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로 시작한

2024년 새해가 열흘 이상 지났습니다.

 

어릴 적에는 새해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살 더 먹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이 자유로워 보이고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를 맞는 것이 시시해집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이게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지

한 살씩 많아지는 것이 은근히 부담도 됩니다.

 

그래도 새해는 새해입니다.

크고 작은 새해 소망도 만들고

마음의 각오도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2024년이라는 새해는

우리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세계 역사에도 다시 오지 않을 연도(year)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덤덤하게 맞이하던 새해였는데

정신이 바짝 듭니다.

 

혹시,

아직 새해의 계획, 기도 제목을 준비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2024년을 새롭게 설계하시길 제안합니다.

 

2.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 찌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잠언 말씀이 생각납니다(잠16:9).

 

그렇다고 계획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계획하고, 계획한 것을 최대한 열심히 실천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결과에 집착하거나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자기가 주관하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계획한 것이 모두 이뤄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인도하시니

너무 염려하거나 불안하지 말라는 깨우침일 것입니다.

 

3.

잠언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luck)이 좋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시간이라고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이 아님을 깨닫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깜짝 놀랄 일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에 감사하면서

기쁨과 감사로 열린 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포착하고 그 시간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 될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서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시간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감지해 내는 영적 감수성/능력을 장착하기 원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 읽으면서, 그리고 생각하고 대화하면서 찾아내고,

일을 시작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해 가면서

하나님의 시간, 돕는 은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하나님,

맞는 시간에 임하는 돕는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11이-메일 목회 서신)

든든히 서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띠, 그것도 청룡(靑龍) 해랍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패기와 멋짐이

올 한해 모든 분께 임하길 기대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척 끈질기었습니다.

우리 안에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실제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도 계십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팬데믹의 남은 잔재를 모두 털어버리고

힘차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흐트러진 우리 신앙을 복구해서

깊고 넓은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눴듯이

든든히 서기 위해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넓이는

터를 넓게 잡아서

웬만한 차이와 간격을 포용하고

대범하게 대처하는 마음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이

깊고 넓게 터를 잡으면서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팬데믹과 작금의 시대 상황 가운데

왜곡되고 흐트러진 신앙을 바로잡고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는,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앞에, 위에 두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에 하나님을 앞서는 것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신실함입니다.

주어진 신앙과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도 신실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신뢰입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신앙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높은 건물을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가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에도 기본적인 사항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꼭 필요한 것을 점검합시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과 삶이 굳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하나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4 이-메일 목회 서신)

소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이

이따금 들리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팬데믹도

2023년의 시작과 끝을 훼방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마스크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지난 3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세 먼지로 마스크 착용이 잦다고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이 아니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당시 대통령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입니다.

 

펜데믹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우리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微笑)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얼굴의 표현과 표정이

얼마나 소중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직도 마트나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기 기운만 있어도 이웃을 배려해서 마스크를 쓰고

예배나 공공 행사 참여를 자제합니다.

 

코로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그렇고,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면

서로를 향해서 조심하겠다는 표시입니다.

 

2.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은

작고 사소한 것, 가까운 것, 일상적인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을 보고 미소 짓는 것,

깜짝 놀랄 표정을 짓고 감탄의 말을 전하는 것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 등등 –

마스크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니

우리 삶의 뒤편에 숨겨진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불가피하게 뒤에 숨겨놓았던 것들,

늘 그곳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챙기고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 대단한 것,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보다도

마스크 속에 숨겨졌던 아름다운 미소처럼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찾아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감사와 기쁨을 더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거기에 물을 주고 가꿔 나가기로  우리 함께 결심합시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하나님,

주변에 흩뿌려진 소중한 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연말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8 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좋은 아침입니다.

 

1.

대강절 셋째 주일이었던

지난 주일에는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라서

이사야서 61장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2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을 방문해서 첫 번째로 읽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해서 직접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정통하셨습니다.

 

2.

이사야 61장 말씀을 갖고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읽으신 본문을

지금 제가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2천 년이라는 시차는 있지만,

예수님과 제가 같은 말씀의 공간에 머무른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역을 예고한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사야 61:1-2)

 

한 글자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예사롭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사야 말씀을 대하셨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할 메시아로

살아가실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준비하시면서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으셨을 것 같습니다.

 

3.

이처럼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신앙과 삶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분들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그러니 성경은 매우 신비로운 책입니다.

 

올해도 성경 통독을 마쳤습니다.

10여 년 가까이 계속된 성경 통독입니다.

매년 읽을 때마다 같은 말씀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성경의 신비를 경험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보물찾기하듯이, 성경 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성경의 신비를 누립시다.

 

하나님,

세심하게 주의 말씀을 읽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1 이-메일 목회 서신)

견리망의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의 교수 신문은 사자성어를 공모해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목요 서신에서는

거의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소개하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2023년에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서 의로움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성현 장자(莊子)가 산책을 하는데

매우 커다란 까치 한 마리가 그의 이마를 스치더니

밤나무 숲에 가서 앉았습니다.

 

장자가 새총을 들고 까치를 잡으러

살금살금 밤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까치에 접근하는데

까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알고 보니, 눈앞에 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까치를 모른 채

눈앞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매미 역시 시원한 밤나무 숲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 뒤에서

밤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장자를 밤 서리꾼으로 생각한 것인데,

장자 역시 까치를 잡으려는 생각에

남의 집 밤나무 밭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장자가 사흘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까치를 잡으러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은

눈 앞의 먹잇감만 노리고 있는 까치나 사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다가 옳은 일을 잊어버렸다”는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나왔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배만 불리려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빗대서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 같습니다.

 

2.

견리망의의 반대는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눈앞에 이익을 놓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도리인데,

개인의 잇속을 먼저 챙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살기보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지요?

 

올해 마지막 성경공부 주제였던 <참된 복>에서 배웠듯이

상대적인 복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성공이나 출세, 심지어 기도 응답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길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마음도 장착하고 싶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설교 이후 계속 반복하듯이

‘정말 중요한 것’과 ‘그까짓 것’을 분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하나님,

행여나 우리 속에 숨어있는

<견리망의>몰아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14 이-메일 목회 서신)

샌드라 오코너

좋은 아침입니다.

 

1.

12월이 시작된 지난 1일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샌드라 오코너(Sandra O’Connor)가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샌드라 오코너는

애리조나에서 수천 마리의 소를 키우는

목장 집 딸로 자랐습니다.

 

16세에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서

1952년 22세의 나이로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여성 차별이 심하던 당시에 오코너가 원하는 로펌에 취업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산 마테오 카운티에서 검사를 돕는 일을 하다가

결국에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애리조나로 옮겨서

주의회 상원 의장에 오릅니다. 여성 최초였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오코너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후보 시절 공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원이 만장일치로 오코너의 대법관직을 인준했습니다.

 

대법관이 된 오코너는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이 추천한 보수 진영의 대법관임에도 불구하고

낙태에 찬성하고, 소수 민족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에 찬성하는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실용적 행보를 하면서

여성 최초의 대법관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25년간 대법관직을 수행하던 오코너는

2005년 종신제 임기인 대법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은 놀랐고 또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치매에 걸린 오코너의 남편은 요양원에서

다른 여성과 연애에 빠졌다는군요.

 

오코너는 개의치 않고

남편과 함께 TV에 출연하는 등,

치매와 싸우는 가족들을 격려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자기 경험을 살려서 암 환우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오코너는 애리조나 목장집 딸에 걸맞은

억척같은 여성이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일에 앞장선 선구자였습니다.

 

2018년,

안타깝게도 오코너 역시 치매 판정을 받습니다.

엊그제 12월 1일 치매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오코너는

명예나 권력에 인생을 걸지 않았습니다.

평생 공직을 수행함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었고

그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오코너는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공적인 일보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사적인 일에서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오코너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인생의 목표가

소위 성공에 몰입하는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법관 시절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면서

실용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도 오코너의 큰 업적입니다.

특별한 가치관을 갖고 살았던 오코너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귀감(龜鑑)이 된 이유입니다.

 

3.

한 해를 마무리하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그까짓 것’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귀감이 되었는지 등등.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꼭 붙들고 삽시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구별되게 행동하면서

거룩함, 예수님을 닮아 갑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엡4:15)

 

 

하나님,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7 이-메일 목회 서신)

피난처 있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에 대한 해설과

시편 46편 말씀을 나눴습니다.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는

1908년 감리교와 장로교가 편집한 찬송가에 수록되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기 2년 전입니다.

 

누군가 시편 46편 말씀에서 커다란 은혜를 받고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말씀에 녹여내서

<피난처 있으니> 찬송시를 썼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이리로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1절)

 

나라를 잃고 마음둘 곳이 없이

구한말을 살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면서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만유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3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은 앞다퉈서 최첨단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드론이 전장에 사용되면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새로운 판도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호령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창검이 필요 없는 세상이 속히 오길 기도합니다.

 

2.

2023년도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중요합니다.

말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 인생이 사람이 만든 달력에 따라 펼쳐지지 않습니다.

일년 내내 힘겨웠던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생긴 일도 있습니다.

지지부진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조바심이 나고 때로는 기도하는 것조차 지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드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것도 부담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꼭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라 (시편 46:1)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가서 피하면 됩니다.

힘이 남아 있으면 힘차게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면 되고

힘이 없으면 터덜터덜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잠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산성(fortress)가 되심을 믿습니다.

 

3.

가야 할 곳,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언제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남은 한 달,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주님의 은혜로 삽시다.

우리도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어서 하나님 사역에 동참합시다.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46:10)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46:10)

 

하나님,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30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감사

1.

감사절(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는데

농경 사회의 영향입니다.

 

물론 한 해를 마감하는 면에서

“추수”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영어에서 유래된 명절이고 우리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식으로 <감사절 Thanksgiving Day>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수십년 사용하던 용어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 어렵기에

우리 교회에서는 조금씩 차근차근 감사절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감사절의 유래를 찾는다면

이스라엘에서 가을철 포도 농사를 마치고 지켰던

수장절 또는 초막절입니다.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음력을 사용했기에

양력으로 치면 9월말에서 10월 말 사이에 옵니다.

올해 초막절은 9월 29일부터 10월 6일이었습니다.

 

수장절을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밖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재연한 것입니다.

 

동시에,

한 해 동안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비추셔서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3.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에게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풍토병은 물론 생소한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첫 겨울을 나면서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 가축을 키우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모두 함께 어울리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냈지요.

 

3.

우리도 한 해를 지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멈춰서 숨은 도움의 손길들을 떠올리기 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주일 동안

초막(텐트)을 짓고 그곳에 살면서

광야에서 고생하던 조상들의 삶을 떠올렸듯이,

우리도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고난이 현재의 삶으로 승화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를 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작은 손길들이 우리를 도왔고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서 결실을 맺은 열매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숨은 감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삶 이곳저곳에 흩뿌려지듯이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이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하나님,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선으로 악을 이기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공부하는 로마서 12장은

강력한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악에게 지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시도입니다.

교활하고 치밀한 악한 세력에 넘어가서

결국 세상에 악을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로마서 12장 14절 이하에서 찾는다면,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선을 도모하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는 것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마5:38-48)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지 말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교회 독서클럽에서 읽었던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에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원수들을

어떻게 비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독특하게 풀어내서 알려줍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의 경우,

오른손을 쓰는 사람이 손바닥으로 치면,

상대의 왼편 뺨을 때리게 됩니다.

그러니, 오른손으로 오른편 뺨을 때리려면,

오른손 손등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예수님 말씀에서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방이 오른손 손등으로 톡톡- 쳤다는 것입니다.

뺨을 맞는 사람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커다란 수치입니다.

 

그때 맞은 사람이 왼편 뺨을 돌려댑니다.

왼손 손등으로 톡톡 치면서 창피를 주어야 하는데

당시에 왼손을 사용하는 부정하고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오른손(주먹)으로 왼편 뺨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상대를 동등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왼쪽 뺨을 돌려 대는 순간,

상대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러설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원수를 환대하는 것보다는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비폭력 방법임이 틀림없습니다.

 

월터 핑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대신에

제 3의 길, 예수님의 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창조적 대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환대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주일설교에서

이 말씀이 성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복수하고 응징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함을 우리는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역을 곰곰이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하나님,

삶의 현장에서 선을 악을 이길

구체적인 지혜를 알려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16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에 항상 힘쓰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배운 로마서 12장 12절은

세 가지 말씀이 운율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Rejoice in hope

환난 가운데 참으며           Be patient in tribulation

기도에 항상 힘쓰며           Be constant in prayer.

 

외워서 마음에 담아두고

수시로 꺼내서 읊조리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해도 좋겠습니다.

 

세 가지 구절 가운데

“기도에 항상 힘쓰며”가 특별했습니다.

 

기도할 때,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 가운데 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씀은

삶이 기도가 되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훈련과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2.

미국에 처음 왔던 전도사 시절에

지역 교회 청년부를 인도했었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캠퍼스에 모여서 청년부 모임을 갖고

밤늦게 헤어지곤 했습니다.

 

우리 모임에 악기를 전공하는 자매들이 있었는데

인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자매들은 “연습하러 가요”라고 말하면서 연습실로 향했습니다.

 

주말 저녁이라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답니다.

혹시라도 연습을 놓치면 연주하는 소리에 나타나고

자신은 물론 교수님도 알아차리신다고 했습니다.

 

자매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저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자매들처럼 읽고 있는지,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지,

목회의 길을 가는 전도사로 신앙의 훈련에 애를 쓰는지,

저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쓰며”는 훈련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훈련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면 자연스레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너무 좋거나 너무 힘들 때만

주님께 나와 무릎을 꿇는 특별 행사가 아니라

기도가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기 원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식을 하는 솔로몬 왕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을

어제 수요예배에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던 솔로몬의 모습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의 표시요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편 것은 사모함의 표시입니다.

우리도 남은 두 달 그렇게 기도합시다.

 

기도가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하나님 백성의 아름다운 모습이고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하나님,

기도가 습관이 되고,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9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