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좋은 아침입니다.

 

1.

샌프란의 올겨울은 꽤 길었습니다.

여느 해보다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몇 해 전, 겨울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서

캘리포니아가 사막으로 변할 것 같다고

설레발을 떨 때가 머쓱할 정도입니다.

 

비가 충분히 내리니

삼라만상이 초록으로 변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민 등성이 산들도 파랗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지 않게 비가 내리니

캘리포니아 특유의 맑은 날씨가 그리웠습니다.

 

기온도 꽤 내려가서 쌀쌀하고 추웠습니다.

코로나는 잦아들었지만,

독감이 유행해서

여러 날 고생하는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매번 겨울이 그렇듯이,

이처럼 올겨울도 꽤 길었습니다.

 

2.

이번 주 들어서

봄기운이 완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입니다.

 

맑은 날이 많아지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캘리포니아 날씨의 귀환입니다.

 

이따금 비 소식이 있는데

우기(雨氣) 끝에 찾아오는

성경에도 나오는 늦은 비입니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길가의 가로수와 이웃집 정원의 나뭇가지에

아기 손처럼 귀여운 연한 순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찾아왔습니다.

 

3.

우리에게 봄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부활절이 있는 계절입니다.

 

춘분(春分) 이후 보름이 지나고

첫 번째 맞는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올해는 3월 31일이 부활절이니 여느 해보다 빠릅니다.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새봄과 더불어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바랍니다.

 

새봄에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 차가움,

겨우내 꽁꽁 싸 놓은 것들이

예수님 부활의 생명의 빛으로

밝아지고 따뜻해지고 술술 풀어 지길 바랍니다.

 

새봄에 찾아오실

부활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생명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아가 8:14)

 

 

하나님,

봄을 맞아서 주의 동산에 뛰어노는

사슴처럼 발걸음이 가볍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3. 21 이-메일 목회 서신)

화분갈이

좋은 아침입니다.

 

1.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로 이사 온

13년 전부터 미뤄왔던 숙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이웃집과 공유하는 담이

지난번 심한 바람으로 쓰러졌고

보험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웃집과 얼굴 붉히지 않고

새로운 담으로 교체하였습니다.

 

담이 워낙 낡았고

혹시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넘어지면

담벼락에 다칠 위험이 있어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함께 담을 교체하자고 요청했지만,

자기는 돈이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하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비바람으로

담을 교체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우리 교회에 임했습니다.

 

뒤뜰이 안전하게 정리되니

10여 년 앓던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해 놓은 것처럼 상쾌합니다.

늘 가탈스러운 이웃집 할머니도 “하나님이 했다”면서 좋아하니

말 그대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다른 한 가지 역시

미루고 미루던 숙제였습니다.

주일마다 강단을 장식하는 종려나무의 화분 갈이입니다.

 

강단의 종려나무는

현재 교회로 이사올 때부터 강단을 지켰습니다.

작은 종려나무 세 그루를 사서 화분 하나에 심었습니다.

지금보다 키가 훨씬 작았습니다.

 

매주 물을 주면서 정성껏 관리했더니

가지가 계속 나오고 키도 부쩍 컸습니다.

생명력이 강했습니다.

 

최근에 화분을 옮기다 보니

한쪽 화분 겉에 금이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칫, 화분이 쪼개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광고하니

화분 갈이의 달인들이 모여서

미뤄둔 숙제를 순식간에 해치웠습니다.

 

얼마나 개운한지요!

딱딱한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버텨준

종려나무에게도 감사했습니다.

 

3.

새봄을 맞이하고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과 삶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오랫동안 찜찜한 상태로 지내는 것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우리 교회 담장 공사처럼

이웃이나 누군가의 협조가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분 갈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면서 쌓아 놓고 있던 것들은

날을 잡아서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생명의 예수님을 맞이합시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전14:40)

 

하나님,

오래된 숙제를 얼른 끝낼 있는

부지런함과 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3. 14 이-메일 목회 서신)

니고데모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 예배에서는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Nicodemus)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백성의 정복자 conqueror of the people”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공한 인물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를 70인으로 구성된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을 관할한 최고 의결 기구였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봅니다.

 

게다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손색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 지도자들로 나오지만,

바리새인들은 랍비로 대표되듯이

유대교 안에서 영향력이 무척 컸습니다.

 

2.

예수님 당시 종교적으로/사회적으로

흠잡을 것이 없는 니고데모가

밤중에 나사렛 출신 목수의 아들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에 비하면 출신성분은 물론

나이도 훨씬 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랍비(스승)라고 부릅니다.

 

신분 격차와 차별이 확실히 존재했던 당시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파격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본문에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추측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이룬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갈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가장 밑에 있는 고민입니다.

 

3.

저는 지난주일 설교에서

니고데모에게 이런 영적인 고민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공회원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바빴을까요!

 

워낙 바쁜 일상이어서

예수님을 찾아올 정도로 영적인 일이

다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그것도 모르냐?”는

예수님의 핀잔 섞인 말에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니고데모는 갈급했습니다.

영원한 진리를 향한 갈급함입니다.

물질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영역에 대한 고민이고 질문입니다.

성경은 니고데모가 답을 얻고 돌아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서 두 번 더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놓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논쟁할 때,

온건하지만 예수님 편에서 발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장례에 향품 70파운드를 갖고 찾아옵니다.

 

니고데모가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선언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결과입니다.

예수님께 질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한 덕분입니다.

무엇보다, 영적인 문제를 포착하고 그것을 놓고 고민한 결과입니다.

 

니고데모의 영성(신앙)을 닮고 싶습니다.

끝까지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것을 두고 고민하고 신앙 안에서 풀어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시대의 니고데모가 되기 원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없느니라 (요3:3)

 

 

 

하나님,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3. 7 이-메일 목회 서신)

2월 29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4년마다 찾아오는

2월 29일 윤일(閏日)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기간은

365.2422일이랍니다.

지구의 관점으로 보면

태양이 춘분해서 시작해서 다시 춘분점으로 오는 기간입니다.

 

달력에서는 1년을 365일로 규정하니

지구의 정확한 공전 주기에 맞추기 위해서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더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산하면 1년이 365.2425일이 됩니다.

실제 지구의 공전 기간보다

윤달을 고려한 우리 달력이0.003(25.92초)가 길어졌습니다.

 

이것을 조정하기 위해서

윤년 중에서 1800, 1900년처럼 100으로 나눠서 떨어지는 해는 윤년을 없애고,

2000년처럼 400으로 나눠서 떨어지면 그대로 윤년을 지킵니다.

 

실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공전주기와

365일로 규정한 우리 달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복잡한 계산법입니다.

 

2.

이 정도의 미세한 차이는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1250년을 지냈는데,

1582년에 점검해 보니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제정한 부활절에서

10일 이상 빨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주전 46년부터 사용해 오던 율리우스력을 수정해서

지구의 공전 주기에 0.003초만 빠른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2월 29일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365일이 아닌 366일을 삽니다.

덤으로 하루를 더 갖게 되었습니다.

 

2월에 군대에 입대한 청년들은 군대 생활을 하루 더해야 합니다.

월마다 봉급을 받는 분들은 하루 더 일하고 같은 월급을 받습니다.

한국의 경우, 봄방학이 하루 길어집니다.

 

작은 것들인데, 생각보다 여기저기서 차이가 납니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세상입니다.

 

2월 29일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 주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3.

2월 29일을 보면서

작은 것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우리 삶을 세밀하고 꼼꼼하게 관리해야 함도 배웁니다.

촘촘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정도 차이는 괜찮아’하면서

무심코 넘어가면 나중에 커다란 차이를 야기할 수 있으니

세심하게 챙기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고 치밀하게 조율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저축해 놓았다가

되찾은 2월 29일을 뜻깊게 보냅시다.

 

속이는 저울은 주님께서 미워하셔도,

정확한 저울추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잠언11:1)

 

 

하나님,

 정확하고 치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29 이-메일 목회 서신)

밋밋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코로나바이러스를 경험한 세상은

예측불허, 각자도생, 일파만파입니다.

 

팬데믹 전까지 이어지던

많은 지표의 그래프가 팬데믹 동안

잡음(노이지)을 내면서 아래위로 크게 움직이더니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예측불허의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는 매우 좋은데

대기업의 강제 해고는 늘어갑니다.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 합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 누구도 내 삶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언론매체인 신문이나 공적인 방송은 힘을 잃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90년대 초 걸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생방송으로 보도하는CNN 기자가 영웅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립니다.

일파만파(一波萬波) – 세계의 소식이 매우 빠르게 전해집니다.

 

2.

세상이 이렇게 변화되니

새롭고, 자극적이고, 특별하고 빠른 것에 주목합니다.

 

보통의 말을 하고

보통의 일을 하는 것은 주목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점점 더 특별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고 추구할 수 밖에요.

유행에 민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동시에 꽤 많은 결과를 쏟아내는 요즘 세상에서

“천천히” “밋밋함” “쉼”과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공생애(public life)는

요즘 세상의 트렌드와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동안 차근차근 천천히 모두 완수하셨습니다.

절대로 서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

예수님의 사역은 매우 밋밋했습니다.

훗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되살려서 복음서와 서신서에 기록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틈만 나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지 묻고 조율하며 자신을 돌아보셨습니다.

배 안에서 주무시면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실 정도로

틈틈이 쉼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결코 화려한 것은 아닙니다. 밋밋한 일상입니다.

때로는 세상 풍조를 거슬러 가는 여정입니다.

그래도 뚜벅뚜벅 그 길을 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3.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잠깐 멈춰서 우리 삶을 돌아봅시다.

하루에 4-5분이라도

삶의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봅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밋밋해도 상관없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62:5)

 

 

하나님,

밋밋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22 이-메일 목회 서신)

신뢰

좋은 아침입니다.

 

1.

2024년 사순절(Lent)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한

올해 사순절 주제는 “신뢰(Trust)”입니다.

 

신뢰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족, 공동체 식구들, 이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뢰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믿음들’입니다.

 

이처럼 신뢰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이웃을 믿고 신뢰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2.

샌프란 시내를 운전하다 보면,

웨이모(Waymo)라는 자율 운전 자동차를 쉽게 만납니다.

 

예전에는 운전자가 타고 있었는데,

요즘은 운전자 없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부터는 승객까지 태워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누비고 있지요.

 

현재는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초대권을 발부해서

승차하는 방식이지만(대기인원이 10만명에 육박한답니다)

안전도 시험을 완벽히 통과하면 우버나 리프트보다

저렴하게 자율주행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웨이모 회사에서는

수많은 센서로 주변을 인식하고

인공지능(AI)을 통해서 시내 지형은 물론

임의의 상황을 모두 숙지하고 있기에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소개합니다.

 

그동안 웨이모 차량이 시험 운전한 거리가

지구와 달을 14번 왕복할 정도랍니다.

첨단 과학 기술을 탑재한 것과 동시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시험 운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불안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차이나타운을 운행하던

웨이모 차량을 탈취해서 불에 태우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차 안에 승객은 없었습니다.

 

일주일 전에는

웨이모 차량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부딪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교차로에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면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끼어들어서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웨이모 차량이 급하게 정차하면서 큰 사고를 면했고

차량에 타고 있던 승객은 안전했답니다.

 

3.

언젠가는 믿고 이용하겠지만,

아직은 자율 주행 차량에 탑승할 자신이 없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샌프란 시내를 주행하는 모습을 보니

아직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하여튼, 세상은 과학 기술을 믿고

자기 몸을 맡길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옅어 지는데

과학 문명에 대한 신뢰는 높아만 가는 것도 흥미로울 뿐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어떻게 될까요?

다른 것은 모두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은 없어야 할 텐데요.

 

하나님을 ‘먼저’ 확실히 믿고 싶습니다.

아주 커다란 믿음, 변하지 않는 믿음 F-A-I-T-H를 갖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이 세상 사람이나 기술, 기계를 믿는 믿음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올해 사순절을 은혜롭고 보내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편115:9)

 

 

하나님,

주님만 의지하며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15 이-메일 목회 서신)

충만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 달에 연속해서 나눈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한 사도 바울의 기도는

–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길

–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넓어지고

그리스도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길

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충만함(fullness)”에 관해서 나눴지만,

지난 며칠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충만하다는 것은 속을 무엇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름달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충만한 상태를 “벅차오른다”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위대하고 멋진 광경 앞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듯이

하나님의 충만하심 앞에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습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서 수건으로 가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두 번 기도합니다.

 

1장의 기도에서는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풍성함에 들어가길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길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시내 산 위의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속에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에베소서 3장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능력으로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 안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영광의 내주(indwelling)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도 모세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것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잠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속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푹 잠김’와 ‘꽉 채움’이 곧 충만입니다. 완전한 상태입니다.

 

작은 컵을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양동이에 넣으면

컵이 물에 잠기고, 동시에 컵 속에 물이 가득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 안팎에 임한 상태가 바로 그럴 것입니다.

충만을 완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한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모세처럼 우리 모습이 감사와 기쁨으로 밝게 빛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밖으로 드러날 정도로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에베소서 3장에서 기도를 끝낸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듯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게 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9)

 

 

하나님,

부족함이 없는 충만함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8 이-메일 목회 서신)

순간포착

좋은 아침입니다.

 

1.

올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도 일어났습니다.

독감도 유행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찾아온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내일(2월 2일)이 그라운드호그데이(Groundhog day),

그라운드호그라는 설치류 짐승이

봄이 찾아온 줄 알고 겨울잠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날입니다.

 

아무리 춥고 지루한 겨울이라도

새싹이 돋고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는

봄을 이길 수 없습니다.

 

2월이 시작되는 첫날,

우리 안에 봄기운이 살아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봄이 찾아오길 기대합니다.

 

2.

지금은 조그만 휴대전화에

카메라와 비디오가 함께 들어있지만,

예전에는 카메라에 필름을 끼워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필름을 모두 사용하면 전문점에 맡겨서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셔터 소리와 동시에 플래시가 터지면서

눈을 감는 일이 다반사여서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웃고 즐기던 때입니다.

 

그때는 정말 순간의 포착이 중요했습니다.

“치-즈”하면서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3.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 중요합니다.

 

작은 동작, 사소한 일상,

길에서 마주치는 경치까지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능력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은 드는데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어요.”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큽니다.

지나간 순간과 그때의 모습은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순간 순간이 중요한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순간의 포착을 놓친 것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4.

새달이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2월도 인류 역사는 물론 개인의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허둥지둥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길 원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진은 남는다고 하듯이

우리 삶의 작은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은혜의 순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123:2)

 

 

 

하나님,

주를 바라보면서

순간의 은혜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1 이-메일 목회 서신)

사과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1.

1월 24일, 어제는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애플(Apple)이라는 회사 이름,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

매킨토시(“맥 Mac”)라는 이름까지

전부 사과와 연결됩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평생 채식주의자였고 특별히 과일을 즐겨 먹었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사과 과수원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기에

자기 회사에 애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처음 애플 컴퓨터 로고는

만유인력을 발명한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책을 읽는 그림이었습니다.

 

현재의 한 입 베어먹은 듯한 애플의 사과 로고는

1977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한 입을 베어먹은 사과 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 태생 앨런 튜링(1912-1954)에게서 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은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지만,

당시 영국 사회의 동성애자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과에 청산가리를 묻혀서 한입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은 것을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체리와 사과를 구분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먹은 모양으로 디자인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컴퓨터 용어 바이트(byte)와 베어먹다는 영어 바이트(bite)와 연결하기도 합니다.

 

2.

애플 로고 뿐만 아니라

40년 전 시작된 애플의 매킨토시 개인 컴퓨터의 이름도

사과 품종 가운데 하나인 매킨토시에서 왔습니다.

 

40년 전 애플에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세상에 출시했을 때는

IBM이라는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가

90% 이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가 강한 IBM에 맞서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애플만의 특징을 갖춰서 다른 제품군들이 애플을 모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애플 컴퓨터만 선호하는 매니아 층이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IBM과도 협력하면서, 애플의 약점을 보충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애플 특유의 칩(M1 chip)을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으면 올해로 69세가 됩니다.

과연 그가 살아 있다면 애플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어떤 혁신을 이루고, 어떤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3.

애플이라는 회사나 애플 제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사과”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회사 이름, 로고, 제품 이름까지

일관성 있게 정렬하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특별합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우리에게도 한 가지 주제(모토)를 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면서

신앙과 인생의 혁신, 확장, 성장을 이뤄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 입 베어먹은 사과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듯이

우리 인생과 신앙의 신비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킨토시 40세 생일을 축하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쟁반에 사과니라 (잠언 25:11)

 

 

하나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참빛 식구들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25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서 마음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속마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길”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속마음을 강조한 이유는

성경은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이

‘마음’이 존재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

속에 숨겨진 마음, 존재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모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듯이

우리의 육체는 물론 마음과 영(spirit),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파편처럼 부서진

우리 자신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부분”만을 주목하지 않으시고

우리 존재와 삶 전부를 돌보십니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신경을 쓰면 안 됩니다.

육체로 대표되는 겉모습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업적들,

삶 속에서 행하는 일들도

당시에 유익을 줄 뿐이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속마음(inner being)”입니다.

 

2.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합니다.

하나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진실하고 정직하길 원합니다.

우리 속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에게 진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우리들 관계의 근원이 되고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마음이 우리 안에 이식되어서

하나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진실하고 깊은 교제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을 품고 하루 살아갑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3:16)

 

 

하나님,

우리의 모든 관계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1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