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을 피해서 모압으로 피난 갔던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모압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금의환향해도 모자랄 판에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서 돌아왔으니 나오미의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동네사람들이 구경나온 자리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더 이상 기쁨 또는 즐거움이란 뜻의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고통스럽다는 뜻의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당부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닥친 재난이 하나님께서 벌주신 것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담담하게 밝힙니다. 그렇게 나오미의 베들레헴 귀환은 빈털터리 초라한 모습으로 시작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오던 시기는 풍년이 들어서 보리를 추수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와 룻은 양식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때 선하고 부지런한 며느리 룻이 이삭을 주우러 들에 나가기로 결심합니다.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 들판에 나가는 것 자체가 비난을 무릅쓴 행위입니다. 그녀가 들에 나가면 또 다시 동네에 빅뉴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위해서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때 베들레헴에는 보아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라는 이름이“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듯이 그는 베들레헴의 유력 인사였습니다. 룻이 들로 나가서 보리이삭을 주운 곳이 바로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우연히”라고 기록했습니다(2:3). 물론 우연히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운이 좋다는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는데 이것을“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룻기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비단결처럼 곱고 말 그대로 신사였습니다. 그는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과도 서로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인사를 했습니다. 모압여인 룻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보고 부정 탄다고 좇아낼 만도 한데 룻을 살뜰하게 챙겨줍니다. 아니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이방 여인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룻기의 말씀은 칠흑 같이 어두운 분위기에서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 분위기로 서서히 전환됩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선합니다. 당시 사사시대는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시끄럽던 때였는데 이상하리만큼 룻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착하고 말 그대로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복도 내리시지만 벌도 내리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확실히 만났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며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처럼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들처럼 선하고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