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지난 6주 동안‘행복에의 초대’라는 주제를 갖고 연속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은 아침안개처럼 금방 사라집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먼 산에 걸려있는 무지개를 쫒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면 때때로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세상의 행복은 누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은 것을 누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은 세상의 행복을 뛰어넘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마음속에 행복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이 주는 약속과 능력을 누리며 살아갑니다.무엇보다 예수님으로부터 얻은 행복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의 극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씀임 받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한 평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수만 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께서 쓰신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귀족 출신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반면에 아모스는 양을 키우던 목자였습니다. 다윗 역시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의 직업도 다양합니다. 마태는 삭개오와 같은 세리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입니다. 사도바울은 교육을 많이 받았고 로마 시민권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쓰신 인물들 가운데 많은 경우가“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대표적입니다. 오늘 살펴본 사도행전 4:13절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학문도 없는 범인”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 눈에 베드로와 요한은 말 그대로 보잘 것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배운 것도 없습니다. 외모도 초라합니다.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를 했는데 5천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내가 이들이 행한 능력과 전한 복음으로 떠들썩해졌습니다. 이들의 힘과 능력이 어디서 왔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통 사람인 베드로와 요한을 들어서 쓰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두 눈을 두루 살피시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세상에서 보잘것없고 천해 보여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순수한 믿음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을 찾으십니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 세상 기준으로 미련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인생들을 쓰셔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밝히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고전1:26-28).

여기에 우리네 보통 사람들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