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라고 교훈하지만 막상 세상에 나가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앞서는 것이 우리네 범인들의 삶입니다. 게다가 “범사에”라는 수식어가 부담이 됩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in everything)” 감사하라는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라는 말속에는 “모든 상황에서(in all circumstances)” 감사하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범사에 감사하기로 결심도 하지만, 막상 삶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엊그제는 101번 도로를 이용해서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아침나절인데도 생각보다 도로가 많이 막혔습니다. 알고 보니 앞에서 접촉사고가 나서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참 묘합니다. 길이 막히다가 갑자기 소통이 원활해 지면 제한속도를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질주합니다. 저 역시 약속 시간에 늦었기에 사고가 난 곳을 지나자마자 엑셀레이터를 밟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앞에 가던 차가 속도를 내지 않습니다. 얼마나 답답한지 차선을 바꾸어보았습니다. 하필이면 앞에 있던 차도 따라서 차선을 바꿉니다. 하도 답답해서 경적을 울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찬양CD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5분도 안되어서 앞에 경찰차가 있는 겁니다. 앞에 갔던 차들이 줄줄이 단속에 걸렸습니다. 그 순간 제 앞길을 막았던 자동차의 운전자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던지요! 이처럼 우리들은 어떤 일이 벌어져야 감사하지, 그 이전에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때로는 씩씩대면서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두 명의 천사에게 각각 커다란 바구니를 주면서, 한 천사에게는 세상에서 불평을 바구니에 담고, 다른 천사는 감사만 바구니에 담아오라고 부탁하셨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불평 바구니를 든 천사가 기우뚱거리면서 돌아왔습니다. 바구니가 너무 작아서 세상의 불평을 모두 담을 수 없다고 세상 사람들처럼 불평을 합니다.
한참 있다가 감사를 담은 천사가 얼굴에 미소를 뛰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구니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정을 물으니 천사가 대답합니다.: “세상에 내려가보니 감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제 바구니에 들어있는 감사를 생각하니까 제 마음속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우리들 삶 속에도 불평과 감사의 바구니가 있다면 아마 불평 바구니는 틀림없이 가득 찼을 것이고, 감사 바구니는 비교적 헐렁할 겁니다. 이처럼 우리들 역시 감사보다는 불평에 익숙합니다. 감사는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데, 불평은 저절로 생깁니다. 감사할 것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불평할 것들은 주변에 널려있습니다.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감사절만큼은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고, 세어보고, 인생의 감사바구니에 곱게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기로 다짐할 수 있기에 추수감사절기는 그 어떤 쇼핑보다 우리 마음에 풍성함을 가져다 줍니다.
올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마음 속에 있는 불평바구니를 비어내고 그것마저 감사 바구니로 바꾸어서 두 바구니 모두 감사를 가득 담는 행복한 삶을 살기로 결심합시다. (2009.11.26 SF 한국일보 종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