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이웃들

지난 해에 새로 렌트해서 들어간 미국교회는 매주 수요일마다 노숙자(홈리스)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합니다. 미국 교회 목사님과 대화하는 중에 노숙자를 돕는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여선교회와 자원하신 성도님들을 중심으로 노숙자 돕기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우리 교회가 전담해서 매월 한번씩 1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노숙자들을 대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노숙자들에 대한 편견도 갖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과도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세 분의 노숙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분은 비교적 깨끗한 옷을 입고 오시는 할머니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인 그 할머니는 저를 만나면 기도해 줍니다. 자신이 성령의 은사를 많이 체험했다면서 노숙자들의 영적 스승 역할을 합니다. 하루는 저에게 아주 작은 하모니카를 선물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하모니카를 즐겨 불어서 곡조만 알고 있으면 악보 없이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즉석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연주했더니 얼마나 기뻐하든지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분은 중국 아저씨입니다. 이 분은 거의 매번 똑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가까이 가면 땀냄새가 많이 납니다. 이 아저씨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종종 병원에 실려갑니다. 엊그제는 거리에서 괴한에게 머리를 맞았다면서 동양인들이 현금을 많이 소지하기에 괴한들의 표적이 된다고 조심하랍니다. 노숙자인 그 아저씨나 목사인 저나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닐 처지가 아닌데 서로 그런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한 번은 이 아저씨가 한 달여 보이지 않아서 큰 일을 당한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욕에 있는 부모님을 방문하고 왔답니다.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뉴욕을 다녀왔으니 얼마나 긴 여정이었을까요? 그에게도 찾아갈 부모님이 계셨다는 사실에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반겨주더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마음이 찡- 했습니다.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웠으면 뉴욕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왔을까요!

또 다른 한 노숙자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입니다. 키가 하도 커서 이 청년이 앉아 있는 것이나 제가 서 있는 것이나 비슷할 정도입니다. 이 젊은이는 수요일이 되면 일찍 교회에 와서 음식준비며 식탁 배열을 돕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근사한 옷을 입고 왔습니다.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취직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취직이 된 사람이 자꾸만 나타납니다. 기회를 보다가 어렵사리 직장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떨굽니다. 정부보조가 나오면 요리학교에 다니겠답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씩- 웃습니다. 기도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수요일에 만났는데 옷에서 땀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심상치 않아서 학교는 다니냐고 하니까 돈이 없어서 못 다닌답니다.그러면서 횡설수설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선해 보이는 젊은이인데 무너진 인생을 다시 세우기가 그토록 어려운가 봅니다.

이렇게 지난 1년여 노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부모형제가 있고, 앞 길을 놓고 고민하는 이웃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잡채와 복음밥과 같은 한국 음식을 대접받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그들에게서 정감을 느낍니다. 거리에서 그들을 마주치면 “패스터(pastor)”하면서 이가 다 빠진 채로 인사합니다. 그들의 모습과 표정 속에서 인생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배웁니다. 마음을 터놓고 대하면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음도 배웁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2010년 4월 30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