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땅을 떠난 시어머니 룻과 모압 며느리 룻이 드디어 베들레헴에 돌아옵니다. 그때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걷거나 기껏해야 낙타와 같은 짐승을 타고 여행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며칠을 걸어서 고향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중동의 뙤약볕에 얼굴도 많이 타고 옷차림도 아주 허름했을 겁니다. 고향에 와보니 소문에 듣던 대로 고향땅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보리를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면 만감이 교차했겠지요.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작은 동네에 쫙 퍼집니다. 이것을 두고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온 성읍이 나오미와 룻이 돌아온 것을 두고 들썩거렸다고 했습니다. 작은 동네 베들레헴에 빅뉴스였던 것입니다. 소문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모압에 가서 축복을 받고 성공을 해서 아주 큰 재산과 종들을 데리고 온 줄 알았습니다. 소위 금의환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남편 엘리멜렉도 두 아들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오미가 외국 며느리를 데리고 거지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수군댔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가 나오미냐?”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나오미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핀잔의 말을 했고,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동정어린 마음에서“이가 나오미냐?”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19절은 베들레헴에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담담합니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자신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그 나마 남은 자존심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더 이상“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인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고난”이란 뜻의 마라라고 부를 것을 부탁합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풍족해서 떠났는데 빈손으로 왔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도 잃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담담하게 자신에게 닥친 쓰디쓴 인생길을 고향사람들에게 보고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약점이나 실패를 숨기려고 합니다. 더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두고 하나님 탓을 하거나 사람들 탓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가슴에 끓어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얘기합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마음을 다 비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알 수 없는 고난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깊이 생각한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포입니다.
나오미는 이렇게 고향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솔직히 내보였습니다. 나오미도 사람입니다. 그녀의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오미와 룻을 진심으로 지켜보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 자신이 부른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복음성가의 가사대로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