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을 갖고 시작했던 2014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인생 통장에 넣어주신 365일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한 해를 모두 살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들인데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니 크고 작은 일들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좋은 일만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장미빛 융단이 깔린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들은 금방 지나가고 힘겨운 가시밭길이 눈 앞에 닥쳤습니다. 가시밭길을 헤쳐 나오다 보니 손과 발은 물론 이곳 저곳에 가시에 찔린 상처가 눈에 띱니다. 영광의 상처이니 가볍게 넘기라고 남들은 훈수를 두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쓰리고 아픈 생채기들입니다.
우리들 인생길이 가시밭길인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한 아담과 이브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면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8)고 예고하셨습니다. 가시덤불은 물론 엉겅퀴에도 가시가 달려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생존력이 강해서 주변의 식물들을 압도하면서 퍼져나갑니다.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끊임없이 내고 있으니, 우리네 인생살이가 가시밭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디 개인의 인생사만 그렇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얽어 매여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전쟁, 폭력, 테러, 사기 그리고 차별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올바르게 세우는 일보다 혼란과 죽음으로 치닫게 하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단순히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책임할 만큼 이 세상은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둘러싸여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가시에 찔린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가나안 땅에 있는 부족들을 살려두었습니다. 훗날 이들이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근사하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기대하셨는데 그들이 남겨놓은 죄악들에 찔리고 찍히면서 만신창이로 변해갑니다.
급기야 외국의 공격까지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에벤에셀이라는 곳에 진을 쳤지만 강력한 군대 블레셋에 패하고 하나님의 임재상징이었던 언약궤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소집합니다. 금식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 블레셋 이 또 다시 쳐들어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블레셋에 대항해서 싸우십니다. 엄청난 천둥번개를 통해서 블레셋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시고 그 틈을 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거둡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사무엘은 돌을 하나 세워놓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선언합니다. 그곳 이름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고 짓습니다. 블레셋에 패해서 언약궤를 빼앗긴 곳도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치욕과 실패의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찔려서 만신창이가 된 곳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 이름을 부르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사무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에 승리를 거둔 장소를 또 다시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 패배를 넘은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들의 패배를 하나님의 도움 속으로 편입시키고 영원히 기념하고 싶은 사무엘의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에벤에셀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찔려서 상처가 난 곳도 에벤에셀이고,절망과 낙심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던 곳도 에벤에셀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도움의 돌을 하나 세워놓고 한 해를 마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인미답의 새해를 맞습니다.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놓고 새해를 기다리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입니다.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삶의 고비마다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차분히 그리고 담대히 2015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2014년 12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