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말씀에서 만났던 인물은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가

갈릴리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가 16:7).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육신으로 함께 하실 때와 달리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신 것 같습니다.

 

2.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의 마음은 혼란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예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3년을 예수님과 함께했기 때문인지 마음이 잡히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심란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갑니다:”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한21:3).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날과 똑같이(누가 5:1-11)

그날도 밤새도록 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날 새벽,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는 곧바로 물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갑니다.

 

3.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갈릴리 바다,

베드로는 여전히 빈손인데,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곳에 모닥불이 피어 있었는데

그날 아침도 예수님께서 모닥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닥불을 보는 순간, 죄책감이 더 크게 살아났고

예수님께 야단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간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흘렀을 것 같습니다.

아니, 베드로 혼자 느끼는 긴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습니다.

사랑을 말씀하시다니요! 베드로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렇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사랑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양을 먹이고 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4.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으로 가족과 이웃을 보듬어주고,

때로는 친구의 사랑(필레오)으로 서로 공감하면서

힘든 시간을 버티고 지내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마침, 5월 우리 교회 달력의 표어도 <사랑>입니다.

달력을 볼 때마다, 아침에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사랑>이라는 최고의 단어를 사용하는 예수님의 입이 되기 원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4:12)

No one has ever seen God;

if we love one another, God abides in us and his love is perfected in us.(1John 4:12)

 

하나님 아버지,

주의 사랑을 전함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7 이-메일 목회 서신)

교만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에 사는 우리는 다른 나라 얘기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바이러스가 폭발하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도

우리와 상관없는 사건으로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분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일종의 신종 플루이고

연세 드신 노인에게는 위험하지만,

젊은이들은 단순한 감기 정도로 앓고 지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제기되고

자가 격리, 휴교, 자택 근무, 식당은 물론

필수적인 부분이 아닌 사업장의 부분 또는 전면적인 폐쇄가 이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을 금기시하더니

이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뉴욕에서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미국이 세계 최대 감염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도 달갑지 않습니다.

미국의 의료 체계와 방역 체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처가

세계의 이목과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2.

태평양 건너편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 것이 경솔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래도 베이 지역은

자택 격리를 비롯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찌감치 시행했기에

최악의 상황은 예방한 것 같습니다.

 

물론, 5월 한 달도 각별히 조심하고

그 이후에도 면역이 생길 때까지는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3.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과학 문명이 최고라고 자랑하던

현대 인류의 교만을 회개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도

세심하게 살피고 조심해야겠습니다.

 

새달을 맞습니다.

5월 한 달도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마침 가정의 달인데,

겸손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살기 원합니다.

 

주여, 새날 주소서!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파도보다 크니이다 (시편 93:4)

Mightier than the thunders of many waters,mightier than the waves of the sea,

the LORD on high is mighty! (Psalms 93:4)

 

하나님 아버지,

겸손히 주님의 능력을 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30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교회력에 따라 부활절 둘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단 색깔은 흰색입니다.

 

성령 강림절까지 앞으로 7주간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부활을 사는 부활절 주간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올해 맞는 부활절 주간 50일이 더욱 뜻 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얼마나 힘이 되고 소망을 주는지요!

 

2.

부활은 십자가의 끝이자

우리 신앙은 물론 기독교 (교회)의 시작점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부활이 없으면 믿는 것도 전하는 것도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보다 십자가에 주목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찬양을 수시로 부르면서

부활 찬송은 부활절에만 부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정말 큽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고난과 은혜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3.

막연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가끔 두려움도 느끼는 Covid 19 기간에

<부활절 그 이후>라는 연속 설교를 함께 나누면서,

참빛 식구들 각자와 우리 교회가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사망이 표적으로 삼는 것들을 이기시고,

절망과 어둠,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우리 주님의 부활을 보기 원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참빛 식구들도 찾아가셔서 함께 하시고

눈을 열어주셔서 부활의 주님을 느끼고, 증거하기 원합니다.

실제로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만나서

눈이 열리고,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모두 물러날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Covid19으로 인해서 힘겨워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가 살아나셨도다> <그가 이기셨도다>는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시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John 11:25-26)

 

하나님 아버지,

각자의 자리에서 부활을 사는

참빛 식구들을 꼭 기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3 이-메일 목회 서신)

 

 

소중한 시간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 예배는 교회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흩어져 예배했습니다.

다시 이런 시간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니 특별한 예배였습니다.

 

찬양대에서 준비한 특별 찬양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모두 감사했고, 어르신들은 울컥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것 역시 작금의 특별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추억일 것 같습니다.

 

자택 격리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번 학기에 학교에 돌아갈 수 없고

썸머 캠프도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부모님들이 24시간 아이들과 섞여 지냅니다.

 

자택 근무하는 청년들도 지루하고 힘들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권사님들도 집에만 계시니 답답하고

무엇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

뉴스를 보면서 불안함도 느끼실 것 같습니다.

 

마음고생 하실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참빛 식구들,

이 기간에도 출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어떤 환경에 던져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나 아쉬움이 생기지 않도록

코로나 19의 시간도 창의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아이들과 지금처럼 24시간 함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금방 자라서 부모의 품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시간으로 알고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만들면 어떨까요?

 

홀로 지내는 것이 외로움(loneliness)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체득하는 영적 고독(spiritual solitude)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집에 계시는 권사님들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늘리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자택 격리 기간에 <신약 통독>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직장에 출근하시는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섬김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코로나19 상황은

우리 개인이 따로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재앙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택격리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만 봐도

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동시에

주어진 시간을 헛되게 흘려 보내거나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지 않고

이 시간도 소중하게 만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편9:10)

And those who know your name put their trust in you,

for you, O LORD, have not forsaken those who seek you. (Psalms 9:10)

 

하나님 아버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도 소중하게 만들 지혜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16 이-메일 목회 서신)

2020 고난 주간에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고난 주간의 주제를 한 단어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루속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잡히길 바라면서

집안에서만 보내는 고난 주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많이 외로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과 행하시는 능력을 본 제자들과 백성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답게

악한 세상을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가기 힘든 저주받은 길입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기에

예수님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후5:21).

 

집에 머무는 고난주간,

많은 행동과 삶에 제약 속에 보내는 고난주간,

– 외롭게 자신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2.

올해 부활 주일은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맞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절이면 으레 가졌던

성만찬,세례 예식, 찬양, 주일학교 에그헌팅, 부활절 만찬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의례적으로 맞던 부활절이 얼마나 귀했는데 새삼 느낍니다.

 

비록 함께 모이지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맞는 부활절을 준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허전하고 아쉬움 속에서 보내는 부활절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색다른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내가 꾸미는 부활절”.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은

어디나 임할 줄 믿습니다.

 

3.

코로나 19의 힘겨운 시간도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2020년에 밀어닥친 전염병에 대해서 옛날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힘들 때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외롭고 적막합니다. 때때로 탄식이 나옵니다.

 

하지만, 훗날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거나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모두 의미 있는 고난 주간과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을 믿으며 굳게 의지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마가 15:37-38)

And Jesus uttered a loud cry and breathed his last.

And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Mark 15:37-38)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세상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십자가 예수님, 부활의 주님을 같은 마음으로 기억하고 예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9 이-메일 목회 서신)

세가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현재 바이러스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이태리입니다.

시신을 실은 군용 트럭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못해 먹먹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를 새롭게 발견했고

기도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는

<Christianity Today>의 기사를 요약해서 나눕니다.

 

1) 탄식의 기도/ Prayers of Lament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눈물로 침상을 적시거나,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를 눈물로 구하는 시편의 탄식시를 읽으면서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누군가의 기도라고 건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편의 탄식시들이 마음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away?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he times of trouble (Ps10:1)

 

성경 속의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나” “우리”의 기도로 변했습니다.

 

2) 이웃과 세상을 위한 기도/ Prayers of Intercession

그동안 우리 기도는 내 마음과 내 삶에 머물렀습니다.

종종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은 적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이태리]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몸 바쳐 일하는 의료진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가족들,

연구진들, 교회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우리를[이태리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기도 속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3) 고요한 기도/ Prayers of Silence

아직 희망적인 뉴스는 없습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휩싸여 있고 깜깜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말문이 막혀서 침묵이 흐릅니다.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막막해서 외마디 기도가 나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

 

예전에 기도할 때 생각났던 수많은 단어와 말이 아니라

말없이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뢰할 뿐입니다.

 

2.

우리도 언제나 다시 만나서 함께 예배하고,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잡히고 말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기도의 언어들이 하나님 뜻에 합하고

더욱 순수하고, 확신있으며, 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1)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Ps 18:1)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더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 이-메일 목회 서신)

 

 

어그러진 일상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루 아침에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서 집에 있습니다.

휴가도 아닌데 온 가족이 집에 머뭅니다.

직장도 학교도 우리의 바깥 세상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루 세끼를 온 가족이 해결합니다.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삐꺽하는 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쇠가 부딪치듯이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가고 싶은 인앤아웃 버거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필수품을 사러 나가면,

텅 빈 진열대만 바라보다가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그나마도 사람들과의 접촉이 두려워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가족들이 언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될 날이 과연 올지

사람들과 허물없이 “하이” 인사하고 악수하는 때는,

무엇보다 우리 참빛 식구들 모두 모여서 예전처럼 예배하는 때는

– 현재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그래프가 민둥산처럼 커브를 그리고

내리막을 걷기를 기대하면서 온 국민이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2.

어쩌면 일상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여기던 것이 특별했고

답답하고 외롭고, 온 가족이 뒤섞이고

종종 불안이 엄습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는 일상은 ‘어그러진’ 일상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감 시간이 있는 일상이니

가능한 어그러진 일상을 지혜롭게 관리하기 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가능한

창조적 시간(카이로스)를 찾아내고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훗날 돌아볼 때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3.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닙니다.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온 세계적 고난의 시간입니다.

견뎌야 합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찾아온 일상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성령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편 119:49)

Remember your word to your servant,

in which you have made me hope.(Psalms 119:49)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26 이-메일 목회 서신)

한계

좋은 아침입니다.

 

1.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가 무색한 요즘입니다.

 

일어나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몇 명인지

언제쯤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을지 뉴스를 검색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온 가족이 온종일 붙어 있어서 친밀하고 좋지만,

반대로 가정마다 힘겹고 낯선 일도 벌어질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도 꺼려지고

생필품을 구하러 마트에 가지만

텅 빈 진열장만 구경하고 올 때도 많습니다.

 

바이러스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겠지요.

행정당국이 명령한 자택 격리를 솔선해서 지켜야 합니다.

 

2.

중국과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미국은 손 놓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했습니다.

속수무책처럼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서 도시를 닫고 나니

곧바로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여행사, 호텔, 항공업계는 물론

식당을 비롯한 소매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가

힘없이 녹아 내리는 느낌입니다.

 

3.

과학과 인류 문명이 발달해도

전염병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마치 구약 시대로 회귀한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습니다.

행여나 잘못한 것이 있을까 돌아보면서

개인적으로/국가적으로 회개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물론,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속성도 알고,

행정조치도 취하고,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몇 주간

속수무책으로 구약시대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4.

21세기에 돌아보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틈틈이 인간의 약함과

세상에 목표를 둔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서 말씀도 묵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의 교만과 자랑을 회개하고 좀 더 겸손하기 원합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겨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힘을 의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어려움을 능히 극복하기 원합니다.

 

힘냅시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편 118:5)

Out of my distress I called on the LORD;

the LORD answered me and set me free.(Psalms 118:5)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19 이-메일 목회 서신)

일촌간장

좋은 아침입니다.

 

1.

일촌간장(一寸肝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한 토막의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속이 타서 녹아 내릴 정도의 안타까움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일촌간장이 봄눈 슬듯한다”라는 속담은

걱정과 두려움이 극에 달해서

봄눈이 녹듯이 속이 녹아내린다는 뜻입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한 몸, 한 가족을 지탱하기도 어려운데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통제하기 힘든 사건이 외부에서 터지면

엉거주춤을 넘어 좌불안석입니다.

잠깐 잠깐 봄눈 슬듯하는 일촌간장의 심정도 경험합니다.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기도하지만

악한 것들, 나쁜 것들은 왜 이리도 질긴지 모르겠습니다.

 

2.

성경을 읽다 보면

“두려워 말라”는 명령을 자주 만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불확실한 것들,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비가 오지않는 가뭄, 강이나 바다가 넘치는 홍수와 해일,

툭하면 발생하는 전쟁,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이 대표적입니다.

 

속수무책이었기에 전염병, 전쟁, 가뭄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나와서 온 백성이 잘못을 고하고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우리 상황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웬만한 전염병은 예방하거나 거뜬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가뭄이나 전쟁도 인류가 의기투합하면 조절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따금 속수무책의 사건이 터지니

우리 안에 내재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힘듭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경우처럼

해결할 능력이 없고, 끝을 알 수 없으면 두려움이 배가됩니다.

일촌간장이 슬어지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3.

지난 주일설교에서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를 달아 내렸을 때

“안심하라(용기를 내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합니다.

 

온몸이 마비된 채

지붕에서 내려온 중풍 병자를 보면서 느끼신

예수님의 일촌간장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간장이 녹아 내리는데

예수님은 불쌍하고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에 간장이 녹아 내리셨습니다.

단숨에 죄를 사해 주시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무겁고,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안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안타까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기 원합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친구들처럼

참빛 식구들이 힘을 합치고

두려움을 나눠 갖기 원합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1:13)

For I, the LORD your God, hold your right hand; it is I who say to you,

“Fear not, I am the one who helps you.”(Isaiah 41:13)

 

하나님 아버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라” 말씀하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12 이-메일 목회 서신)

온유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성경 통독에서

모세오경의 마지막인 신명기를 마쳤습니다.

신명기는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모세의 설교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틈만 나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불평했고, 원망했으며,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모세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 이집트를 나온 성인 남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할례조차 받지 못했던 2세들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할례를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모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할 땅들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드디어 이루실 참입니다.

 

그렇게 다 보여주고, 말씀하신 후에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34:4)

 

모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어쩌면 눈을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가고 싶은 약속의 땅입니까?

 

모세는 여전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숨을 거둡니다.

 

3.

성경은 모세를 향해서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민12:3).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청년 모세는 혈기가 앞서서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모래에 묻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숨어지내면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가장 적합한 성품을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백성들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모세가 온유한 성품을 갖추지 못했다면

불평과 원망이 일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 40년을 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라면 크게 반발했을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4.

온유(gentleness)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순종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모세뿐 아니라 예수님도 그 길을 가셨습니다.

 

세상이 많이 각박합니다. 온유함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신의 몫을 챙기고, 나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바이러스 사태처럼 어려움을 겪고 나면

서로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하나로 어울리는 세상이 되면 좋겠는데

반대로 분열과 미움, 갈등의 세상으로 변할까 염려됩니다.

이웃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온유인데 말입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세상에서 온유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그랬듯이 어려움이 온유함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 12:3)

Now the man Moses was very meek,

more than all people who were on the face of the earth(Num 12:3)

 

하나님 아버지,

온유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넉넉한 세상이 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3.5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