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이-메일 홍수입니다.
저 역시
이곳 저곳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대부분은 정성껏 읽고 저장해 놓지만
광고성 메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매주 목요일(금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메일이
“버려지는 메일” “쌓아놓다가 한꺼번에 정리되는 메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메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제게 오는 메일이 있습니다.
대전 침례교 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리키는
제 친구인 유재성 교수의 메일입니다.
3년 전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도 있지요.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저에게도 보내주는 것 같은데
짧고 유익한 글을 보내줍니다.
지난 부활절 즈음에 보냈던 메일은
국민일보 칼럼을 인용한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두 단어는 반대말일 수 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아프든, 상처 나든, 피가 나든 상관없이
나의 욕심 대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프고, 상처 나고, 피가 나더라도
상대에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유관재, 국민일보 ‘로뎀나무’ 칼럼 중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좋아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주님을 선호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나를 따라오시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라는
말이 좋아하다와 사랑하다의 차이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군요.
무슨 일이든지 좋아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쉽습니다.
내 마음대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더더욱 어렵지요.
사랑은 ,
허다한 죄를 덮어 주어야 하고 (벧전4:8),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18)
좋아함을 너머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진실됨이
우리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세상에 다가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5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