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1.

고난 주간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캘린더가 약간 달랐지만
우리 식으로 바꿔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겟세마네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잡히셔서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성금요일,
빌라도를 통해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12시부터 운명하시던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고 전합니다(눅23:4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번 말씀하셨는데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고난 주간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함께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매우 세세하게 예수님을 느끼는 주간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느낄수록
부활의 기쁨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2.
올해 부활절을 맞으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 구절을 갖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모두 외우시길 부탁 드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 2:20 ESV)

우리들도 바울처럼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기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욕심을, 염려와 근심을
우리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몽땅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New being)
다시 태어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요
부활의 능력입니다.

3.
존 스토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지막을
캄벨 몰간의 글로 마무리합니다.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다.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런던의 파커 박사는 도마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을 세상은 지금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은 모든 복음 전파들에게도 역시 말하고 있다: 당신 손에서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다.” (존 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438)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우리들의 손과 옆구리에 예수님처럼 못과 창자 국이 있을 때
우리를 보고 세상은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냥 바라만 볼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곳에 올라가야 하고, 우리의 옛 자아가 그곳에서 죽은 것을
세상 사람들이 확인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여정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확연히 드러나길 바랍니다.

온 세상의 고난 받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위로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2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형상

1.

요즘 비행기 사고가 자주 일어납니다.
엊그제도 독일 비행기가
알프스 산맥에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비행기 사고의 원인으로
부조종사의 고의 추락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부조종사에 대한 기사가 뜨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 동안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어떤 징후도 없었기에
그분의 행동이 더욱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만약에 언론보도처럼
이번 사고가
여객기 조종사가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면
목숨을 잃은 150명에 가까운 승객들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요.
너무 안타까워서 말문이 막힙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고
그 만큼 우리 인간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피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피는 곧 생명의 상징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행위였습니다.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레 17:14)
For the life of every creature is its blood: (Lev 17:14 ESV)

3.
사고를 낸 부조종사의 기사를 읽으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이 겹쳐서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사고를 저질렀는지,
그 맘 속에 얼마나 큰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길래,
자기 통제(self-control)를 하지 못하고
그토록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동시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조종사가
자신을 믿고 탑승한 승객들의 생명을
눈곱만치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에 화가 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번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 생명을 천시하고
폭력과 테러, 전쟁을 일삼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그곳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존귀한 이웃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God bless you” – 축복해 줍시다.

하나님 아버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무엇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26 이-메일 목회서신)

서로 먼저 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새벽기도회를 갈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새벽기도회를 가는 길은 서두르게 마련입니다.
물론 새벽에는 I-280 고속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 70마일 이상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 날도 부지런히 속도를 높이며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앞에 자동차 한대가 60마일 정도로 달립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너무 답답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아내가 들을 정도로
너무 늦게 달린다고 구시렁댔습니다.
쪼금 화도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5분여를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데
불연 듯 내가 왜 이 차를 뒤따라가면서
불평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하는 기간 아닙니까?

제 옆 차선에 차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앞에 차가 천천히 가면
제가 옆 차선을 이용해서 추월하면 그만인데
차선을 잘 바꾸지 않는 운전습관이라고 쳐도
괜히 앞차를 따라가면서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아차 싶어서
얼른 옆 차선으로 추월하면서
옆을 힐끔 쳐다보니 할아버지께서
새벽에 어딘가 가시는 듯 했습니다.
일부러 천천히 운전하셨겠지요.

2.
때때로 우리는
내가 바꾸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일이 성사될 수 있는데
제가 앞차를 5분여 뒤쫓아갔듯이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남을 탓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두 달여 살펴보았던
창세기의 요셉은 매우 주도적인(proactive) 인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었다면 뒤에서 불평하지 않고
얼른 차선을 바꿔서 자기 길을 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내가 바꾸면 가능한 것들입니다.
나의 태도,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먼저 바꾸면 되는데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남이나 환경을 탓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움직입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고,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내가 먼저 양보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0-11)
Love one another with brotherly affection. Outdo one another in showing honor.
Do not be slothful in zeal, be fervent in spirit, serve the Lord. (Rom 12:10-11 ESV)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행동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9 이-메일 목회서신)

변화를 받아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이 낫는 것부터
영적인 회복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 살펴본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누구의 죄로 인해서 소경으로 태어났는지 궁금해했고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났으니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3)
Jesus answered, “It was not that this man sinned, 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Joh 9:3 ESV)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낫는다는 약속이나 확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건만
맹인은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눈이 뜨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난생 처음 세상을 보게 된 사람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확신있게 말합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9:25)

결국 그들에게 쫓겨납니다.
그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만나셔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뜬 사람의 고백이 크게 들립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Lord, I believe.)”

2.
길가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난생 처음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거듭 태어난(born-again)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태어남(新生)에 견줄만한 변화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말과 행동의 변화입니다.
하나님 언어를 쓴다고 할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산다고 할까요?
주위 사람들이 감지할 정도의 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목표가 변화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 마음대로 살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이쯤 되면 완전한 변화입니다.

3.
요즘은 우리의 생각과 삶이 복잡해져서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가 솔직히 힘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가 쉽게 감지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발휘되지 않고
옛사람 그대로 살거나,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눈이 뜨이고,
생각, 언행, 삶이 모두 변화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생기는 변화를
몸으로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변화를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Rom 12:2 ESV)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2 이-메일 목회서신)

선행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뉴스에 보니
영화배우 헤리슨 포드가 자신의 경비행기를 몰다가
골프장에 추락했답니다.

3천 피트 상공을 날고 있을 때
엔진 이상을 발견하고
인근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으니 주택가를 피해서 골프장에 추락했다는 보도입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니
30년 이상 비행경력을 가진
베테랑 조종사의 경험과
73세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한 셈입니다.

헤리슨 포드가 나온 영화가 수없이 많지만
미국에 와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은
Air force One이라는 영화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공중납치 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되는 전형적인 미국영화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은 자신이 비행기를 몰고
골프장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는데
목숨이 무사하다니 정말 운이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어나가면서
헤리슨 포드가 자신이 갖고 있던 헬리콥터로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종된 보이스카웃 소년을 구출하기도 하고
작년에는 별장이 있는 와이오밍에서 등산객을 구조하기도 했답니다.

평소에 쌓아놓은 이분의 선행이
이번 사고에서 목숨을 구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불연 듯 들었습니다.

2.
사순절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기도와 말씀 그리고 금식의 경건생활과 동시에
이웃을 돌아보는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
우리보다 연약한 이웃
외로운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늘에 복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살다 보니
선한 일을 한 것이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경험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소소한 선행을 실천하시면서
사순절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
근사한 선행도 시도해 보십시오.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생명의 길임을 믿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13:16)
Do not neglect to do good and to share what you have,
for such sacrifices are pleasing to God. (Heb 13:16 ESV)

하나님 아버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기쁨의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5 이-메일 목회서신)

빗나간 화살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독감이 유행입니다.
어른도 독감에 걸리면 2-3 일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고
아이들도 열이 많이 오르는 등 무척 아프다고 합니다.

교회 식구들도 독감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몇 주전부터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안인 샬롬이
여러분의 육신의 건강에도 임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주
참빛 보이스에서
독감예방주사(flu shot)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독감 백신에는 아프리카나 먼 곳에서 이미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을 예상해서 몇 가지 백신을 만드는 것인데
올해는 맞추지 못한 것 같다고 답변해 주셨지요.

요즘은 바이러스들이 하도 교활해져서
백신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듯합니다.

백신도 중요하지만
우리 몸에 면역력이 강해지도록
영양과 운동, 수면을 잘 취해야겠습니다.

노화를 방지하고 장수하는 데
‘명상’이 도움이 된다고 하였지요?

그러고 보니 쉬임없는 기도야 말로
더 없이 좋은 장수 활동입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고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서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은 물론 우리 몸에도 좋다니
부지런히 기도생활을 해야겠습니다.

2.
성경에서는 죄(sin)를 두고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failing to hit the mark))”이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동사 “하마르타노”
히브리어 “하타”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화살이 빗나가서.
표적을 맞추지 못했을 때 그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엉뚱한 일에 힘을 쏟고
정신이 팔려서
그만 표적에서 빗나가버린 것들이 죄입니다.

여기서 표적은
“하나님”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빗나간 생각, 행동, 관계등이 죄입니다.

3.
사순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신앙의 절기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들 신앙이나 삶 가운데
표적에서 빗나간 화살들이 있는지 돌아보고
재조준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일입니다.

올해 flue 백신은 바이러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죄로부터 벗어나서, 신앙과 삶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has set you free in Christ Jesus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Rom 8:1-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과 삶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날마다 우리를 주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26 이-메일 목회서신)

세 가지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미국시간으로 설날이네요.
미국에서야 설날을 챙길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모두 모두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웨슬리는 신앙이 성장하고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 초대교회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으로
개인은 물론 공동체 기도, 말씀읽기, 성만찬, 금식,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2) 상황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은총의 수단은
선을 행하는 것(to do good)과
나쁜 것을 피하는 것(to do no harm)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신앙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이외에도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경제적 나눔, 시간의 선용,
사랑의 식탁나눔(애찬), 찬송, 영적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이러한 은총의 수단들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성도의 삶이 풍성해지며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어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사순절마다 첨부해 드리는 자료를 꼭 읽어보세요)

올해 사순절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하루에 세가지 감사 제목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록해 놓으면서
삶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감사 제목들이 생길 수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이 그냥 감사할 수도 있고
또 특별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가지 이상을 적으셔도 되지만
40일 동안의 지속해야 하니
하루 중 가장 감사한 일 세 가지씩만 정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이 더 가시면
주보 위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 말씀을 갖고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신 후
짧게라도 경건의 일기를 쓰시는 것입니다.

영적 일기를 쓰면서
삶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신앙 가운데 차분히 앞 길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여정을 글로 남겨놓으면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임했으며
자신의 신앙이 어떤 행보로 성장하고, 변화되었는지 발견합니다.

삶에 주님의 손길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그대로 올려지게 될 것입니다.

3.
사순절 기간 동안
영적 일길를 쓰시는 것은 선택사항이고 (물론 강력히 추천합니다)
하루에 세가지 감사의 제목을 기록하시는 것은
참빛 식구들께 교회에서 드리는 숙제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속회나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에
감사의 제목들과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시면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것 입니다.

하루 세 가지 감사 –
꼭 부탁 드립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19 이-메일 목회서신)

창세기 요셉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눴다면
성경의 첫 번째 말씀인 창세기의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말씀은 독특합니다.
요셉은 성경의 여느 인물들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행동이 사뭇 적습니다.

대신에 요셉에 대한 말씀 속에는
본문의 해설자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난 주에 살핀 열일곱 살 요셉은
자랑하고, 교만해서 우쭐했지만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어진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인으로 빚어집니다.
그의 삶이 곧 예배였고,
그런 요셉과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2.
눈에 띠는 특별한 일을 한 두 번 잘할 수는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작은 일에 충성했다”며 칭찬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오스 기니는 그의 책 <소명>에서 오스월드 챔버스의 글을 인용해서
일상적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발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충동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은 쉽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마른 땅 위를 걷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가기 위해 물 위를 걸었지만 땅 위에서는 멀리 떨어져서 그분을 쫓았다…… 우리는 상당한 긴장에 놀랄 만큼 잘 대처한다. 그러나 매일 24시간 동안 성도답게 사는 것, 제자로서 단조로운 일을 해내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고, 무시된 존재로서 사는 데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평범한 일에서 특별해야 하고, 더러운 거리, 비천한 사람들 중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은 5분 내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14쪽)

또한 2세기 기독교 변증가이자 순교자였던 유스티누스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갈릴리에서 자랐는데 그가 어렸을 때
나사렛 목수 예수님께서 만드신 쟁기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답니다.

오스 기니는
예수님께서 목수시절에 만드신 쟁기와 멍에가 오랫동안
갈릴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그 분이 만드신 쟁기와 멍에가
그렇게 오래 사용될 정도로 탁월한 물건이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314쪽)

3.
힘차게 시작했던 2015년도 어느덧 첫 달이 지나고
두 번째 달도 중순으로 향합니다.
엊그제가 입춘이었다니 시간의 흐름이 실감납니다.

이제 서서히 새해의 결심이 식고
원래의 습관과 타성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늘 특별할 수 없습니다.
기적으로 가득 채워질 수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보다
일상적인 것에서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단조로운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특별한 섭리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그때 일상이 곧 기적이 될 것이고,
요셉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사는 것이
예수님께서 목수시절 만드신 쟁기와 멍에처럼
훗날까지 가치가 있는 것이 되길 바랍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창 39:2-3, 새번역)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he became a successful man, and he was in the house of his Egyptian master.  His master saw that the LORD was with him and that the LORD caused all that he did to succeed in his hands. (Gen 39:2-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5 이-메일 목회서신)

미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거울을 보면
영락없는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거울 속에 들어있습니다.
애써 젊은 표정을 지어보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종종 제 표정이 근엄해 보일 때도 있답니다.
웃음기가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살짝 미소 짓는(smile)연습도 해봅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MSN 홈페이지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미소 지어야 하는 11가지 놀랄만한 이유:
11 surprising reasons we should smile everyday>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 미소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줍니다.
– 미소는 스트레스를 낮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 미소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게 만듭니다.
– 미소는 두뇌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 미소는 생산성을 높여줍니다.
– 미소는 창의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각각의 이유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UCSF연구진은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보다
미소 짓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더 창의적임을 밝혔답니다.

심지어 억지로 웃는 것(fake smile)도
남들에게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좋은 인상을 준다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미소(微笑)의 한자어는
“작을 미”에 “웃을 소”입니다.
<작은 웃음> 그래서 미소입니다.

영어에서 s-mile은
<에스s>발음을 하면 저절로 입이 살짝 열리는데
그렇게 미소 지으면서1 마일을 걷는 격입니다.

2.
성경에 미소라는 말이 쓰인 두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욥기 29장 24절입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그들은 새로운 확신을 얻고,
내가 웃는 얼굴을 하면 그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새번역)
I smiled on them when they had no confidence,
and the light of my face they did not cast down. (Job 29:24 ESV)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이 컸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 그런 시절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욥은 확신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보면
슬며시 미소 지어 주었습니다.
욥이 밝게 웃어주면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못했고 결국 용기를 얻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은 미소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39편 13절의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구합니다.

13절을 히브리어 그대로 읽으면
제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미소 지울 수 있도록
저의 허물에 눈길을 두지 말아 주십시오.
Look away from me, that I may smile again, before I depart and am no more!”
(Psa 39:13 ESV)

세상 일이 허무한 줄 알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치이고, 죄를 지으며 살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허물을 용서해 주시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웃음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13절의 한글성경들은 칠십인역이라는 헬라어 성경을 참고해서
원기를 회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로 번역했네요]

3.
우리가 요즘 살펴보는
요셉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봅니다.

보나마나 요셉은 늘 웃음지으면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스마일 보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물론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서 소망 없이 지낼 때도
요셉은 미소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나중에 이집트 총리가 되는데
그의 미소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들 삶이 어떠하든지
미소를 간직하기 원합니다.

종종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최고의 미소를 올려드리는 겁니다.
“스마일”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앞에서
주님으로 인해서
미소 짓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12 이-메일 목회서신)

룻기속의 사람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 성경 룻기를 읽고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각자 마음대로 행하던 사사시대입니다(삿21:25)
가나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앙적으로 바닥을 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들자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부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남편이 죽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킵니다.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도 죽습니다.

결국 모압 땅에
나오미와 두 명의 모압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에 가뭄이 그쳤다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역이민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때 둘 째 며느리 룻이 따라 나섭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고,
어머니 나라에서 어머니 곁에 묻히겠다는 것입니다.
충성심이 대단합니다. 기특합니다.

2.
나오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나오미와 모압 며느리 룻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면서 조롱합니다.

그때 나오미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기쁨pleasant]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슬픔bitternaess]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룻1:20-21)

처절한 고백입니다.
잘 살겠다고 모압에 갔는데
금의환향은 커녕 최악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가족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합니다.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룻은 생활전선으로 나갑니다.
추수하고 남은 이삭을 주우러 간 것입니다.

그때 룻이 우연히 간 곳이 보아스의 밭입니다.
민첩하다는 이름을 가진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유력인사였고
무엇보다 훌륭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요즘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보아스는 자신이 고용한 일꾼들을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밭에 가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길 원하노라”고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길 원하나이아”(삿2:4)라고 일꾼들이 화답합니다.

마음씨 좋은 보아스의 밭에 간 덕분에
룻은 이삭을 많이 주워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보아스가 나이는 많아도
당시 관습에 따라 홀몸으로 돌아온 룻을 책임질
친족 가운데 한 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아스는 매우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를 만나게 해줄 생각을 합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를 만났지만
나오미는 단지 우연이 아님을 간파하는 믿음의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말대로 룻이 보아스에게 나가고
보아스는 가문의 절차를 밟아서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들에게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태어납니다.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천여 년이 흐른 뒤에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와
모압에서 온 외국인 룻 사이에서 생긴 일입니다.

3.
룻기를 읽다 보면
감정이 동합니다.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 땅에서 겪은 일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고향을 떠나서 타향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더 깊이 공감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룻기 속의 인물들은
강합니다. 따뜻합니다. 성숙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쓰셔서
이스라엘 최고왕 다윗,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뤄주신다는 말씀(롬8:28)이 생각납니다.

신앙이 무너지고,
전쟁과 가뭄, 미움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사사 시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힘을 얻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30:11)
You have turned for me my mourning into dancing;
you have loosed 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gladness, (Psa 30:11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성품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9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