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교회 앞 정원에 익어가는 사과가
우리 교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합니다.

주일날 일찍 오신 권사님들이
한 주간 동안 자란 사과를 보시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십니다.

올 해 유독
사과가 많이 열렸습니다.
다닥다닥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엊그제 누군가
손이 닿는 높이의 사과를 모두 따갔습니다.
발길이 잦은 길가에 있다지만 조금 심했습니다
얼마나 허전하고 마음이 아프던지요!

2.
정원 앞 사과가 없어진 것을 보면서
어거스틴이 자신의 청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배 도둑질했던 것을 고백하는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배가 고파서도 아니요, 궁핍해서도 아니요,
다만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고 또한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어찌 할 수 없어 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아름씩 배를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먹지도 않고
몇 개를 겨우 맛만 본 다음 돼지 떼에게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즐거웠으니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재미였습니다. (고백록, 2권 4장)

아담 이후 죄의 속성을 가진 모든 인간들에게는
죄를 즐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재미를 느끼려는 충동입니다.

아마 교회 앞 사과를 따간 분도
비슷한 충동에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3.
지난 며칠 사과나무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언짢고 누가 사과를 따갔을까를 생각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제 안에도 비슷한 속성이 들어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죄짓는 것을 즐기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요!

4.
오늘 저녁 청년들과 함께 읽은 유진 피터슨의 책 주제도
다윗의 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죄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희망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죄인의 자리는 책망과 정죄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리라는 소식 말이다.
복음의 초점은 고발이 아니라 인정(recognition)과 초대다.
인정: 죄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깨달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초대: 예수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하나님이 이렇게 가깝고 좋고 매혹적인 분이라니!- 사랑과 구원을 주시는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분이다.

다른 어떤 것 – 밧세바를 즐기는 쾌락이나 우리아를 부리는 권력 – 보다도 하나님이 더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을 내게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유진 피터슨: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221)

우리 교회 정원의 사과를 따가신 분에게도
교회 사과를 통해서 아니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생명수로
예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성을 바로 깨닫게 하시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 뜨겁게 임하는 주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7.25 이-메일 목회서신)

안전 불감증

좋은 아침입니다.

1.
겨울에 비해서
여름철에 사고소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신문을 보니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배수로 보수작업을 하던 분들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서해안에서 가상 해병대 훈련을 하던 고교생들이
급류에 휩싸여서 다섯 명이 실종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고
인명구조원들도 충분히 배치하지 않았답니다.

조금만 조심하면
목숨을 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사고를 줄일 수 있는데
그만 방심하다가 큰 일을 치르곤 합니다.

안전불감증이 문제입니다.

2.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매사에 깨어있고
하나님께 늘 접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기도인 것을
지난 한달 동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홀로 기도의 자리로 나가고 계시는지요?
무릎을 꿇고
힘쓰고 애쓰면서 기도하시는지요?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슬픔과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꼭 기억하기 원합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 22:46)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세상의 안전 불감증만 문제가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인 것을
제자들을 통해서 배웁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감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많은 일들을 미리 준비하고
매사에 지혜롭게 대응하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해 지길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늘 필요합니다.
깨어서 기도함으로 주님과 연결되고
닥치는 모든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7.18 이-메일 목회서신)

“예수의 생명”

좋은 아침입니다.

1.
부활절을 지내고
강단을 장식했던 백합을
교회 앞 화단에 옮겨 심었습니다.

하얀 백합꽃이 졌지만
여전히 푸른 줄기를 가진 백합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요.

열심히 물을 주면서
백합줄기가 초록색을 유지하길 기대했지만
점점 누렇게 변하는 겁니다.
기운이 빠졌습니다.

그때 권사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백합은 뿌리식물이라서
또 다시 싹이 난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의외로 농사일에 밝지 않은 저로서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약 일주일전부터
백합 옆에 파란 새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손처럼 예쁜 새싹입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백합에도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온다는 것,
줄기는 노랗게 변해갔지만
뿌리에 생명이 깃들어 있어서
새 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2.
살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있습니다.
생명력입니다.

시든 것 같지만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합니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새싹이 돋아납니다.
역시 생명력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생명도 품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manifested in our bodies. (2Co 4:10 ESV)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그의 몸 안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믿습니다.

생명을 품고 있기에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의 생명을 품고 사는
주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을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7.11 이-메일 목회서신)

공평하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산호세에서 열린
목회자 회의를 다녀오는데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저의 운전 경력이 꽤 되지만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좀처럼 차선을 바꾸지 않습니다.

길이 너무 막혀서
차선변경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차선을 바꿀 때마다
옮겨 탄 차선이 더 막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 차선에 서 있어 보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옆에 차선이 잘 빠지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트럭을 기준으로 삼고
차선변경과 차선 준수 가운데
어떤 경우가 빠른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한 20분 갔는데
트럭과 차선을 이리 저리 바꿨던
저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비슷했습니다.

10여분 늦을 각오를 하고
그냥 제 차선을 지키면서 내려갔습니다.
일단 마음이 편했습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삼위일체 찬양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찬양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막힌 도로 때문에
30여분 실랑이를 한 후에
제 마음에 떠오른 찬양은
뇌성마비로 평생을 살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공평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다가도
주신 은혜를 세어보면(count)
받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내가 없는 것을 바라봐서
그렇지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어느 덧 올 해도 반년이 지나갑니다.
가는 세월 앞에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 돌아보면
인생길이 거의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인생 70이 훌쩍 넘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비슷해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송명희 시인처럼
주신 것을 갖고 찬양하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내게 주신 것,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통해서
공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7 이-메일 목회서신)

자신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는
인생길이 힘겨운 분들의
기도제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이민생활이고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네 삶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사기충천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금방 의기소침해져서
손을 늘어뜨리곤 합니다.

말 그대로 질그릇처럼
연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신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2.
오늘 새벽에
미가서를 읽으면서
노트해 놓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두세 번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시고,
말씀을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라.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my God will hear me. (Mic 7:7 ESV)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Rejoice not over me, O my enemy; when I fall, I shall rise; when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a light to me. (Mic 7:8 ESV)

우리의 구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행여나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을,
어두움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을 믿고
자신 있게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갑니다.
도와주옵소서! 힘을 주옵소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0 이-메일 목회서신)

새 날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새 날을 맞았습니다.
오늘 맞은 새날은
이 세상 누구도 먼저 가보지 않은
말 그대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날입니다.

새 날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어나면서 드리는 첫번째 기도는
“아버지! 오늘도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 오늘 하루도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합니다.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mission)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셋째는
“아버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가는 곳에서, 하는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고
어두움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넷째는
“아버지! 오늘도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제자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다섯째는
“아버지! 오늘 하루를 마쳤을 때 주님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시편기자는 낮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잠자리에서 생명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인자(사랑과 은혜)를 구하고
밤에는 하루 동안 경험한 주의 성실을 찬양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8)
By day the LORD commands his steadfast love, and at night his song is with me,
a prayer to the God of my life. (Psa 42:8 ESV)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
[It is good] to declare your steadfast love in the morning, and your faithfulness by night, (Psa 92:2 ESV)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 원합니다.
그 안에 행복이 있고, 감사가 있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실하게 임하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오늘(present)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present)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 가운데서
예수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고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13 이-메일 목회서신)

강권하시도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중남부 내륙에 토네이도가 연거푸 몰아 닥쳤습니다.

인디애나에 있을 때 토네이도가 스쳐 지난 곳을 목격했는데
마치 탱크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일정하게 길이 나있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 자랑을 해도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2.
토네이도하면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납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 도로시는
켄사스에 살고 있었는데
토네이도에 휩쓸려 올라가서 오즈에 떨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곳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실제로 토네이도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토네이도 영상을 검색하면
그 위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토네이도를 관찰하던 토네이도 추적자(Tornado Chaser) 일행이
지난 2일 토네이도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무너뜨리는 대단한 위력입니다.

이번 토네이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하루속히 재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늘 새벽에 고린도후서 5장을 읽으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2Co 5:14 ESV)

“강권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순에코”에는
“통제하다 (to control)”
“강력하게 이끌다(to compel)”
“(군인등을) 흩어지지 않게 꼭 붙잡다(to keep from dispersing)”등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새번역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4.
토네이도는 세상을 망가뜨립니다.
토네이도에 휩쓸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을 살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휘몰아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토네이도처럼 우리를 휘어잡았을 때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서게 될 것이고
그 어떤 세상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는
우리들의 삶을 흩으러 지지 않고
밀도 있게 모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참빛 식구들 신앙과 삶 속에 휘몰아치길 원합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서
의와 기쁨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6 이-메일 목회서신)

좋으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린도후서를 새벽에 읽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항구도시였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우상숭배는 물론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도시였습니다.
오죽하면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두고
“고린도사람스럽다(live like Corinthians)”라고 했을까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고린도 교회도 꽤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는데
성령의 은사를 갖고 서로 경쟁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도
차별과 시기, 다툼, 파벌과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린도전/후서를 읽다 보면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간곡하게 부탁하고
때로는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르고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가길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신앙은 자신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워가는 신앙은
언젠가 여지없이 무너지거나
공동체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늘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요즘 주일예배에서 배우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
고린도후서 1장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네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3)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 (9)

이 아침에
네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꼭 붙들고 기도합시다.
천천히 읽고 마음 깊이 묵상하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느낍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날마다 깊고 넓어지기 원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실제로 삶 속에서 체험하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30 이-메일 목회서신)

성령의 바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계절에 맞지 않게
꽤 쌀쌀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가려고 나서면
다시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추위(?)가 몸에 스밉니다.
(샌프란에 와서 몇 십 년 만에 겨울철 새벽기도회에 갈 때 내복을 입기 시작했음 ㅠㅠ)

날씨만 쌀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엊그제는 나뭇잎이 길가에 다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종종 가는 산책로에는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바람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2,
지난 주부터 주일예배에서
성령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퓨뉴마”는
모두 바람(wind)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숨결” 또는 “영”이라는 뜻도 갖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람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its sound,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Joh 3:8 ESV)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위력으로 바람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성령으로 났다는 확증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위력이 마치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성령의 바람이
우리 성도님들과 교회 안에
세차게 불어치길 원합니다.

위로의 바람,
평강의 바람,
기쁨의 바람,
소망의 바람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 그리고 신앙에 휘몰아치길 간절히 원합니다.

어디 우리들 마음과 교회뿐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생명을 주는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치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 되길 기도하면서
오늘 하루,
각자의 터전에서 부흥을 노래합시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이제 불어와
–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
–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에
참빛 교회와 온 세상에 불어 닥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23 이-메일 목회서신)

위로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사야서 40장은
영어 번역에서 알 수 있듯이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잃고, 집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들에게 남겨진 전부였지만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신앙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고
광야 40년을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see: who created these? He who brings out their host by number, calling them all by name, by the greatness of his might, and because he is strong in power not one is missing. (Isa 40:26 ESV)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사는 백성들이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But now thus says the LORD, he who created you, O Jacob, he who formed you,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ESV)

2.
어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만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도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구속(redemption)해 주실 줄 믿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새 힘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소속된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위로의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 각자를 어루만져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영을 부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위로가 필요한 주님의 백성들 위에
위로의 손길을 내려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16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