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붙잡기

은 아침입니다.

1.
연말에 선물했던
헨리 나우웨의 <삶의 영성>을
발췌해서 주보에 계속 싣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 주보에 싣은 내용을
여러분과 미리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30분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의 간단한 단어나 구절을 머리와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 구절을 세 번 반복해서 말해보라. 우리는 이 말씀의 뒷부분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내게 부족한 것과 원하는 게 많이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진리 자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계속 되뇌며 그 진리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하면, 점점 그 말씀이 내면에 있는 성소의 벽에 새겨진다. 거기서 생겨나는 여유 덕분에 우리는 직장 동료와 일, 가족과 친구, 하루 중에 만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의 <삶의 영성>, 54쪽-

나우웬은 하나님 말씀을 꼭 붙잡고
하루에 30분씩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제안합니다.

30분이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의 단어나 구절을 붙잡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줍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는 구체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때때로 우리는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다잡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자기 자신의 신념을 강화합니다.
일종의 마인드 콘트롤입니다.

자칫하면 위에서 나우웬이 제안한 말씀 붙잡기도
마인드 콘트롤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말씀 붙잡기와 마인드 콘트롤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인드 콘트롤은 자기안에 있는 것을 갖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잡기는
밖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자기 안으로 갖고 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생기는 능력은 늘 제자리 걸음입니다.
반면에 밖에서 들어오는 능력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 말씀이기에
말씀 붙잡기가 효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마인드 콘트롤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 능력을 힘입기를 소원하며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단어든지 아니면 한 구절이든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꼭 붙잡고 사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꼭 붙잡고
오늘 하루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3.13 이-메일 목회서신)

감동 그리고 또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와 오늘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눈길이
거의 모두 김연아 선수에게 맞춰졌던 것 같습니다.
합쳐서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경기를 기다렸고, 동작 동작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은메달을 땄습니다.
부당한 경기결과에 온 국민이 속이 상해하지만
말 그대로 가장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어제는 노랑 나비처럼 아름답게
오늘은 <아디오스 노니노/안녕 할아버지>라는 곡에 맞춰서
우아한 스케이팅을 보여주었습니다.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모든 국민이 박수를 보냈지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2.
어쩌면 김연아 선수에 가려서
관심을 덜 받았지만
또 하나의 감동이 금강산에서 있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남북이산가족이 재개된 것입니다.

남측의 12만 이산 가족들 가운데 5만 명이 이미 고인이 되었고
남은 7만 여명의 이산가족들도 80세가 넘으셨답니다.

호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신
이산가족들이 만남을 갖는 것을 보고
그들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니
왠지 모를 죄송함과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산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3.
세상 일들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늘 아쉬움을 갖고 살지만
삶 속에서 느끼는 감동이 일상에 활력을 줍니다.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은 일에도 의미를 찾아서 감사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있으면
하루 하루가 그리고
우리들 삶 자체가 감동일 것 같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남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보람된 인생입니다.

오늘 하루 참빛 식구들 모두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감동 감동 그리고 또 감동이 넘치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구절을 곱씹어 읽으면서
말씀 가운데 임하는 감동까지 느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5-8)

For God alone, O my soul, wait in silence, for my hope is from him.  He only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I shall not be shaken. On God rests my salvation and my glory; my mighty rock, my refuge is God.  Trust in him at all times, O people; pour out your heart before him; God is a refuge for us.  (Psa 62:5-8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소망을 두게 하시고
오늘 하루 세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20 이-메일 목회서신)

일곱개의 동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새벽에 읽은
출애굽기 3장 7-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6개의 동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7Then the LORD said,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o are in Egypt and have heard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8 and I have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to a good and broa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o the place of the Canaanites, the Hittites, the Amor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Exo 3:7-8 ESV)

우리 말 번역에 “인도하여…데려가려하노라”는 영어 번역에 있듯이
“bring them up”이라는 한 가지 동사가 히브리어 본문에도 쓰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잠시 시간을 내서
위의 말씀을 차근차근 서너 번 꼼꼼히 읽어보십시오.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서 먹는 차원으로 들어가보십시오.
빨강색 즉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는 동사를 한가지씩 붙잡고 묵상하고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상관들이 괴롭힐 때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타향살이,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심과 막막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 하나님의 마음이 세가지 감각적인 동사로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십시다.
애굽에서 건져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때때로 근심이 몰려오고, 한없이 외롭습니다.

그때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말씀이 커다란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을 묘사한 단어가 여섯 가지 입니다.

여기에 완전수 일곱을 채우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마지막 일곱은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믿음대로 살아가는 행함/삶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내려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13 이-메일 목회서신)

하늘 바라보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날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보통 겨울에는 비가 많이 와서
제발 주일날은 비가 오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어르신들은 물론 교인들이 예배 오기가 불편하시니까요.

하지만 지난 주일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는
주일날 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께서도
조금도 불편한 기색 없으셨고
할머니 권사님들은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내린 비여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
주일날 잠시 내렸던 비가
어제부터 다시 내립니다.

수요예배 갈 때도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 갈 때는
빗발이 거셀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3-4일씩 몇 번만 내려주면
급한 대로 만물이 소생할 것 같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실감했습니다.

올 겨울 캘리포니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가정마다 물을 20% 줄이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물을 줄여도 말라가는 저수지를 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기 자동차를 넘어서
무인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발명되고
조만간 어디서든지 집의 가전제품과 냉온방을 원격 조정할 수 있게 된다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니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3.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다시 바벨탑을 쌓은 인류처럼
우리들도 조금 살만하면 교만해져서 창조주 하나님을 넘봅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자랑하지만
죽음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당장 비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자연을 움직일 수도 거슬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이것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해서
하나님을 “주님(LORD)”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하나님을 다시금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사모하게 됩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폭풍질문을 고스란히 맞은 욥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새번역, 욥42:2-3)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새번역, 욥42:5-6)

I know that you can do all things, and that no purpose of yours can be thwarted.  ‘Who is this that hides counsel without knowledge?’ Therefore I have uttered what I did not understand, things too wonderful for me, which I did not know.  (Job 42:2-3 ESV)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 in dust and ashes.”  (Job 42:5-6 ESV)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6 이-메일 목회서신)

당황스러움이 놀라움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 성경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어디에 있든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와 함께 하셨고,
요셉으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집트 총리로 임명됩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이후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 버리게하셨다”(51절)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52절)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요셉은 이집트에서 총리가 된 후에
그 동안 겪었던 고통과 자신을 팔아버린 가족들을 잊어버리고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
그때 온 세상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도 양식이 떨어지자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 옵니다.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은 20에 노예로 팔아먹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고향집 일을 모두 잊어 버리고
이집트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자기 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요셉이나 형들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과의 앙금을 해소하고
화해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나갑니다.
그리고 결국 형들 앞에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형들에게 했던 요셉의 말은
두고 두고 곱씹을 명연설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45:5)

And now do not be distressed or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 for God sent me before you to preserve life. (Gen 45:5 ESV)

요셉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읽고 있었고
형들을 성숙한 자세로 맞아 주었습니다.
형들과 요셉의 갈등은
당황스러움에서 놀라움으로
즉 해피앤딩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3.
오늘이 음력 설입니다.

올 한 해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짧은 우리들로서는
당황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결국 깜짝 놀랄 일들,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을 일들이
설날을 맞이하는 참빛 교회 식구들 위에 많이 일어나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한 해의 여정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남은 2014년의 열한달 동안
주님께서 행하시는 깜짝 놀랄 일들을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30 이-메일 목회서신)

하루하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저는 한 달에 한번
은퇴하시고 우리 지역에 계신
감리교 총장님 그리고 목사님들과 몇분들과 함께
요한 웨슬리의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평생 동안 웨슬리를 연구하신
은사님의 설명을 깃들여서 설교를 읽는 유익한 시간입니다.

오전에 설교읽기가 끝나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근처 볼링장에 가서 뒤풀이를 합니다.

저는 직장에 다닐 때 몇 번 볼링을 쳐본 이후로
거의 못하다가 이번에 하게 되었기에 완전 초보입니다.
제가 그 모임의 대표격이어서 참석했는데

오늘도 점수가 100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하도 제가 헤매니까
볼링 고수이신 총장님께서
자세와 위치를 교정해 주십니다.

요령은
멀리 있는 핀을 보고 던지지 말고
마루 앞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고 던지라는 것입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해보니 신기하게 공이 맞습니다.
스트라이크도 두 번 했습니다. 나이스!!!

2.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내와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을 자주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be anxious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be anxious for itself.
Sufficient for the day is its own trouble. (Mat 6:34 ESV)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저 멀리 있는 볼링 핀을 맞추려고 애를 쓸 때는
공이 자꾸 양 옆 도랑으로 빠졌습니다.

코 앞에 있는 화살표를 보고 던지니
멀리 있는 핀을 맞출 수 있었듯이
하루 하루가 모여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푯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3.
새해 첫 달도 어느덧 지나갑니다.
힘차게 시작했지만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남게 마련입니다.
남은 한 해를 생각하면
염려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한 켠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곱씹어 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루 분만 내려주셨습니다.

하루씩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
하나님께서 내일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겁니다.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내일이 있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허락해 주신 하루를
소중하게, 열심히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3 이-메일 목회서신)

은근한 갈증

좋은 아침입니다.

1.
동부나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요 며칠 우리 지역 날씨가
반소매를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합니다.

기온만 높은 것이 아닙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겨울임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 염려가 있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는 우기입니다.
10월경부터 비가 와서
3월 말 정도까지 끊임없이 비가 내려줘야
여름의 건기를 물 걱정하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강수량을 측정한 지난 160년 이래
가장 극심한 가뭄이랍니다.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충분한 비가 오지 않아서
식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도 최저수위입니다.

급기야 지난 주에는
캘리포니아 가톨릭 교회들이 강우를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한국까지 보도되었습니다.

우리들이야 농사를 짓는 농부도 아니고
샌프란 같은 대도시는 식수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에
캘리포니아의 가뭄을 몸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가뭄은 뒤로 하고
따뜻하고 청명한 겨울철 날씨만 즐길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와야 합니다.
비가 와야
식물들도 숨을 쉬고
먹을 물도 확보됩니다.

2.
캘리포니아의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비가 와야 할 계절에 비를 기다리는 것을
깜빡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정작 필요한 “은혜의 단비”를 잊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로 사는 것인데
그만 눈 앞의 즐거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영원하고 본질적인 은혜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한 켠이 찜찜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와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으니 맑은 하늘을 염려스럽게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들도 마음 깊은 곳에 “은근한 갈증”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은혜의 단비가 필요하다는 표시(sign)입니다.

영적인 갈증을 풀어줄 단비가
마음과 삶에 내려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작심삼일이어도 괜찮습니다.
3일씩 자꾸만 결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 합니다.

말씀을 펴서 간절한 마음으로 읽어나갑시다.
매일같이 기도의 자리, 골방으로 들어갑시다.
시간을 내서 찬양을 듣고, 목소리 높여 찬송합시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주님께서 우리들 마음 속에 들어오시길 갈망합시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날씨처럼
별 탈 없이 맞은 새해에 마음이 해이 졌다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 원합니다.

새해 첫 달에 은혜의 저수지를 가득 채워놓아야
올 한 해를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8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9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땅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1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12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시 65:8-12)

8 You make the going out of the morning and the evening to shout for joy.  9 You visit the earth and water it; you greatly enrich it; the river of God is full of water; you provide their grain, for so you have prepared it.  10 You water its furrows abundantly, settling its ridges, softening it with showers, and blessing its growth.  11 You crown the year with your bounty; your wagon tracks overflow with abundance. 12 The pastures of the wilderness overflow, the hills gird themselves with joy.  (Psa 65:8-12 ESV)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달을 사는
우리들에게 올 일년을 살 수 있는
은혜의 단비를 충분히 내려 주옵소서.
주님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6 이-메일 목회서신)

진가(眞價)

좋은 아침입니다.
1.
짝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짝퉁은 진짜와 똑같아서
아주 세심하게 살피거나
연구하지 않으면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답니다.

유사품이라고 하는 가짜는
신앙생활에도 존재합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사단의 영적인 시험은
불량품으로 오지 않고
유사품으로 다가옵니다.

겉이 번드르르해서
눈과 귀를 유혹합니다.
별 차이가 나지 않기에
“이 정도쯤이야 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만만하게 보다가
그만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곤 합니다.

가짜와 진짜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가짜는 절대로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진짜는 겉모습이 허술해 보여도
끝까지 진짜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자칭 메시야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주전 6세기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후에
600년 가까이 페르시아와 헬라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다 보니
백성들이 마음과 몸이 지쳤습니다.

삶이 힘들고
희망이 없을 때 등장하는 것이 “메시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도
마찬가지여서
여기저기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또는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진짜 메시야로 오신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었다는 증언들이나
예수님께서 베푸신 여러 가지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이야임을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이야말로 그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6-7)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If you had known me, you would have known my Father also.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  (Joh 14:6-7 ESV)

3.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비록 질그릇과 같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화로 임하셨기에
우리들도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매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참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진가(眞價)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 앞에서
세상 속에서
누가 보아도 “진짜(authentic)”라고 불릴 정도로
진가를 발휘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실된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길을 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9 이-메일 목회서신)

정한 마음

한번 더
Happy New Year!

1.
2013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목요서신 파일을 열어보니
작년 이 맘 때 보낸 서신 제목이
작년의 사자성어였던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뜻이었지요.

세상이 혼탁하지만
홀로 아니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깨어있기를 소망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르지 않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말씀 드린 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세개탁”은 올해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2.
올해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사자성어 세가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깨어나서 열반을 깨닫는다는 불교용어)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
여민동락(與民同樂, 지도자가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다)”

학식이 높으신 교수님들이 뽑아서 그런지
여민동락을 뺀 앞의 두 가지는 생소한 말입니다.
(영어가 익숙하신 분들은 오늘 서신이 쉽지 않겠습니다. Sorry!)

저는 위의 세가지 가운데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흙탕물에는
맑은 물을 아무리 넣어도 뿌옇습니다.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휘-저으면 다시 흙탕물이 되고 맙니다.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새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대입하면
그나마 희망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말갛게 씻겨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정한 영을 창조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개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격탕양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시편 51편은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자복하며 드린 회개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9-11)
Hide your face from my sins, and blot out all my iniquities.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a 51:9-11 ESV)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에서 <창조하다>라는 동사에는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한
“바라”라는 히브리어가 쓰였습니다.

큰 죄를 지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정한 마음을 새로 창조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말 그대로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로 새로 채우는 <격탕양청>입니다.

4.
올 한해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맑은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혼탁한 세상에 살지만
정한 마음 (Clean heart), 맑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힘들겠지만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서 창조하신 정한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은 맑아질 테니까요!

하나님 아버지
혼탁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정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 이-메일 목회서신)

길을 걷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는 2013년 인생길을
거의 다 걸어와서
이제 달랑 일주일 남겨놓았습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가 다양했듯이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들도
모두 다를 것 같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에 하나님의 은혜 임해서
하나님께 감사했고,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많이 이루어서 뿌듯하고,
눈에 띠는 열매는 없어도 최선의 삶을 살았기에 담담히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한 해를 보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인생길이 펼쳐지지 않았고
의외의 장애물을 만나서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붙잡고
의지적으로 감사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2013년 한 해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이 어떠했든지
360여 일을 걸어오신 것만도
대단한 일이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2.
히브리어에서는
율법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걷는다(하랔흐)”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단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면서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무작정 달립니다.
악당들이 뒤쫓아와도,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어도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나가서도 그는 앞으로 달릴 뿐입니다.

“얼간이”이라는 별명 그대로
어눌해 보이지만
앞으로 뛰어가면서
정상인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냅니다.

그는 사람들과 약속을 지켰고,
평생 사랑을 쫓았습니다.
정류장에 앉아서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정류장에 앉아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의 에피소드를
낯선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비록 시한부 사랑이지만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영화 속의 포레스 검프는
얼간이가 아닙니다.

그는 우직하게 걷고 뛰면서
잘난척하며 미적거리는
정상인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3.
영화를 보면서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모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걷고 뛰기를 계속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신실함을 믿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신앙의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요!

비록 우리들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어도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하게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박수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함께 달려주신 줄 믿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최고이십니다.

내년에도 우직하게 달려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이 걸어오신 주님의 백성들을 기쁨으로 맞아주옵소서.
주어진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에
늘 곁에서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26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