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다퉜습니다. 에서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둘째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장자권에 대한 그의 집념은 대단했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더니,훗날 아버지 이삭이 노년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형 에서의 복수심에 위협을 느낀 야곱은 외삼촌이 있는 메소포타미아로 피신을 갑니다. 외삼촌 집에서 야곱의 삶은 그의 말대로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낸” 20여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기까지 14년이 흘렀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기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야곱은 온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이 눈 앞에 보이는 얍복이라는 강가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던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외삼촌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날이 밝으면 형 에서와 맞닥뜨려야 합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입니다.
칠흑 같은 밤입니다. 가족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네 보내고 야곱은 홀로 강가에 남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야곱에게 와서 싸움을 걸어옵니다. 야곱은 날이 새도록 그와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야곱이 씨름하는 장면을 두 인물 모두 “그(he)”라는 3인칭 주어를 사용해서 관람석에서 씨름경기를 관전하듯이 리얼하게 묘사했습니다. 비록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야곱은 끝까지 견딥니다. 마침내 그의 이름이 하나님과 사람을 이겼다는 이스라엘로 바뀌게 됩니다. 그가 원하던 축복도 받았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이 절뚝거리면서 다시 길을 떠날 때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췄습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우리들 역시 인생의 얍복나루에 홀로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홀로 남았더니”라는 성경구절을 쉽게 읽고 넘겨서는 안됩니다. 한 밤중에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있는 야곱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면서 한참 동안 이 구절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묵상의 마지막에는 얍복강가의 야곱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내야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길 한 운데 홀로 남아있는 외롭고 절박한 상황 – 인생의 순례길 속에서 우리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들이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얍복나루까지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길 때까지 우리와 씨름해 주시고 결국에는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얍복나루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졌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이름이 바뀌고 환도뼈가 부러질 때까지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때 밤은 지나가고 아침 햇살이 우리의 인생길을 환히 비춰줄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길은 언제나 해피엔딩입니다.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07.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