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는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도에 대한 말씀이
다음 주일로 끝이 납니다.

올해는 <간구>라는 주제로
실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분깃이 되심을 고백하면서
“오른 쪽을 살펴 보소서”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른 쪽은 삶의 축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간단히 기도노트를 적어갑니다.
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을 위한 기도가 맨 위에 있습니다.
다급한 기도제목을 갖고 계신 참빛 식구들과
후원자들의 이름을 써 가면서 기도합니다.

차근차근 이뤄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제 <간구 기도>의 기쁨이고 간증입니다.

이런 저의 경험 때문에
꼭 기도노트를 적어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대충하거나, 며칠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마라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우리들에게 끈기는 필수입니다.

2.
간구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목요서신을 통해서 보충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리처드 포스터의 고요한 기도에 이어서
오늘은 유진 피터슨의 <응답하는 기도(Answering God)>에서
한 문단을 옮겨왔습니다.

시편은 순종의 행위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대답하는 것이다… 시편의 기도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찾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이 반응들은 놀람의 반응일 때가 많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러 오시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하나님은 오셔서 말씀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붙들고,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내서 은혜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유진 피터슨, 응답하는 기도, 15>

처음 시간에
시편 자체는 찬양과 기도는 물론 예배로 나간다고 말씀 드렸는데
유진 피터슨의 책 소제목도 “시편을 가지고 기도하기”입니다.

간구는 우리의 생각이나 소망이 주체가 됩니다.
자칫 내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객체가 되는 누를 범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있듯이
시편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대로 간구한다면
간구 기도 역시 하나님께 응답하는 지경까지 나가게 될 것입니다.

3.
이번 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은 끝이 나지만
우리들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껏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부르짖어 기도하고
힘들 때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응석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를 넘어서
온 세상을 위한 기도까지
무릎 꿇고 지구를 몇 바퀴 돌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지경은 이처럼 길고, 높고, 넓고 깊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기도의 특권을 마음껏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잊지 말 것은
나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고
세상을 품기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시편 142편5절)
I cry to you, O LORD; I say,
“You are my refuge, my portion in the land of the living.” (Psa 142:5 ESV)

하나님 아버지,
기도가 몸에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28 이-메일 목회서신)

고요한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 주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입니다.

간구는
우리의 다급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고
저절로 부르짖게 되고
마음을 토해내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가는 기도의 길은 다양합니다.
이번에는 그 가운데 하나인
간구에 대해서 시편 142편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지요.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강조하다 보니
조용히 하나님께 나가는
“고요한 기도(silence prayer)”를 말씀드릴 틈이 없습니다.

다급하고
중요한 일 앞에서 우리는 부르짖고 간구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소리 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복잡한 일이 앞에 있거나
마음과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울 때는
조용히 드리는 무언의 기도가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 입니다.
단순하게 어떤 해결책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청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참 복잡할 때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 조용히 나가서
하나님 품속으로 들어가는
고요한 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2.
리처드 포스터는
<무언의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 방법이 하나 있다. 먼저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모든 긴장과 걱정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 방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보라.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정신이 산만해 지면 그것을 다만 아버지의 품 안에 올려 드리고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맡기라.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풀어 버리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에서 자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기만 하면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과의 동행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심적 갈등과 좌절까지도 마치 태양 앞의 눈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녹아 없어지고 만다. 속에서 끓어 오르는 폭풍우까지도 하나님께서 “평안하라. 고요하라”하시면 잠잠해 질 수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도 하나님의 큰 침묵 속에서 잠잠하게 될 수 있다. (리처드 포스터, <기도> 218-219)

3.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온 몸이 땀에 젖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말없이 기도하면서
우리의 복잡한 심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5-10분 잠깐씩
무언의 기도(silence prayer)를 드려 보십시오.

모든 삶의 스위치를 끄고
하나님 안에 평안히 거하십시오.

부르짖는 기도와 더불어
무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마음과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편 1-2절)
For God alone my soul waits in silence; from him comes my salvation.  He only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I shall not be greatly shaken.  (Psa 62:1-2 ESV)

하나님 아버지,
부르짖어 기도함과 동시에
말없이 주님께 나감으로
주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21 이-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삶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기도에 대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시편 142편을 갖고
간청하는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동굴에 피신해 있는 다윗은
하나님을 외쳐 부르짖으며 찾습니다.
하나님께 소리 내서 간구합니다.

자기에게 닥친 원한들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서 진술합니다.

그렇게 다윗은
빛이 없고,
들어온 입구밖에 다른 출구가 없는
동굴 속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합니다.

2.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기도를 잃어버립니다.
아니 기도해야 할 때 다른 일을 하거나,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할 때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C.S 루이스가 기도에 대해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그래, 어찌됐든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자구. 기도는 분명 괴찮네. 기회만 생기면 얼씨구나 하고 기도를 빼먹게 되고, 기도를 마치면 할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남은 하루를 감싸지. 기도를 시작하기 전까지 있는 대로 몸을 뒤로 빼다가, 기도를 마치면 기뻐하네. 소설을 읽거나 십자말풀이를 할 때와는 달리, 기도 시간에는 사소한 일에도 주의가 흐트러지네.(기도, 166)

그러면서 솔직하게 기도하길 요청합니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 가장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듯해.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가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낼 때가 있다는 거지. 찰스 윌리엄스는 그의 책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제단은 하늘의 불이 다른 곳으로 내려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쌓아야 할 때가 많다.”(기도, 172)

3.
기도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나 사건이 되면
기도가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됩니다.
반대로 기도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5월 한달 동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가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간구하고, 마음을 토해내고, 진술하십시오.

기도가 기쁨이 되고, 힘이 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가 되기 원합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편142;1-2)
With my voice I cry out to the LORD; with my voice I plead for mercy to the LORD.
 I pour out my complaint before him; I tell my trouble before him. (Psa 142:1-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14 이-메일 목회서신)

작은 은혜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한달 동안
은혜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이 잊어버리시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매번 연속해서 말씀을 나눌 때마다
마음 속 깊이 남은 것들,
느낌과 결심,
그리고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은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못박는 로마 군병들까지 용서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악에 대해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세상을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집념이 십자가에 깃들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할수록
우리는 깨끗해지고,
겸손해 지고
세상을 품게되고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생명으로 나가게 됩니다.

3.
무엇보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들 일상의 삶에 감사와 기쁨을 줍니다.

켄트 널번(Kent Nerburn)이라는 분은
일상 속에 잠잠히 임하는 은혜들을 기억하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작은 은혜들(small gift: the quiet gifts of everyday life)>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분이 생계를 위해서 택시운전을 한 적이 있답니다.
아침마다 앞을 못 보는 한 여성이 자신의 택시를 탑니다.
그 여성은 한 손에 지팡이를 꼭 쥐고
뒷좌석에 조용히 아주 평온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용기를 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으세요?”

앞을 못 보는 여성이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구름(cloud)을 보고 싶어요.”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 마다 구름을 설명하는 것이 틀려서
꼭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앞을 못 보는 여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구름이 어떻게 생겼어요?”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꿈들과 같아요
(They’re like God’s dreams).”

여인이 “고마워요”라고 답변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평안함, 고요함, 그리고 작은 미소가
택시 안에 가득 찼었다고 전합니다.

4.
그 여성이 눈을 뜰 수 있다면
왜 하필 구름을 보고 싶다고 했을까요?

사람들의 설명이 다양하니 꽤 궁금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운전하는 작가는
“하나님의 꿈들”이라고 구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구름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설명해 준 것입니다.
감사할 수 밖에요!

왠지 5월이 되면
꿈이 생기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 인생길에
구름이 찾아오고 또 지나가겠지요.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의 꿈”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작은 은혜들(small graces)”로 넘치는
아니 작은 은혜들을 흘려 보내 않고 포착하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For I decided to know nothing among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1Co 2:2 ESV)

하나님 아버지,
삶 속에 작은 은혜들이 넘치게 하시고,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꿈을 포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7 이-메일 목회서신)

내 안에 거하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요한복음을 한 장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의 대상은 순전히 제자들입니다.
제자들만 세상에 두고 가시면서 주신
마지막 부탁의 말씀인 셈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하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거하다”는 표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믿음 안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끈임 없이/매사에 예수님을 대입하는 신앙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삶에서 예수님을 맨 위에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위에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행하는 것이지요.

2.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Joh 15:7 ESV)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매사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우선순위를 둔다면
당연히 구하는 것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여러모로 힘들었던 4월이 지나고
새달 5월을 맞았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5월 한 달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곳곳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자꾸만 일어납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새 달을 맞읍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Abide in me, and I in you. (Joh 15:4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거함의 기쁨과 거함의 열매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30 이-메일 목회서신)

쑥과 담즙

1.

구약 성경의 예레미야 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른
슬픔의 노래입니다.

예레미야는
500여년 동안 이어졌던
다윗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바벨론 군인들이 들이닥쳤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짓밟히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황량하고 적막한 예루살렘과
폐허가 된 성전터
말 그대로 땅의 사람들인 힘없는 백성들뿐입니다.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남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탄식하면서 애가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애3:19)

2.
오늘이 4월 16일이네요.

지난 한 해 동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쑥을 먹는 것 같이
달콤한 음료수를 마셔도 담즙을 마시는 것 같이
한 해를 살아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고 길고 긴 한 해를 지내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모든 분들께
깊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들의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3.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초와 재난 한 가운데서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결같이 임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애3:20-22)

우리들 인생 여정이
마쉬멜로우처럼 달콤하고
산봉우리를 뛰어다니는 사슴 발처럼 가볍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인생길 여기저기
아니 때로는 대부분이
쑥과 담즙의 여정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진멸되지 않고 다시 일어남을 믿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소망의 빛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내가 낙심이 되오나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됩니다.
But this I call to mind, and therefore I have hope: (Lam 3:21 ESV)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애3;24)
“The LORD is my portion,” says my soul,
“therefore I will hope in him.” (Lam 3:24 ESV)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고
여전히 쑥과 담즙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꼭 안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16 이-메일 목회서신)

사각의 링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시간으로 5월 2일에
세기의 복싱 대결이 펼쳐집니다.

필리핀 출신의 파퀴아오와
미국 메이웨더의 세계 웰터급 통합 챔피언전입니다.

체중을 20킬로그램이나 올리면서
8체급을 제패한 파퀴아오는
필리핀을 넘어서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저돌적인 복싱 스타일에 전 세계 복싱 팬들이 열광합니다.
지금까지 64번 싸워서 5번 패했습니다.

반면 메이웨더는 복싱집안에서 태어나서
일찌감치 복싱에 입문했습니다.
47번 싸워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파퀴아오와 달리
밖으로 돌면서 상대방의 펀치를 어깨 위로 흘려 보낸 후에
맞받아치는 복싱 스타일입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일찌감치 성사시키려고 했지만
양쪽이 은근히 꺼렸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위험부담이 있는 경기였답니다.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메이웨더의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각각 37세와 38세가 된 2015년 5월 2일
운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대진료가 2억달러를 넘고
티켓값은 최고 만 불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제 다음 주 토요일,
지상 최고의 권투선수 둘이
피할 수 없는 사각의 링에서 시합을 펼칩니다.

권투팬인 저로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2.
인생을 사각의 링에 비유하곤 합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상대방과 또는 주어진 상황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칙을 하면 안됩니다.
주어진 규칙에 따라서,
정정당당하게 인생의 링에 올라가서 싸워야 합니다.

등을 보이면 지는 것입니다.
주저앉아도 집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상대방을 제압해야 챔피언이 될 수 있습니다.

권투 선수가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
체중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매우 힘들다고 하지요.

혹독한 연습은 말 그대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홀로 링 위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2라운드의 경기를 위해서
한계상황에 이를 정도로 연습합니다.
반사적으로 펀치가 나오고
스텝을 밟으면서 링에서 공격하고 수비합니다.
모든 것이 훈련의 결과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허리띠를 조여 매는 것은
전쟁이나 인생의 큰 사건을 대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준비한 것만큼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요.

우리들 역시
매일같이 인생의 사각 링에 올라갑니다.
위기와 기회에 반사적으로 대처할 정도로 훈련하면
후회 없는 시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각자에게 펼쳐지는
인생의 사각 링에 올라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준비한 것을
사각의 링에서 충분히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겁니다.

힘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1:13)
Therefore, preparing your minds for action[lit. having girded up the loins of your mind], and being sober-minded, set your hope fully on the grace that will be brought to you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1Pe 1:1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인생을 맞닥뜨릴 때
주님의 강한 팔로 저들을 보호하시고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23 이-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 주보에는
주일예배순서에
교회력을 표시해 줍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 세례와 공생애(public life),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을 따라서
한 해를 살도록 안내합니다.

지난 주에 부활절을 보낸 우리는
이제 부활절 둘째 주일을 맞게 됩니다.

부활절기는
5월의 성령 강림절까지 계속되고
강단 색깔은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입니다.

2.
부활절은 말 그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는 물론
우리들 신앙의 뿌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있기에
교회의 가장 큰 절기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부활 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고전15:58)
Therefore, my beloved brothers, be steadfast, immovable,
always abounding in the work of the Lord,
knowing that in the Lord your labor is not in vain. (1Co 15:58 ESV)

사도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우리들로 하여금
부활절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Be steadfast, immovable)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은
사시사철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상록수를 생각하면 됩니다.

비바람이 치거나 눈보라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킵니다.
게다가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의 위용을 갖추고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우리는
소나무처럼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폭풍우가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2주 동안 나눈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육체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것은 “동참(partnership)”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으니
예수님과 함께 부활합니다.

그렇기에 부활 그 이후의 삶은
더욱더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아무도 다시 살아나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약속하신 대로
사흘 후에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쓴 것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부활절 그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혜와 능력이
참빛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 속에
생명으로
항상 임하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활절 그 이후의 삶이
더욱 힘차고 확신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9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