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박넝쿨

구약성경 가운데서 요나서는 흥미로우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요나서의 주제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파격적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들만 사랑하고 자신들만 선택 받은 백성이어야 하는데, 니느웨라는 이방나라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죄악이 번성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세속도시였지요.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고, 요나는 그 책임을 지고 바닷물에 던져집니다. 그렇지만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보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요나2장)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건짐을 받은 요나는 하나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예언합니다. 요나의 예언을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일제히 베옷을 입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구원하시기로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요나는 이것이 몹시 못마땅하였습니다. 이방사람들은 무조건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신앙입니다.자신만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교만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하여 화를 냅니다. 그리고 동구밖에 나가서 씩씩거리며 초막을 짓고 니느웨가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놀부 심보입니다.

한 낮이 되자 요나의 머리 위에 햇볕이 내려 쪼였습니다. 그때에 박 넝쿨 하나가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요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합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벌레 한 마리가 나와서 박 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햇볕은 쪼이고 뜨거운 바람은 불어오고 다시 죽을 맛입니다. 요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라면서 다시 불평하고 분노합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요나4:10-11) 요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오픈 엔드입니다.

요나의 박 넝쿨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일을 판단하고 이웃을 정죄합니다. 자신의 전통이나 상식이 하나님의 생각인 듯 이웃에게 강요합니다. 또한 참 간사합니다. 일이 조금 잘 되면 하나님께 “감사”를 연발하고, 조그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금방 불평하고 분노합니다. 박 넝쿨에 연연하는 신앙입니다.

햇볕을 가려주는 박 넝쿨을 바라보지 말고 박 넝쿨을 자라게도 하시고 사라지게도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모든 사람들을 편견 없이 마음에 품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요즘 세상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듯 넓은 마음을 요청하는데,우리들은 자꾸만 쪼그라드는 듯해서 걱정입니다.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06.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