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

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태중에서도 싸움을 할 만큼 유별났습니다. 먼저 나오려는 동생을 뿌리치고 힘이 좋은 형이 먼저 태어났습니다. 동생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올 정도로 장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이들 형제의 성품은 정반대였습니다. 형은 사냥을 좋아하고 용맹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들사람이었습니다. 동생은 온순했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어머니를 돕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요즘 말로 마마보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을 갔던 형이 기진맥진해서 돌아옵니다. 헐레벌떡 집에 와보니 동생이 커다란 솥을 휘휘 저으면서 일품요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팥죽이었습니다. “팥죽 좀 줄래? 지금 배가 너무 고프거든” 형이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합니다. 동생은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냥에서 돌아온 형의 얼굴이나 자기가 만들고 있는 팥죽색깔이나 붉은 색을 띠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입니다.[에서가 태어났을 때 그의 몸은 붉었습니다. 에서의 후손 에돔 역시 ‘붉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생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형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상 밖의 말을 건넵니다.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파세요.” 아라비아 상인처럼 형과 거래를 하려는 동생의 말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형은 앞뒤 가리지 않는 들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당장 죽어가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니? 일단 팥죽부터 주면 내가 알아서 할게.” 동생은 집요합니다. “확실하게 제게 맹세하세요. 그러면 팥죽을 드릴게요.” 형은 동생 앞에서 맹세를 하고 장자권을 팝니다. 동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팥죽에다 빵까지 덤으로 얹어서 형에게 줍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동생 야곱은 집요한 사람입니다. 형의 맹세를 받아낸 후에야 팥죽을 건네는 모습만 봐도 그렇습니다. 빵까지 덤으로 주는 것은 거래를 완벽히 성사시키려는 주도 면밀함입니다.반면에 형 에서는 성미도 급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말 그대로 들사람입니다. 동생에게 섣불리 장자권을 판 행동은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창세기 본문은 다섯 개의 동사를 연속적으로 사용해서 에서의 행동을 중계 방송하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갔다. 이것은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번째 동사는 에서의 행동에 대한 해설입니다. 이것은 에서가 어느 정도로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는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세상에는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를 홀연히 떠나는 것도 잘못입니다. 에서는 배고픔이라는 눈 앞의 욕구를 채우다가 가장 귀하게 간직해야 할 장자권을 경솔하게 팔아버렸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숨이 넘어가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고 부요하게 만들어줄 것들입니다. 양심도 그 중에 한가지 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오랜 벗들과의 우정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져도 진실된 사랑을 꼭 간직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야말로 끝까지 지켜야 할 장자권임에 틀림없습니다. 순간적인 것들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팥죽 한 그릇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