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떤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걷기 운동의 효과를

34가지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면역 기능이 좋아진다. 좋은 콜레스테롤이 증가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감소한다. 비만이 개선된다. 각 장기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단기 기억력이 향상된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미국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힘차게 한 보 한 보 내딛는 걷기 운동이야말로

돈 한푼 들지 않는 보약인 셈입니다.

저도 일주일에

3번 이상 매번 3마일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내와 서로 채근하면서 걷기를 실천하려 애를 씁니다.

운동을 하면 확실히 심신이 활기차짐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걸읍시다.

걷기운동의 효과를 누려봅시다.

2.

구약성경에서 걷다는 동사는 할라크입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 무척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할라크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눈

시편 116 9절 말씀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시편기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호와 앞에서 걷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3.

우리들은 오늘 하루도 걸어야 합니다.

운동 삼아 걸어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걷는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고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보폭을 넓게 하고 힘차게 걸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에

하늘의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28 메일 목회서신)

공동체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에는

아름다운 말이 꽤 많이 있지요.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할 좋은 말이 바로
더불어또는 함께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두고

우리의 옛 자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2:5-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함께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들 역시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지체들과

더불어/함께 거해야 합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고린도전서 12장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어떤 은사를 가졌든지

어떤 지위를 갖고 있든지

모두 그리스도의 몸(body)을 이루는 지체들 (parts)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하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각각의 성도들이

다 필요하고 제 몫(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로 하면

한 식구”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들은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6-27)

손가락에 티눈만 생겨도

온 몸이 아픕니다.

그 티눈이 없어지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릅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 참빛 교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아픈 지체들, 고난 가운데 있는 지체들과 함께 아파해야 하고,

어려움의 짐을 서로 나눠져야 합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함께 한다는 표시로

그저 손을 꼭 잡아주고,

뒤에서 간절히 기도해 주면 됩니다.

또한

좋은 일이 생긴 식구들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교회 식구라도

남들이 자신보다 잘되면 시샘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사단이 주는 유혹일 것입니다.

또 우리 본성이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원합니다.

함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생각나거든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그들의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함으로 오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21 메일 목회서신)

신앙의 숙련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코스타에 갔었기에

목요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일주일 동안

젊은이들과 더불어 아주 좋은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1.

오늘 신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에 참전했던 페트리(32) 상사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사진과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탈레반이 던진 수류탄이 동료 병사들

옆에 떨어졌습니다.

페트리 상사는 자신의 부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류탄을 집어서 멀리 던지려다가

그만 수류탄이 그의 손에 터지면서

손에도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기사와 더불어 실린 사진에 보면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는 페트리 상사의 손은

인조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훈련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페트리 상사는

수류탄이 동료 병사들 옆에 떨어지자

그 동안 훈련한 대로

어쩌면 반사적으로 집어 던지려 했다는 것입니다.

훈련한 것이 몸에 베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2.

매사에 훈련이 중요합니다.

반복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지루해 보이고

당장에는 별로 유익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어려운 일이 갑자기 닥치거나

매우 중요한 순간에 그 위력이 나타납니다.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만으로는

신앙의 훈련이 되기 어렵습니다.

남은 6일 동안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신앙을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말씀 전체는

하늘 나라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따라 살아야 할 훈련 교재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훈련해야 할

세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말씀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가지 명령을 평소에

열심히 훈련해서 Master(숙달)해 놓는다면

우리들 인생 길에 위기가 닥치거나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맞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참빛 교회 식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7.14 메일 목회서신)

어린 왕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책꽂이에서

<어린 왕자>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작은 문고판인데

1982 6 7일 구내서점에서

샀다고 메모를 해 놓았네요.

먼지 알러지가 있는 저는

읽는 내내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옛날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줄을 쳐 놓은 것을 보면서

청년시절 제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고

이제 50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줄을 쳐야 할 구절들도 있었습니다.

2.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소설로 유명합니다.

주인공인 ” (저자인 생떽쥐뻬리의 가상인물)

어릴 적 화가가 되려는 꿈을 접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합니다.

그때 아주 작은 별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납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까지

여섯 개의 작은 별들을 지나왔습니다.

모두 한 사람씩 살고 있는 작은 별들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어린 왕자가 지나온 여섯 개의 별은

위선과 쾌락과 물질 등에 사로잡혀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로 지구에 도착해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임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은

누군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세상에 수 많은 같은 것들이 있지만

서로 길들여지고 관계를 맺게 되면

서로에게 아주 특별한 하나로 다가온답니다.

여우는 작별인사를 하는 어린 왕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잘 가라. 내 비밀을 일러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3.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삽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길들여져야 함을

어린 왕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어디 하나님과의 관계만 그렇겠습니까?

부부관계나 이웃과의 관계나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때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한 너와 나의 관계가 이뤄지고

거기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길들여지는 것은

서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순수한 믿음으로

길들여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과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로 길들여질 때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38-39)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길들여지게 하시고

그 어떤 세력도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을 항상 느끼며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30 메일 목회서신)

전능하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서머나 식구들께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하루를 시작하시길 오래 전부터 부탁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실천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루 하루 살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

인도하심 그리고 도우심이

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보에 있는 큐티는

시편 114편이었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시편기자는 마지막 8절에서

광야 40년을 회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셨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 114:8)

광야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단단한 돌이지만 그것이 변해서 샘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물은 대개 땅 밑에서 나오지

반석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반석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반석이 변해서 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인생길에서 갈증을 느끼고

기진맥진할 때가 있습니다.

바위로 꽉 막혀 있어서

그 어디에서도 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절박한 순간도 경험합니다.

그때도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내일 큐티인 시편 115

(114편과 115편은 짝입니다의 말씀처럼

우리의 도움이시요 방패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 115:11)

(You who fear him, trust in the Lord – he is their help and shield)

오늘 하루

반석이 변해서 물이 되게 하시고

차돌이 변해서 샘물이 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서머나 식구들께,

인생 길에서 힘들고 지친 모든 분들께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주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23 메일 목회서신)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좋은 아침입니다.

2주전 수요예배에서

고린도전서 7장를 공부하면서

“부르심(calling)”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7장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대한 교훈이었는데,

저는 그때 부르심을 결혼이라는 구체적인 이슈를 넘어서

우리들 인생 전체에 대입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스 기니는 그의 책 <소명 (The Call)>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명[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인생의 중심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길이다.

Answering the call is the way to find and fulfill the central purpose of your life.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했고

부르신 뜻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각자를 향한 부르심에 대해서

고민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젊을 수록

부르심에 대해서 더욱 기도하고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부르심!

저는 지금 이 순간

제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가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가

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다음 단계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해 질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거하게 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부르심을 두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르심을 두고

갈팡질팡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직장, 학업, 사업체가

부르신 곳인 줄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이미 예비하셨음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 7:24)

Brothers, each man, as responsible to God, should remain in the situation God called him to.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사시는

행복한 발걸음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부르심을 좇아 살기로 결심하는

서머나 식구들을 기억하시고

저들과 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16 이-메일 목회서신)

모세의 순종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목요일) 큐티 본문은

신명기 32:48-5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정하시다고 생각될 만큼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본문입니다.

40년 광야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모세는 4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약속의 땅을 바라만 볼 뿐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전에 므리바라는 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는 경솔한 행위를 한 것이

하나님께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 20:10-12).

52절 마지막 말씀을 듣는 모세의 심정은 어떻했을까요?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내일 큐티 본문인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장(34)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서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눈이 흐리지도 않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2.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순종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만 자기 마음대로 (어쩌면 불순종한 백성들을 보면서 홧김에)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 일인지 배웁니다.

하나님의 꼼꼼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도 역사하지만

우리의 잘못도 낱낱이 기억하심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금 추스르게 됩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가나안 땅을 바라만볼 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군소리 없이/토를 달지 않고 순종하는 모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세는 그 한번의 불순종보다

수백 번의 순종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모세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예전의 잘못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최종적으로 순종합니다.

정말로 위대한 순종입니다.

3.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심코 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순종을 저지르곤 합니다.

때로는 그 동안 행했던 업적들을 내세우면서

으스대면서

하나님 앞에 나갈 때도 있습니다.

조금만 억울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고 금방 시험에 빠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린 모세의 순종

그 멋지고 위대한 신앙을 본받기 원합니다.

순종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오늘 하루

순종(obedience)”라는 말을 깊이 묵상합시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심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서머나 식구들께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9 메일 목회서신)

“희망은 깨어있네”

좋은 아침입니다.

1.

예년 같으면

정말 날씨가 좋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파란 하늘에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지역 날씨가

비가 내리고

아침 저녁에는 지나치게 서늘합니다.

하긴 보스턴에 토네이도가 왔다네요.

토네이도는 중서부에서 발생하고

동부에서는 여름에 허리케인이 와도

토네이도는 거의 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이래 저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생기는 듯 합니다.

주일날까지 비가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여름철(?) 감기도 유행이랍니다.

건강 조심하셔야겠습니다.

2.

몇 년째 암투병을 하고 계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를 읽었습니다.

육신의 아픔 가운데

쓰신 시()들이어서인지

한 절 한 절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몸과 마음에 아픔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

그 아픔이 우리 안에서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이해인 시인의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연약함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나는 늘 작아서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면서도 깨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6월의 첫 번째 주일을 맞는

서머나 식구들께

희망의 빛을 비춰주시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6.2 메일 목회서신)

온전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고민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온전함입니다.

온전한교회, “온전한성도,

온전한신앙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지냅니다.

우리는 자칫 온전함이라는 말을

우리 자신의 외적인 신앙행위나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칭찬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온전함

학교에서 받는 A학점처럼

겉으로 들어나는 업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A학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온전함이라는 말을 두고

우리들끼리 키재기를 하고

서로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전함이 이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2.

온전하다는 말은

사람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겸손을 뜻할 것입니다.

복음성가의 가사 그대로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

곧 온전함일 것입니다.

일종의 역설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온전함이나

겉으로 들어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온전함은

어제 배운 고린도전서 말씀대로

우리 안에 있는 묵은 누룩을 없애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옷 입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5:8)

묵은 누룩으로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까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한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온전한 신앙일 것입니다.

3.

그러고 보니

온전함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부족함을 발견해가는 과정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인정하는 것이

곧 온전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부족을 채우는 것이

온전함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나오고

섬김이 나오고

진실된(거짓 없는)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3)

오늘 하루

저와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신앙의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서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온전한 신앙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의 부족함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5.26 메일 목회서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 동네에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세가 89세가 되었으니

노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이름이 캠핑이니 약간 정신 줄이 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지역 한인 신문에까지 전면광고가 나올 정도이고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내일 모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rapture)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롤드 캠핑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오클랜드에 있는

패밀리 라디오 설립자인데

노아의 홍수로부터 날짜를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5 21일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예전에도 휴거를 주장했었는데

자신의 주장이 빗나가자

이번에 다시 개정판을 내놓은 셈입니다.

휴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있기에

그 날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캠핑과 같은 종말론자들의 주장에 맞춰서

예수님께서 오실 것 같지 않기에

저는 지금 열심히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

휴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을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과 예수님의 재림이 결합해서

복잡한 이론들이 발전되었습니다.

이번에 오클랜드에서 시작된

해롤드 캠핑의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휴거하고, 앞으로 5달 동안 환난이 온 후에

10 21일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캠핑의 주장은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판단하는

교만이고 월권입니다.

물론

성경은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캠핑과 같은 사람들은 물론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할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죄악된 세상이 사라지고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의 징조에 대해서

마가복음 13장과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셨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마지막 때를 가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모습으로 보아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캠핑과 같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그 날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25) 부탁하셨듯이

언제든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정결한 마음,

그 동안 나누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나누고 용서하는 마음,

아침안개처럼 없어질 세상 것에 미련을 두었다면, 이제 영원한 것을 쫓는 마음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생에/세상에 종말이 있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삶을 맞이하고, 준비하고, 정돈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캠핑과 같은 종말론자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누구에게나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오신다면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말씀처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흔쾌히 기쁨으로 맞을 수 있을런지요?

오늘 하루

우리 각자의 신앙과 삶이

과연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손색이 없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5.19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