목회 서신)

아피아 가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영토를 넓혀가면서 대로를 만들고

군사, 무역, 치안 등을 관리했습니다.

 

로마가 첫 번째 만든 대로가

아피아 가도(via Appia)입니다.

주전 312년 아피우수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라는 집정관이 만들었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아피아 가도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반도 남부에는 늪지대가 있어서

군인들의 이동은 물론 보급품 공급이 힘들었습니다.

이것을 파악한 아피우수가 군사용 대로를 건설한 것입니다.

 

훗날, 이탈리아 남부 부린디시 항구까지 연장되면서

군사는 물론 무역과 일반인의 통행까지 두루 사용되었습니다.

563킬로미터(350마일)에 이르는 로마 제국 최초의 대로(大路)입니다.

 

2.

아피아 가도는

군인들과 화물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서 직선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운데를 높여서 배수가 가능했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했습니다.

길 양옆에 사이프러스와 같은 나무를 심는 조경도 잊지 않았습니다.

 

길에는 자갈과 모래를 깔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돌 조각을 아스팔트처럼 넓게 배치했습니다.

악천후가 되면, 로마 제국의 도로들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것에 비하면

아피아 가도는 포장도로인 셈입니다.

현재도 국도로, 관광객들의 순례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박해와 사역에 지친 베드로가

아피아 가도를 통해서 로마를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가 로마를 두고 떠나면 예수님 자신이 로마에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서 로마로 향했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아피아 길 초입에

베드로를 기념하는 쿼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 안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의 성화가 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호송된 사도 바울 역시

보디올이라는 나폴리 근처에 위치한 항구에 도착해서

아피아 가도를 통해서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1960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전설의 마라톤 영웅 아베베가

금메달을 딴 것도 아피아 가도 코스였습니다.

돌로 만든 길이어서 아스팔트처럼 도로 면이 평평하지 않은데

그곳에서 마라톤 경기를 진행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3.

작년 로마를 방문했을 때,

잠시 아피아 길을 걸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걸었던 길이라고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2,300년 전,

돌을 깔아서 만든 튼튼할 길입니다.

2천 년 동안 다녔던 발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길이었습니다.

 

4월, 새달을 맞이했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길로 이어질지

근심과 우려가 큽니다.

 

그래도 우리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임시방편이 아니라,

얄팍한 계획과 행동이 아닌,

깊이가 있고 수많은 발길과 사건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튼튼하고 살아있는 대로이길 원합니다.

 

함께 그 길을 만들어갑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하나님,

튼튼하게 길을 만들고

꿋꿋하게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4. 3. 이-메일 목회 서신)

달걀 대란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토요일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9시 개장에 맞춰서 코스코(Costco)에 갔는데

입구부터 줄이 길게 서 있었습니다.

달걀을 사기 위한 줄이었습니다.

 

참고로, 계란(鷄卵)은 한자어이고

달걀은 순우리말입니다.

둘 다 표준어이고 뜻도 같습니다.

 

몇 달째 달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한정 판매를 합니다.

그나마도 늦게 가면

달걀을 팔던 가판대가 텅텅 비어 있습니다.

 

팬데믹 때 휴지를 사려고 줄을 서고

개인당 숫자를 한정해 주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2.

자료를 찾아보니,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미국의 달걀값은

지난 20여 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계란 열두(dozen) 개들이 한 판에 2불에서 2불 50센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달걀값이 두 배 이상 올랐고

캘리포니아의 경우 9불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달걀값이 치솟은 이유는

작년 말,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8개 주에서 유행한 조류독감 때문입니다.

그동안 2천백만여 마리의 닭을 살(殺)처분했습니다.

예년보다 심각한 조류 인플루엔자 탓에

전염에 노출된 닭들을 미리 처단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대부분 달걀을 캘리포니아주에서 공급합니다.

운송비는 물론 신선도 면에서 최고의 달걀입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조류독감이 생기면서

더욱 심각한 달걀 위기를 맞았습니다.

 

며칠 전, 지역 TV뉴스에

병아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닭을 직접 키워보겠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습니다.

 

3.

달걀 파동이 생긴 또 하나의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사재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을 경험해서인지

사람들이 달걀 사재기에 혈안이 된 것입니다.

가뜩이나 공급이 모자라는데

너도나도 필요 이상으로 달걀을 사가니

달걀값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달걀이 꼭 필요한 식당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봅니다.

다른 물가도 따라서 오르기에 소비자들도 손해입니다.

 

사재기만 하지 않았어도

달걀값이 이렇게까지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예전에 없던 일들이 다반사로 생기고

전쟁과 폭력은 끊이지 않고,

그러니 사람들에게 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게다가 달걀 파동까지 시작되니

사람들이 허둥지둥, 안절부절못합니다.

그것이 사재기로 이어졌겠지요.

 

달걀을 부화시키고, 병아리를 키워서 어미 닭을 만드는데

4-5개월 정도 걸린다니

얼마 가지 않아서 달걀 공급이 정상화될 것입니다.

 

우리부터 양보하고

차분하게 기다리십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13:10)

 

 

하나님,

사랑과 배려가 살아있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27 이-메일 목회 서신)

누군가 널 위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찬양팀이 선곡해서

함께 부른 찬양 가운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가 있었습니다.

 

언제 불러도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누군가 위해 기도하네

 

본문에서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부모님, 자녀들,

형제자매, 교회 식구들이 모두 포함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기도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도의 빚을 지며 살고 있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면

아름답고 강력한 기도의 체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2.

위에 소개한 찬양 가사를 세심하게 읽으면,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누군가”는 곧

예수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침마다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과 훗날 예수님을 따를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알려줍니다.

 

성령 하나님의 별칭은 보혜사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상담해 주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3.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무심코 하는 말이나,

인사치레가 아니길 바랍니다.

기도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셀폰 캘린더에 노트해 놓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오늘도 누군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임한 은혜이고 힘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하나님,

기도의 체인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20 이-메일 목회 서신)

나우루 섬

좋은 아침입니다.

 

1.

셀폰으로 전달되는 뉴스 가운데

호주에서 2천 마일 떨어진 남태평양에 있는

나우루(Nauru)라는 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나우루는 바티칸시티와 모나코에 이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독립 국가입니다.

섬의 면적이 20제곱킬로미터(약 8마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12,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남태평양 원주민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요.

 

나우루는 3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독일 식민지였고, 2차 대전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습니다.

호주 네덜란드 등의 합병 통치를 받다가1968년에 독립하였습니다.

 

나우루는 한 때 세계에서 아랍 에미리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인광석으로 덮인 섬이었기에 자원이 고갈된

1980년대까지 최고의 부를 누린 것입니다.

 

국민들은 게을렀습니다.

90% 이상이 비만이고, 절반 가까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65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나우루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습니다.

페이퍼 컴퍼니를 허용해서 조세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1997년에는 천여 개의 여권을 돈 주고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 경로가 되고

나우루 여권을 갖고 테러를 일으킨다는 제보도 있어서

그나마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2.

CNN보도에 의하면

올해 나우루 정부는 $105,000.-을 내면

나우루 시민권을 발급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 89개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황금 여권(Golden Passport)입니다.

 

이번에 시민권 장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서 나우루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사를 해야 하는데

개인은 물론 정부에 재정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들의 이사비용은 물론,

해수면 상승 등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기사를 읽고

나우루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사정이 딱합니다.

수십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했는데

길가에 버려진 고급 승용차들과 녹슨 광산 장비만 뒹굴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한 관리들이

시민권 장사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쓸지도 의문입니다.

테러와 사기 등에 사용될 가능성도 큽니다.

 

3.

나우루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구약성경 전도서가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취하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만에 빠져서 몸집만 불려도 안 되겠습니다.

 

어렵게 쌓아온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관리하고 발전시켜야겠습니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신앙과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5)

 

 

하나님,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13 이-메일 목회 서신)

단짝

좋은 아침입니다.

 

1.

“단짝”

– 꽤 친근한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거의 항상

단짝 친구를 만들 곤했습니다.

단짝 친구가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당당했습니다.

 

십 대 시절에는

단짝 친구(들)와 끝까지 우정을 지키자고

엄숙함에 가까운 약속도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삶이 다르게 전개되고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되면서

단짝 친구와의 약속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단짝 친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으니,

옆구리(side)를 맞대고 살아가는 단짝 친구입니다.

성경은 돕는 배필(helper)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단짝 친구의 우정을 그릇 사용했습니다.

둘이 함께 연대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자리를 감히 엿보았으니

무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도 단짝 친구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로서 왕국의 후계자였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아버지가 아니라 다윗 편에 섭니다.

피는 진하다는 속담을 삭제해 버린 순간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단짝 친구 다윗과 함께 옳은 길을 갔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우정)이 지극했습니다.

 

3.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작사 작곡한

대니얼 위틀(Daniel Whittle)과 제임스 맥나라한(James Mcnarahan) 은

1840년생 동갑이었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찬송가에 실린 3곡을 작사 작곡한 것을 보면

단짝 친구였을 것 같습니다.

 

위틀은 시(詩)를 쓰고,

맥나라한은 친구가 쓴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자신들의 찬송이 교회에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둘이 있어서 한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홀로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단짝 친구가 있다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든든할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단짝 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로서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고 바람입니다.

그런 공동체, 장(場)을 만들고 싶답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혹시 안되어도 실망하지는 맙시다.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함께 걸었던

단짝 친구의 이름도 불러보고, 안부도 전해 봅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잠언 13장 20절)

 

 

하나님,

항상 곁에서 동행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6 이-메일 목회 서신)

친밀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두 달 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올해 표어인 <기도와 말씀으로>에 맞춰서

말씀과 기도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2월부터 살펴본 기도에 대한 말씀에서는

기도를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로 정의하고

하나님과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나누는 대화는

과거, 현재와 미래, 단순한 스몰 토크부터 깊은 대화까지

말 그대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입니다.

 

이처럼 대화는 관계를 형성해 주고

친밀함으로 나가게 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조건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접속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처음에 한두 번 접속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정기적으로, 수시로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형성되었을 때,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관계가 깊어졌다는 표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해지면,

기도의 방향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신을 뛰어넘는 기도입니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또 다른 표시는

혼자 있을 때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속삭이고, 마음을 드리고,

필요할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4.

아침에 함께 읽고 묵상하는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묘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초대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셨음을 뜻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깊고 친밀한 기도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올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7 이-메일 목회 서신)

울타리 칠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설교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소개하였습니다.

 

톰 소여(“톰”)와 허클베리핀(“허크”)이

벌이는 모험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는 우정, 친구와 가족을 향한 책임감,

옳고 그름의 선택으로 발전합니다.

 

톰은 자기만 생각하는 장난꾸러기 아이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점에서

<톰 소여의 모험>은 성장 소설입니다.

 

2.

소설 속의 유명한 장면은

장난을 치다가 이모에게 들켜서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는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톰은 혼자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이 지루했습니다.

그것도 벌을 받은 것이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울타리를 신나게 칠하기 시작합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매우 재미있는 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사과 등 선물(뇌물)까지 주면서

울타리를 칠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톰은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하기를 맡겼습니다.

 

톰 소여가 벌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톰 소여의 효과(Tom Sawyer Effect)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효능이 떨어지지만,

단순한 일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저는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톰이 친구들에게 울타리를 칠하게 한 것을

좋지 않은 일로 보았습니다.

 

톰의 동기가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친구들에게 시켰습니다.

친구들을 거짓으로 선동했습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톰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톰에게 속아 넘어간 친구들도 문제입니다.

친구들은 톰에게 선물까지 바치면서

울타리를 칠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톰 소여는 어릴 적 자기가 했던 일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톰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성장해 갑니다.

 

4.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전, 야곱에 대한 설교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을 섬긴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기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톰 소여의 효과에 앞서서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을 시킨 톰의 동기가

바르지 않았음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도록

우리 자신을 살피고 바른길을 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하나님,

분별력을 갖고 참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0 이-메일 목회 서신)

엔지니어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이슈가 되는 파나마 운하의 원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904년부터 10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서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수위 조절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 방식입니다.

들어 올려진 배가 50마일에 달하는 인공호수를 지나고,

계단식 수문을 통해서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운하 덕분에 일만 이천 마일을 우회하지 않아도 되었다니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하였습니다.

 

프랑스가 실패한 공사를

미국이 완공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미국 엔지니어링의 승리였습니다.

 

1999년 파나마에 넘여 주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다시 찾아오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2.

내친김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의

건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1933년에 시작해서 1937년 5월 27일에 개통했습니다.

개통하는 날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다음날부터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개통되었습니다.

 

항간에는 다리를 건설하면서 중국인 인부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아홉 명은 공사 중인 다리 밑에 설치한 안전망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훗날 열아홉 명은 “지옥에 반쯤 갔던 사람들의 모임(halfway-to-hell club)”을 만들었답니다.

 

금문교를 최초에 설계한 사람은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입니다.

조셉 스트라우스는 물살이 센 협곡에 다리를 건설하는데

다리 교량을 최소화하고, 다리 밑으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현수교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교량을 잇는 철근 케이블 27,572개를 공중 와이어 공법으로 하나씩 교량에 연결했습니다.

케이블의 총길이가 지구를 세 바퀴 감을 정도랍니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중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판들이 있는데

다리를 잇는 케이블의 변화로 다리 갑판이 변형되는 것을 막는 완충장치랍니다.

교량의 높이, 간격, 케이블이 갖는 힘,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예측하고 공사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3천 5백만 불이 들었습니다.

오늘로 환산하면 7억 불 정도 됩니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였는데,

주민들이 납세 채권에 동의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금문교의 기술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현수교가 여럿 생겼지만,

처음 건설할 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습니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명물이자 상징임엔 틀림없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금문교 건설에 적용된 설계나 기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물길이 거세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에

현수교를 건설한 엔지니어링에 감탄이 나옵니다.

 

3.

엔지니어링은

철저한 이론, 설계, 시공, 공사를 거쳐서

목적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입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건설 현장은 물론 훗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초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합니다.

오차 없이 설계하고 시행하는 세심한 작업입니다.

 

우리 신앙과 인생도 엔지니어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눈대중 하듯이 대충 대충은 안 됩니다.

철저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 모든 여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과 인생의 집을 지어갑시다.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4-25)

 

 

하나님,

신앙과 인생에 탁월한 엔지니어가 되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1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