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필립 그로닝이라는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이 한국에서 소리 소문 없이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답니다. 이 영화는 해발 1300미터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영화 제목 그대로 무려 162분 동안 거의 대사가 없습니다. 단지 수도사들이 침묵으로 기도하면서 지내는 모습이 조용하게 펼쳐질 뿐입니다. 수도원을 둘러싼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경치, 수도사들을 깨우는 종소리, 수도사들의 발자국 소리와 경전을 읽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릴 뿐입니다.
한창 인기를 끌기 시작한 3차원 영화들이나 현란한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는 요즘 영화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 흐르는 수도사들의 침묵은 매우 아름답고 어떻게 보면 화려합니다. 그들의 겉모습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수도사들의 내면에 흐르는 신앙과 절제된 삶이 인상 깊게 마음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서 저도 모르게 수도원의 삶에 빠져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수도사들의 모습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던 아내가 “당신은 저런 삶을 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아마 하루 종일 얘기 한 마디 나누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 수도원의 생활을 견딜 수 있냐는 뜻일 겁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떨거나 무슨 일을 도모하기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다 보니 말도 많이 하고 여러 얘기도 듣게 됩니다. 이 다음 은퇴 이후라도 기회가 된다면, 수도원 생활을 꼭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화려한 영상과 때로는 듣기에 거북한 상스러운 대화가 판을 치는 현대 영화들을 제치고, 말 그대로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하는 <위대한 침묵>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시끄러운 세상에 식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생활은 무척 시끄럽습니다. 한 밤중에도 소방차와 응급차의 소리가 들리는 거리의 소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 입술의 말은 어떻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남성들은 평균 2만5천 개의 단어를 사용한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무려 1만 단어를 더 사용해서 3만 5천여 개의 단어를 구사하면서 대화한답니다. 그 가운데 듣기 좋고 아름다운 말들이 얼마나 될까요?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대화는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일상의 대화들은 무의미하거나 나중에 녹음을 해서 다시 듣는다면 얼굴이 뜨뜻해질 정도의 창피한 언어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새해 첫 달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시편 62편 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여호와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새해 첫 주일 설교에서 올 해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간을 갖기로 성도님들과 약속한 것도 생각났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2-3분은 세상일을 모두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듣지 말아야 할 얘기도 너무 많이 듣습니다. 올 한해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 원합니다. 그때에 미세하게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이 마음속에 울려 퍼지면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2010년 2월 21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