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리스만은“군중속의 고독(the lonely crowd)”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첫째가 전통적인 유형인데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서 살아갑니다. 근대화가 되기 이전의 세상은 전형적인 전통적인 사회였고, 전통을 무시하면 죄인취급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자기 지향적인 유형(inner-directed type)입니다. 전통적인 세상에서는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로 타인 지향적인 유형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산업화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경쟁이 치열해 졌고 사람들 간에 마음의 벽이 높아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끝없는 경쟁을 하다 보니 불안과 초조가 밀려옵니다. 여기서 군중 속의 고독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삭개오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삭개오가 살던 시대는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었고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민족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로마를 위해서 일하는 세리가 됩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자기 민족에게 세금을 거둬서 로마정부에 바치는 일을 했기에 동족으로부터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가 세리라는 직업을 스스로 택했고 요즘말로 하면 세무서장까지 되었으니 그는 자기 지향적인 인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삭개오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군중속의 고독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리가 되었지만, 사람들 역시 그를 사람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외로운 인생이었습니다. 지난주에 배운 여리고 소경이 거지라는 천한 신분 때문에 외로웠다면, 삭개오는 나름대로 자기의 꿈을 이루면서 성공했지만 내면의 문제로 인해서 외로웠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체면을 버리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여리고 소경은 예수님을 불렀지만, 삭개오는 단지 나무에 올라앉아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구경합니다. 그것이 삭개오가 한 행동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삭개오를 보시고“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겠답니다. 이 말은 삭개오에게 정말 기쁜 소식(복음)이었습니다. 세무서장까지 되었지만 누구도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그의 친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은 곧 그의 마음의 집에 들어가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삭개오와 그곳에 모인 군중들을 향해서“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도 부르십니다. 삭개오의 집에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들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우리들이 누리는 행복입니다. 세상의 행복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힘겹고 초조합니다. 설령 세상에서 성공했어도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해결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세상의 행복을 뛰어넘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인생길이 열립니다. 그 길이 곧 행복의 길이요 생명의 길인 줄 믿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