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롭다”는 뜻을 가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주전17세기경 중국 은나라의 탕왕이 세숫대야에 기록했던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을 줄인 말입니다. “하루가 새롭고,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다”는 뜻입니다.
중국 최초의 고대왕조를 세웠던 은나라의 탕왕은 이 글귀를 청동 세숫대야에 새겨놓고 아침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하루를 새롭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마 탕왕은 청동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면서, 지난 날과 지난 밤의 어두운 일들을 모두 씻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수대야에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하루를 새롭게 살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려는 노력덕분에 지금까지 덕이 넘치는 어진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신학을 공부했고 40줄에 들어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목회지에서 겁도 없이 우리 네 식구가 교회를 개척했다가 개척초기에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번듯하게 세워졌지만 지금도 개척 당시를 떠올리면 우리 네 식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을 뿐입니다. 그 이후로 우리 큰 아들은 목사가 되지 않고 평신도로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목회의 길에 접어든지 어느덧10년이 가까워 오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목회는 늘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털썩 내려앉아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제가 암송하고 묵상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3절 말씀입니다.:”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제목 그대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눈물의 노래입니다. 애가서는 첫 구절부터 ‘슬프다”로 시작해서 마지막 구절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지 않았고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고백할 정도의 슬픈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애가서의 한 가운데 위에 인용한 소망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의 마음속 한가운데 아침마다 새롭게 임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은나라를 세웠던 탕왕이 세수대야에 새겨놓았던 “일신우일신”과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힘들고 낙심될 때마다 이 말씀을 마음 한 가운데 새겨놓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새로운 힘을 더해 주고 목회와 삶의 현장 한 가운데 소망을 주시는 것을 몸소 체험합니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만큼 삶이 힘겹고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무감각하게 아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상에 길들여져서 새로움과 삶의 경이로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마음 판에 “일신우일신”이라는 글귀를 새겨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제가 힘들고 절망 속에 있었어도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날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아침마다 새롭게 임하는데 우리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임하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체험하고 싶습니다.날마다 새로운 날을 주심에 감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싶습니다. 주의 성실이 아침마다 크기 때문입니다.(2009년 2월 19일 SF 한국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