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피천득님은 그의 수필 “인연(因緣)”에서 일제시대 동경에서 만났던 아사코(朝子)라는 여인과의 세 번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소학교 1학년에 다니는 어린 소녀로 처음 만났고, 그로부터 십 년 후 풋풋한 여대생으로 만나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논하였답니다. 마지막 만남은 그녀가 한 남자의 부인이 된 후의 약간은 어색한 만남이었습니다. 한 여인과 수필가와의 인연은 이처럼 지속되었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만남은 우리들의 인생여정에 큰 자취를 남기게 마련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담임으로 부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일보 손기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와 지난 8년여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회하던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칼럼을 쓰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제 성격이 그리 적극적이지 못한데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글을 쓰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수락을 하고 난 다음 날부터 은근한 부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마음에 설렘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렘과 지면을 통해서 좋은 분들과 귀한 인연을 맺게 될 기대에서 오는 설렘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사를 예사로 볼 수 없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만남 조차도 우연이 아닙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매일 매일의 삶 역시 뒤돌아보면 순간순간마다 깊은 뜻이 베어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에서는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어서 어떤 것도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마10:29). 녹록하지 않은 이민생활이지만 매사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삶에 생동감이 넘칠 것입니다. 일상 속에 베어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그것을 음미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사와 기쁨이 솟아날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것들 가운데서 의미를 찾고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성경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비춰보고 싶습니다.
칼럼의 제목을 “옹달샘”이라고 붙였습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누구나 쉬어가는 곳입니다. 옹달샘 근처에 모이면 모두 이웃이 되고 목을 축이고 나면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옹달샘이 비록 작은 샘물이지만 계곡을 지나서 작은 개울을 이루고 강을 만나서 넓은 바다로 흘러갑니다. 옹달샘은 그렇게 대양을 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것을 두고 “섭리”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기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을 빌려왔습니다. 지면을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누구든지 오셔서 샘물 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맑은 샘물로 목을 축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넓은 대양을 마음에 그리면서…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06.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