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죽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죽음입니다.

56년의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혹자는 그를 에디슨과 비교할 정도로

세상에 혁신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위대한 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그의 삶과 일을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이라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잡스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많은 유산과 감동을 세상과 사람들 마음 속에 남겨놓고

죽음의 길을 떠났습니다.

2.

2천년 전

서른 세 살의 젊은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주 받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유대 땅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적과 말씀 그리고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스승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it is finished.

물론 이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인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외롭게

십자가 위에서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춰 주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입었고

허물과 죄로부터 구원받았고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인류를 살린 것입니다.:

그런즉 한[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5:18)

Consequently, just as the result of one trespass was condemnation for all men, so also the result of one act of righteousness was justification that brings life for all men.

게다가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He is risen!).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죽으심과 부활!

유한한 인생길을 가는 우리들이

마음에 꼭 품고 있어야 할 믿음이요 확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

깊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0.6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도 이제 정확히 세달 남았네요.

종종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냥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낼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달 한 달이 모여서 한 해가 되는

시간개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에 대한 개념도 없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서

도리어 시간에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닌지

2.

시간뿐 아니라

우리들은 무엇엔가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스스로 홀로서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 5장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사도바울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가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겼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 잡습니다.

참 리얼한 번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휘어 잡힌 그리스도인!

얼마자 멋진 고백입니까?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휘어잡으려고 유혹하고 접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휘어 잡혀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이 아침에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 이길 원합니다.

9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하루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그 안에 흠뻑 빠져봅시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것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통제 받기를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하나님

참빛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휘감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9 메일 목회서신)

청춘 합창단

좋은 아침입니다.

1.

저희 집에 위성방송 안테나를 달고 나서는

한국 방송으로 채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방송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연세가 꽤 되신 분들이 모여서

합창 연습을 합니다.

자세히 보니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제외하면

합창 단원들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이십니다.

합창단 이름도 청춘 합창단입니다.

이 분들은 연습도 열심히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질문을 받으시면

자신들의 생각을 쭉풀어 놓으십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들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노래하시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꽤 되시는데

어르신들 합창단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2.

합창에는 특별한 묘미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운 음색에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합쳐진 화음!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각 파트가 어울려서 내는 화음!

합창대원의 숨소리까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안에 마음까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합창이 완성됩니다.

인생살이가 합창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도 인생의 화음이 깨집니다.

너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인생의 합창에 힘이 빠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합창으로 어우러질 때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엊그제 읽었던 전도서 말씀이 생각납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 4:9-12)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합해지고

마음이 합해져서 우리의 삶이

합창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온 세상에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참빛 교회가

한 마음으로 어우러진

신앙 공동체로 굳건히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2 메일 목회서신)

No! 변덕쟁이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보에 나오는 큐티 말씀이

마태복음의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은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는 말씀으로 쭉이어지겠지요.

복음서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절정(클라이맥스)으로 삼고

거꾸로 소급해 가면서 바둑 복기하듯이

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와 부활이 중요하지요.

2.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 제자들이 모두 흩어집니다.

흩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도망갔다고 원색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26:56)

Then all the disciples deserted him and fled.

예수님께서 잡히자

제자들이 예수님만 홀로 남겨놓고

모두 도망간 것입니다.

두려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잡히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다가 막상 잡히시니까 줄행랑을 친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엊그제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베드로에 이어서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똑같이 말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 이와 같이 말하니라.( 26:35)

But Peter declared,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 disciples said the same.

그러고 보니

제자들은

상황이 급변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뒤엎은 셈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만 남겨놓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바깥 뜰에 머물렀지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3.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면 한 순간에 마음을 바꿉니다.

예수님 혼자 내버려두고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신앙은 상록수처럼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또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등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외로이 계시는 순간들입니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행여나 예수님만 홀로 남겨두고

도망간 적은 없는지요?

신앙이 조변석개

변덕스러움의 극치를 달린 적은 없는지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신앙이

상황을 따라서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만 바라보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5 메일 목회서신)

고난이 주는 세가지 유익

좋은 아침입니다.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첫 번째 장부터 고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당시에 고린도라는 세속도시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잔잔한 파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아니 파도타기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앞 길이 깜깜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나오는

환난도 웬만한 쓰나미급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 속에서

세가지 유익이 들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훗날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둘째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크고 깊은 위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For just as the sufferings of Christ flow over into our lives, so also through Christ our comfort overflows.

고난이 주는 마지막 세번째 유익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앞에 밀려오는 어려움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것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회로 역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죽음의 순간에

생명을 주관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이쯤 되면

어떤 인생의 쓰나미가 밀려와도

능히 맞닥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힘이 나옵니다.

p.s.

9.11 1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고 어려운 기간을 견뎠던

많은 분들께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가 밀려 올 것입니다.

어려움을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8 메일 목회서신)

변화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 것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입니다.

신약 성경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육신의 질병이 고침 받고 건강해 지는 변화,

평생 구두쇠로 살았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변화

제자들은 세상 직업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인생의 변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떤 모양이든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화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증표(sign)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신앙에서 변화가는 중요합니다.

생각의 변화.

마음과 성품의 변화

삶의 변화,

인생을 내다보는 인생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전반적으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9월의 첫 번째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새달을 맞으면서

이번 한달 동안

예수님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임을 닮은

진정한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

하나님 아버지

또 한번 새 달을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에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날마다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 메일 목회서신)

땅에 묻고 다시 시작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의 삶이

어렸을 적 눈덩이 굴리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점점 커집니다.

커져서 좋지만

나중에는 눈덩이에 지저분한 물질들도 붙게 되고

눈덩이를 굴리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그때는 적당한 곳에

눈덩이를 놓고

새로운 눈덩이를 굴리곤 했습니다.

2.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21년간의 종살이를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하지만

딸 디나가 낯 모르는 지방에서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여동생이 치욕을 당한 것에 분노한 오빠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복수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야곱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고향을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돌아가서 예배자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앙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5:2)

Get rid of the foreign gods you have with you,

And purify yourselves and change your clothes.

하나님 말고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내적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겉모습을 치장하던 옷도 갈아입으라는 부탁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출발입니다.

야곱은 가족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등 장식품들을

자식들이 죄를 지은 그곳

세겜 땅에 묻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35:4)

So they gave Jacob all the foreign gods they had and the rings in their ears, and Jacob buried them under the oak at Shechem.

이제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과거를 땅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벧엘로 향하는 야곱 일가의 여정을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35:5)

Then they set out, and the terror of God fell upon the towns all around them so that no one pursued them.

3.

우리들도 종종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굴려왔던 눈덩이를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 동안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관련 없는 것들을

땅에 묻는 결단과 행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땅에 묻는 시도를 해 봅시다.

그리고 야곱처럼

우리의 인생길을 새롭게 발행(to set out)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옛 것을 땅에 묻고

새로운 길을 발행하는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친히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25 메일 목회서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매일 같이 배달되는

한국 신문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서유럽이 급격하게

탈기독교사회(post-Christian society)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지난 번 총격사건이 있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인구가 3%가 불과하고,

영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의 영국 국민들만이 주일날 교회에 간답니다.

어디에서 인용한 통계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납득이 가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2.

이렇게 기독교가 냉대받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시편 116편에서 설교했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끼는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간증이 필요합니다.

찬송가 204장의 고백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전도는 이제 설득력이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매번 강조하는 마태복음 5 16절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의 눈에 띨 만큼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보고,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예수로,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천년 전 로마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upside down)

초대교회의 부흥이

우리 시대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저절로 전도의 문이 열리겠지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동안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작은 예수로서

착하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서

저들이 있는 곳이 하늘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8 메일 목회서신)

“주께 붙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6월 첫날,

샌프란에 교회건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연치 않게(?) 시작된 교회 구입이

엊그제 대출승인이 나면서 마무리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참 묘합니다.

두 달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 건물을 달라고 기도하시던

팔순이 넘으신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흐뭇합니다.

현재는

우리 교회로서 조금 버거운

대출금 상환이지만

거기까지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그냥 감사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교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기도해 주신

참빛 교회 식구들과

목요서신을 함께 나누는 동역자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지난 주일 설교는

새로운 연속 설교의 첫 번째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인종, 지위, 출신을 초월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아름다운 교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았던 교회,

구제와 선교에 힘썼던 교회!

우리 참빛 교회도 안디옥 교회를 본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난 설교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나바가

안디옥 교인들에게 했던 권면을 기억하시는지요?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11:23)

Remain faithful to the Lord with steadfast purpose.

주께 붙어 있는 믿음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꼭 붙잡고 사는 신앙입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붙어 있듯이

우리들도 하나님 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안아주십니다.

또한 주께 붙어 있는 것에 대한

헬라어 본문의 뜻은 영어 번역에 더 가깝습니다.

프로스메노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거하다(stay with), 머물다(remain), 지속적으로 믿음생활을 하다(continue in faith)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매사에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평화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쉽게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 꼭 붙어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께 붙어 있는

참빛 교회 식구들을 꼭 안아주시고

하늘의 힘을 공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11 메일 목회서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좋은 아침입니다.

1.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침에는 만나로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동안은

1일분의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가져가야 합니다.

욕심껏 더 거두면

그 다음날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6:20).

대신에 안식일 날은 일하지 않았기에

이틀 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만나와 메추라기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욕심껏 더 거두었지만 결국 썩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지요.

다음 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굶어 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어김없이

아침 저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져 주심을

매일 매일 체험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의 기도 (특히, 간구-petition)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으로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과 모레 그리고 평생 동안

먹거리를 확보해 놓으려는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벗어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지난 번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 욕심이었군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군요

그러면서

제 기도생활과 신앙을 점검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꼭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시는

하늘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4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