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 : 선택받은 자들

8월이 되면 저희 가족이 샌프란시스코에 온지 정확히 10년이 됩니다. 엊그제 와서 성도님들께 인사드리고 새벽예배와 수요예배부터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교회 이름도 바뀌었고, 현재 있는 건물로 이사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들고 계심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3년 전부터 교회가 많이 젊어져서 저희가 기도한 대로 어르신들과 젊은이들 간에 조화도 이루었습니다.

제가 더욱 훌륭하게 목회를 하면 좋을 텐데 늘 부족함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참빛 식구들께서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 해 주셔서 10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하늘나라에 가신 조기순 전도사님과 임경희권사님을 생각하면 늘 그립고 허전합니다. 제가 올 때는 한참이셨는데 10년이 지나면서 70대는 물론 80대 이상으로 접어드신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마음이 애잔해 지고 건강하시길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이맘때가 되면 저는 늘 시카고 코스타에 갑니다. 올해로 열두 번째 가는 것이니 우리 교회에 오기 전부터 참석한 셈입니다. 동시에 여선교회에서는 제 생일을 꼭 챙겨주셨습니다. 어르신들이 계신데 젊은 목사가 생일을 대접받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올 해는 슬쩍 넘어가길 바랐는데 또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어떤 일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거나 마다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송구함과 감사함을 함께 갖고 성도님들과 함께 생일을 지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선택받은 목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 해 주신 어르신들과 모든 참빛 식구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선택받은 자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해서 교회에 나온 것 같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알려줍니다. 그것도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선택을 계획해 놓으셨다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치밀하신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에서 나누는 덕목들이 물질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에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 그리고 즐거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들이 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들과 상관이 없거나,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어서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멈춰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것들은 말 그대로 땅의 것들이고 죽음 또는 세상의 종말과 더불어 사라질 무지개와 같은 허상들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과 참된 진리를 누리는 것이 최고의 복임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하늘의 신령한 복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 앞에 감격하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도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함께 그 길로 나갑시다.-河-

에베소서 (3) :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는 가치관도 자연스레 바뀝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맞게 언행심사를 조율하니 신앙은 물론 삶이 정돈되고 어느 곳에서 있든지 예수님 안에서 신실한 자로 살아갑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무엇보다 먼저“그리스도인”으로 답하길 원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주님의 백성을 뜻하는 성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라는 구체적인 덕목들을 갖고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부탁드렸습니다.“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고백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처럼 우리들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방식입니다.

이제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에베소서 1장 3절을 통해서“나는 누구인가”에 또 다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3절은 “찬송하리로다”는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찬송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절 한 구절에 “축복”과 관련된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찬송하리로다”에서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송축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도 축복이, “주셨다”는 우리 말 표현도 축복하셨다가 됩니다. 따라서 3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송축합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을 갖고 축복해 주십니다.”

기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십니다. 그것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으로 축복하십니다. 하늘에 속한 것은 세상의 것과 비교됩니다. 세상의 복이 언젠가는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이라면, 하늘에 속한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세상의 복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것이라면, 하늘에 속한 복은 하나님과 우리들 개인 속에서 직접 경험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세상의 복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하늘의 복은 물질을 넘어서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영적인 복을 갖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척 사랑하셔서 넘치는 복을 충분히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눈치 채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의 복에 연연합니다. 물질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이고 영원한 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 세상에서 더 많이 갖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알려 줍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의 삶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은혜와 평강을 누림과 동시에 하늘에 신령한 복을 사모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없이 축복하십니다. 그 축복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기 원합니다.-河-

에베소서 (2) :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들

요즘 새벽기도회은 날이 일찍 밝아서 새벽기도회가 아니라 아침기도회라고 불러야 할 정도입니다.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이 겨울철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도, 교회에 도착하면 화단의 식물들이 맞아주는 것도 이미 하루를 시작한 느낌입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이즈음이 새벽기도회를 하기에 참 좋은 시절인 것 같습니다.

교회 가까이 계시는 성도님들께 새벽기도회를 권합니다. 구약의 전도서 기자가 알려주듯이 무슨 일이든지 때가 있습니다. 일 년 중에 기도할 때를 찾는다면 요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는 찬양으로, 힘이 들 때는 간구로, 마음이 복잡할 때는 침묵으로, 다급할 때는 외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도님들 각자의 인생이 세워지고 주님의 교회도 기도로 세워짐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부터 에베소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의 첫 여섯 구절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자기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훨씬 쉽게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어떤 일을 착수하면 갈팡질팡하거나 포기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발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이 꼭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또한 지난주에는 성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라고 우리들의 정체성을 확인했습니다. 성도라는 말이 얼마나 귀하고 높은 말인지 깨달았습니다. 신실한 자로 사는 것은 성도라면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에베소서 1장 2절이 알려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들”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세상 사람들의 인사법이었습니다. “신의 가호를 빈다”는 말과 비슷하게 사람들은 각 사람들이 믿는 신이 은혜와 평강을 내려주길 빌어주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당시의 인사법을 도입해서 에베소 교회에 인사합니다. 그런데 앞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이것이 새롭게 정의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니 아버지되신 하나님과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임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은혜와 평강은 세상의 것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부터 임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우리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시는 분인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신실한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와 평강은 삼위 하나님의 합력을 통해서 임하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우리 삶에 임하길 간절히 원합니다.-河-

더 귀한 가치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의 실종입니다.

상대주의가 등장하면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가치는 무너졌고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질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예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미들이나 가치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고
물질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을 틈이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상대화되어서 어떤 생각도 다 맞을 수 있다고 보거나
물질화되면서 이 세상의 복을 쫓는 것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2.
그러던 차에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의 처음 여섯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금 돌아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알려주는 말씀은
지나칠 정도로 절대적이고 영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삼위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고백이
에베소서 1장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두고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자라고 깨우쳐줍니다.

은혜와 평강을 입은 성도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자들입니다.
미리 예정하셔서
창세부터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나 혜택을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성경이 말하는 세상과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 미국에 살면서
새로운 의미의 박해(persecution)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는 사람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조롱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재차 질문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하늘의 신령한 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가치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요일 잠언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와 진리”를 따를 때,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멋진 그리스도인이라는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서로 격려하면서
이 길로 나갑시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3-4)
Let not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forsake you; bind them around your neck; write them on the tablet of your heart. So you will find favor and good success in the sight of God and man.  (Pro 3:3-4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근사하게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9 이-메일 목회서신)

메뉴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음식점에 가면
메뉴판에 칼로리 표시를 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무심코
주문해서 먹던 것들에
천 이상의 칼로리 표시가 되어 있으면
군침은 돌지만 웬만해서는 쉽게 주문하지 못하고
낮은 칼로리의 메뉴를 찾게 됩니다.

맥도날드에서 아이들에게 파는
해피 밀 메뉴판에 소다(soda)를 빼버렸더니
소다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줄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후렌치 후라이즈(French fries)인데
맥도날드의 경우 샐러드 메뉴를 제시했지만
2-3% 세일에 그치고
여전히 후라이즈가 인기를 끌고 있답니다.

사실 맥도날드나 인앤아웃에
후렌치 후라이즈가 없다면
몸에 안 좋은 튀김음식인 줄 알면서도
왠지 섭섭하고 허전할 것입니다.

2.
메뉴판에 칼로리를 제시하고
인기 있는 메뉴는 올려놓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영업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 시간 동안
에베소 1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즉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요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을 규정해 주는
메뉴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사니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길에 동참하시길
세상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여나
우리들 메뉴판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나
세상에 손해를 끼치는 것들이 있다면 얼른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는 것들만 올려놓아야겠습니다.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길이
얼마나 고귀하고, 근사하고,
넓고, 높은 지 세상에 보여주기 원합니다.

믿음의 길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여정이 참되고 선하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올려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1:11, 새번역)
Having been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which comes through Jesus Christ,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Phi 1:11 NAU)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자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25 이-메일 목회서신)

오바댜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열왕기상 18장을 읽었습니다.

아합와 그의 아내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하고
온 나라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 숭배로 몰아넣은 왕입니다.

그때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합과 엘리야외에
<오바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예언자 오바댜와 동명이인입니다.

오바댜는
아합의 궁정에서 왕과 왕비에 이어서
세 번째 서열에 들었던 고위관리였습니다.

아합처럼 못된 왕의 신하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은
오바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
/Now Obadiah feared the LORD greatly (왕상18:3)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최고로 모셨고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아합왕의 신하가 된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서로 상극인데
오바댜는 동과 서가 만나듯이 두 가지 일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오바댜는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오십 명씩 나눠서 백 명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알았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바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2.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오바댜의 신앙과 삶이 요청됩니다.

세상을 등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함몰되어도 안됩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능력을 갖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고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을 견고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오바댜 역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갈등했고, 지칠 때도 많았고
무엇보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기도했겠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의 길을 걷기로
재차 다짐했을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살아가시는
삶의 자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바댜의 신앙과 삶을 묵상하고 닮기 원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믿음, 지혜, 용기와 능력을 하나님께 구하면서
세상 속에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5-17)
 I do not ask that you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keep them from the evil one.  They are not of the world, just as I am not of the world.  Sanctify them in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Joh 17:15-17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세상 속에서 지켜주시고
오바댜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18 이-메일 목회서신)

챔피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지난 목요일부터 시작된
NBA 챔피언십으로 동네가 떠들썩 합니다.
거리에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깃발을 단 자동차들과
노란 색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주목 받는 선수는
단연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와
워리어스의 스티븐 커리입니다.

르브론 제임스는 클리블랜드가 있는 오하이오 출신입니다.
2010년부터 4년 동안 마이애미서 뛰다가
작년에 다시 고향 팀으로 복귀했습니다.

농구를 위해서 태어난 선수라고 할 정도로
체격이나 기술이, 스피드까지
마이클 조단과 견줄만한 최고의 선수입니다.

그런 제임스도 불후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6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적 축구 코치의 집에 들어가서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농구선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코치가 그에게 농구를 권했고
2003년에 NBA에 들어와서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선수입니다.

워리어스의 스티븐 커리는
체격은 작지만 하프라인에서 던져도 골이 들어갈 정도의 슛도사입니다.
게다가 매우 빠른 동작으로 슛을 쏘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올해 NBA정규리그 MVP답습니다.

커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까지 참석했답니다.
중학교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자신이 농구 코트에서 경기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부상을 당해서 경기에 나갈 수 없던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견뎠고
그 기간 동안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간증합니다.

또한
이번 시리즈에서 유독 눈에 띠는
한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매튜 델라베도바(8번)입니다.
이 선수는 호주에서 왔습니다.
NBA 선수가 되는 첫 번째 관문인 드래프트에 들지 못해서
클리블랜드에서 여름리그를 뛰면서 NBA에 들어오게 된 무명의 선수입니다.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기회를 잡아서 세 경기를 소화했는데
그의 악착 같은 수비와 몸을 사리지 않는 열심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어떤 때는 코트에 이 선수만 보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움직입니다.
기술은 조금 부족해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3.
챔피언십 경기를 보고 있으면
경기도 흥미롭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는 선수들의 숨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선수 한 선수마다 각자의 스토리가 있을 겁니다.
NBA 파이널에 오른 팀에서 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이 선수들은 농구에 인생을 건 사람들일 겁니다.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얼마나 반복해서 훈련했으면
그 멀리서 던져도 골이 되고
넘어지면서 던져도 공이 림으로 빨려 들어갈까요!

올해 NBA 파이널에서 어느 팀이 우승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든 선수들이 다 챔피언임에 틀림없습니다.

땀과 훈련, 열심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끈기!
우리들의 신앙과 인생길에도 요청되는 덕목들입니다.

오늘 하루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챔피언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히12:1, 현대인의 성경)
let us also lay aside every encumbrance and the sin which so easily entangles us,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Heb 12:1 NAU)

하나님 아버지,
주님 보여주시는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11 이-메일 목회서신)

어지러운 세상 중에

요즘처럼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펼치기가 불안하던 때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매일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태평양 너머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6월 내내 메르스라는 전염병으로 온 나라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 불리는데 중동을 빼고 코리아를 넣어서“코르스”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본국지 일면 기사는 거의 한달 째 메르스에 대한 기사입니다. 수천 명이 격리 수용되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2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초기대응만 잘 했으면 전염병의 확산이 그리 크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 온 환자들을 소홀히 관리하고, 정부가 전염병을 확산시킨 병원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한 여학생의 명문대 합격이 가짜였다는 해프닝도 일어났습니다. 최고의 명문 대학을 반반씩 다닐 수 있다는 인터뷰 자체에 의심이 생겼지만, 동부 명문대에서 논문을 발표했고 페이스북 창업자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학생이 꾸민 자작극이었습니다. 가짜 합격 소동을 벌인 학생을 보면서 명문대병과 출세지향에 빠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듯 했습니다. 여학생이 지목한 학교들이 동부와 서부의 최고 명문대학들이 아니었다면 언론은 물론 국민들이 그렇게까지 수선을 피웠을까 싶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주에는 베스트셀러 작가 한 분의 표절시비가 일었습니다. 영어로 번역되고 뉴욕 타임즈까지 극찬했던<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은 물론 그 동안 발표한 작품들이 일본 소설을 표절했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갖고 뉴스를 검색해 보니 본인은 대답을 유보하고 있지만 표절로 의심받아 마땅할 정도로 동일한 표현들이 겹쳐서 나타납니다. 하긴 대형교회 목사도 학위 논문을 표절하고 버젓이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와 개인의 도덕수준이 얼마나 낮은 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전 대학에 다닐 때는 리포트를 베껴서 숙제를 제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대단한 표절을 한 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과목 교수님들은 과제물을 대충 읽고 점수를 주시는 듯 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 한 분은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일일이 읽고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베낀 과제물이 발견되면 당사자 모두에게 F학점을 주셨습니다. 그때는 그 교수님이 유별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표절이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표절은 남의 생각을 몰래 갖다가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도둑질입니다.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발표했으니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구약 성경의 십계명 가운데 두 개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전염병 공포로부터 유명 작가의 표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꽤 어지럽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고 우리 같은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의 근원에 정직함의 실종이 자라잡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면 표절은 물론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들에 질서가 잡힐 것 같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할 상식도 사라졌습니다. 합격을 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나 남의 글을 표절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들입니다.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늦장 대응을 한 것도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정직하고 상식에 맞게 행동한다면 막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잣대를 세워서 상식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지러운 세상에 질서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부터 정직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015년 6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열왕기상 8장에 있는
솔로몬 왕의 성전 봉헌 기도와
백성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백성들이 힘이 들거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거나
나라에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부탁합니다.

전쟁에 나갔거나
원수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서
성전에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있는 곳에서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솔로몬이 기도하는 동안
백성들이 성전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이
열왕기상 8장 54-61에 나옵니다.

백성들을 향한 솔로몬의 축복과 부탁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하나님의 선한 약속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뤄주시길 (56절)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떠나지 마시고, 버리지 마시길 (57절)
– 백성들이 마음을 주께로 향해서 그 길로 행하길 (58절)
–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보아 주시길 (59절)
–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를 (60절)

말씀을 갖고
새벽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을 축복하며
하나님 바라보고 말씀대로 사시길 부탁 드렸습니다.

새벽 기도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예배와 가정과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위에
다섯 가지 축복과 부탁이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일상이 바쁘고 때로는 힘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보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왕상 8:59-60)
Let these words of mine, with which I have pleaded before the LORD, be near to the LORD our God day and night, and may he maintain the cause of his servant and the cause of his people Israel, as each day requires, that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may know that the LORD is God; there is no other. (1Ki 8:59-60 ESV)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사랑하시는 참빛 식구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시고
날마다 저희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4 이-메일 목회서신)

에베소서 (1) : 성도들

오늘부터 주일 설교에서는 에베소서 말씀을 살펴보게 됩니다. 우선 예베소서의 첫 여섯 구절을 한 절씩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3년 동안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초대 교회들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일찍 세워졌고 본이 되는 교회로 자라갔습니다. 물론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에베소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만 그래도 에베소 교회는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의 올바른 모습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그런 점에서 에베소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은 물론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기초를 단단히 놓아주는 말씀입니다.

<신앙 터잡기>에서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왔다고 생각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다고 깨우쳐줍니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입니다. 그러니 성도인 우리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교회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성도를 saints라고 합니다. 대문자로 표시하면“성자(the Saint)”가 되니 성도는 곧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반 성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성도라는 말을 교회에서 직분을 갖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용어로 쓰고 있지만 성도보다 귀한 명칭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교회의 모든 직분이 성도라는 거룩한 신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로 불리어지는 것을 최고의 자랑과 권위로 여겨야 합니다.

또한 성도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라고 했습니다. 신실함은 성도의 표지(mark)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신실함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곧 신실함입니다. 삶이 예배가 될 때 성도의 신실함이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부름 받은 성도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성도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잠언은 하나님 백성인 성도가 마땅히 살아야 할 세상 속에서의 지혜를 알려줍니다. 잠언의 가르침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선포한 후에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이번 주부터 수요예배에서 잠언을 한 장씩 공부하게 되는데, 오늘 우리가 살펴본 성도의 지위와 사명이 잠언 말씀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적용되길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