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성숙함으로의 여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젖을 먹는 갓난아이 신앙부터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신앙까지 자라야한다고 교훈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예로 들었듯이 거지가 왕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신분이 바뀌었지만 그의 성품이 모두 바뀐 것은 아니어서 미숙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미숙한 신앙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주세요”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축복이라는 말에 집착하고, 희생이나 고난이라는 말에는 부담을 느낍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말이 교회 안에서 받아드려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미숙한 신앙은 공동체 속에서 분열과 갈등, 비난과 미움을 일으킵니다. 시기와 질투 역시 미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미숙한 신앙은 공동체는 물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낯을 찡그리게 만듭니다. 이처럼 미숙한 신앙은 삶이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신앙의 연수와 상관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숙한 신앙에 머물러있는 경우를 봅니다. 요즘 기독교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의 미숙한 신앙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6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숙한 행동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하갈이라는 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어서 대를 잇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한 하갈이 안주인 사래를 멸시합니다. 하갈의 멸시에 마음이 상한 사래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아브라함은 사래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합니다. 이번에는 사래가 하갈을 학대합니다. 하갈은 주인의 아이를 잉태한 채로 광야로 도망갑니다. 성숙하게 행동한 인물이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건망증이 도져서 하나님을 잠시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영락없이 미숙한 일에 휘말립니다. 둘째는, 믿음에 걸맞은 성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에 비해서 성품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서 조급해 할 때 미숙한 행동을 합니다. 서두르면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미숙함도 온전한 신앙에 이르는 한 과정입니다. 창세기 16장에서 하갈을 위로하시고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미숙한 신앙 속에서도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성숙함을 향해서 앞으로 나가려는 마음가짐과 노력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