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이야기를 넘어서

* 감리교 교단지인 기독교타임즈에서 요코이야기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보냈던 원고입니다. 같은 소재로 한국일보에도 칼럼을 썼습니다.

일제말기 일본이 패망할 때, 세 모녀가 한국을 탈출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소설형식으로 기록한 “요코 이야기” (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 숲 저 멀리)가 국내는 물론 이곳 한인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에 나남(청진)에 살던 열 한 살의 여자 주인공이자 저자인 요코는 언니와 어머니와 함께 서울과 부산을 거쳐서 일본으로 귀향하게 된다. 요코 이야기는 그 여정에서 자신들이 한국인들로부터 받았거나 목격한 폭행, 죽음의 위협, 강간의 순간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당시에 창설되지 않았던 인민군에 대한 기록 등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제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강점했던 가해자가 소설 속에서는 피해자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요코 이야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미국서점에 들렀다.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이번에 처음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던 보스턴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도시이기에 서점에 책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점에 들어갔는데, 서점 직원이 영문판 요코 이야기를 손수 찾아서 가져다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왠지 서점 직원의 친절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책을 사서 읽으려니 서두에 있는 지도에 눈이 먼저 갔다.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라고 표기해 놓은 것부터 눈에 거슬렸다.

책은 총 11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처음 여섯 장이 이들 세 모녀와 뒤에 남겨진 아들이 한국을 떠나는 과정을, 나머지 다섯 장은 일본에 도착한 후의 삶을 기록했다. 소설의 반전은 모녀가 겪은 한국에서의 어려움보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죽는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 이후로 두 자매가 힘겹게 바느질 등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오빠와 두 자매가 재회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이 난다. 뒤에 쳐졌던 오빠는 한국인으로 위장해서 한반도를 떠난다. 오빠를 도운 한국 농부와 그 가족의 이름이 자세히 기록된 것이 새삼 눈길을 끈다. 아무리 개인적인 경험이라지만, 소설 속에는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당한 수모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그랬듯이 내용과 구성이 사실적이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할 가능성 또한 컸다.

미국에서 요코 이야기는 우리식으로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영어시간(미국의 국어시간)에 읽어야 하는 독서목록에 들어있다. 처음에 문제가 제기된 동부의 보스턴과 뉴욕의 많은 중학교들이 요코 이야기를 독서목록에 포함해서 그곳의 한인단체들이 항의하는 일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월20일자 한국일보 미주 판에서는 LA의 한 중학교에서도 요코 이야기가 독서목록에 포함되어서 한인 학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학교들은 교사나 학교 당국 또는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독서목록을 결정하기 때문에 미국 전 지역의 중학생들이 요코 이야기를 읽는 것은 아니다.

일부지역이라고 해도 뉴욕이나 보스턴과 같은 대도시의 학생들이 요코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감수성이 강한 10대 초반의 미국 청소년들이 요코 이야기를 읽고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핍박한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을까? 우리 2세들이 수업시간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곤욕스럽지는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다. 여기에 일본을 은근히 선호하는 미국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73세가 된 저자 요코 왓킨슨이 보스턴 근교의 학교들을 순회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니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탈출기처럼 자신의 한반도 탈출여정을 소개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인단체들과 학부모들의 항의는 의미가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저자 요코 왓킷슨의 완강한 변명을 뭐라고 할 수 없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논란들은 자칫 단순히 민족주의적 분노에 그칠 수도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은 요코 이야기를 독서 목록에 넣은 학교의 한인 학부모들이나 인근의 한인단체들이 해당학교와 교사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정은 물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 역사를 올바로 가르치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으면 한다. 나는 요코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서,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미국의 대학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과목과 전공들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 엘리 위젤이라는 작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문고판 100여 쪽에 불과한 책(“Night”)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얼마 전 워싱턴에서 자신들의 짓밟힌 삶을 눈물로 호소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도 눈앞에 스쳤다.

요코 이야기가 갖고 있는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코 이야기를 너머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릴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단지 교세확장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우수함을 세상에 알릴 동량(棟梁)들을 키우는데 교회가 더욱 힘써야할 때임에 틀림없다. (기독교타임즈 2007.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