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디십시오

이번 달 칼럼주제를 생각하다가 그 동안 썼던 칼럼의 제목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작년 10월에 썼던 칼럼 제목이 “고통가운데 계신 분들께”였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 썼던 칼럼이었고 하나님께서 고통 받는 분들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꼭1년이 지났지만 미국경제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빠떼루”라는 벌칙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파테르”라는 레슬링 용어인데 한국의 한 해설자께서 빠떼루라고 발음한 것이 유행어가 된 것입니다. 빠떼루는 레슬링 경기에서, 상대방 선수가 자신을 굴려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벌칙을 당한 선수가 최대한 몸을 매트에 붙이고 일정 시간을 견디는 동작입니다. 실제로 경기를 지켜보면 빠떼루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빠떼루를 받으면 마음이 조립니다. 상대방 선수가 팔로 우리선수의 허리를 감고 몸을 돌리려 할 때, 매트에 몸을 붙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TV로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도 조마조마한데 빠떼루를 당하는 선수와 코치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들 역시 빠떼루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거나 실수해서 레슬링 경기처럼 벌칙을 받기도 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벌칙이든 실수의 대가이든지 다 지나갈 때까지 몸을 낮추고 견디는 것이 상책입니다. 때로는 자신과 상관없이 닥쳐오는 인생의 빠떼루도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인생의 매트에 바짝 엎드려서 빠떼루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빠떼루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를 드는 것입니다. 레슬링 경기에서 빠떼루 자세를 취하는 선수는 몸은 땅에 붙이지만 머리는 들고서 방향을 잡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빠떼루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면 무기력해집니다. 방향감각을 잃기 쉽습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왜 인생의 빠떼루를 당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빠떼루를 견딜 수 있을지, 빠떼루가 지나가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들어서 미국의 불경기가 끝났다는 언론보도가 눈에 띕니다. 실제로 다우주가지수도 1만선에 육박했고, 불경기의 근원지였던 뉴욕의 월가에서는 다시 보너스를 풀면서 돈 잔치를 한다는 씁쓸한 소식도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힘겹습니다. 찬 바람이 나면 나아질 것을 기대했던 비즈니스도 여전히 잔뜩 흐림입니다. 아니 더 어렵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경기회복의 뉴스가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경기 회복 국면에 더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는답니다. 계속되는 어려움에 그만 힘이 빠져서 두 손을 드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끝까지 견딜 때입니다. 머리는 들고, 몸은 인생의 매트에 딱- 붙이고 인생의 빠떼루를 견뎌내야 합니다.성경에서도 끝까지 견딜 것을 교훈합니다.:”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매사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견디십시오. 견디는 것이 힘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마지막에 웃습니다.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0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