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통신수단이 무척 발달했습니다. 이제는 길을 가면서도 전화로 통화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컴퓨터를 켜고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즐깁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 공중전화 박스를 찾고, 편지를 부쳐서 한 달 후에나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과 언제든지 전화나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외롭다”는 말을 합니다. 아니 실제로 외롭습니다. 이것을 두고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모든 인간은 혼자라는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홀로 있다는 것과 이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마음과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이웃을 갖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모두 자신을 이해해 주기 바랄 뿐, 남을 이해하는 것에는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이 커다란 우주공간에 자기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것처럼 외롭습니다. 틸리히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62편 속의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힘이 없습니다. 3절에 있듯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습니다. 곧 무너져 내릴 지경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무너져 내릴 판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일제히 공격을 합니다. 4절에서는 높은 낭떠러지에서 사람들이 떼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축복의 말을 하지만 속에는 저주로 가득하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롭고 절박한 순간입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다윗은 위기와 외로움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산성이 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공격해 올 때도 다윗은 하나님께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도 하나님께 숨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반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 삼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