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시작하기 전, 직장에 다닐 때 목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광화문에 있는 새문안 교회 직장인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동익 목사님께서 삶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생수와 같은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127편을 설교하시면서 말씀하셨던 경험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설교시간에 앞줄에 앉아서 매번 졸고 계시는 분이 있었답니다. 실제로 설교하다 보면 교인들의 부스럭거리는 동작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더욱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교인들이 눈에 띄면 신경이 쓰이게 마련입니다. 경험이 많으셨던 김 목사님께도 예외가 아니었나 봅니다. 나중에 심방을 가서 조심스레 여쭤보셨답니다. 예배시간마다 졸던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님,정말 뭐라고 말씀 드리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는데요, 이상하게 예배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네요. 죄송합니다.” 그 다음부터 김목사님께서는 교인들 가운데 조는 분들이 눈에 띄면, “음, 하나님께서 불면증 환자를 치료하고 계시는 중이군”이라고 여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설교를 하셨답니다.
웬만큼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면 시편127편 2절의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유효 적절하게 적용하셨을 것입니다. 특별히, 잠이 많으신 잠꾸러기 신앙인들에게는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행여나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으시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남달리 은혜를 받으셨을 겁니다. 저도 할 일이 태산인데 자꾸만 잠이 몰려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무척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으려 일손을 놓고 슬며시 자리에 눕곤 합니다.
우리들은 보통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낸답니다. 수면시간이 생각보다 많게 느껴지시지요? 그래서인지 소위 처세를 강조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한 목소리로 잠을 줄일 것을 권면합니다. 잠꾸러기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몰아붙입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은 게으름의 표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신답니다. 성공을 포기하라는 말씀인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베어있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시편 말씀 속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헛되고 헛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참된 평안(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신다는 뜻이지요. 두 번째로,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문맥에 맞춰서 “잠을 자는 동안”이라고 부사절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표준 새번역은 “그러므로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집을 세워주시고, 밤낮으로 우리의 인생길을 파수꾼처럼 지켜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고 시편기자가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 일은 태산인데 잠이 쏟아지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마시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지요. 수면보다 더 좋은 휴식이 없답니다. 거친 인생길 가운데 근심 걱정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세우지 않으시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고 파수꾼의 경성함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편안한 잠을 청해보시지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답니다. 우리들이 잠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답니다.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06.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