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는 펜실베니아주의 스크랜튼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린 코스타 수양회에 다녀왔습니다. 올 해로 일곱 번째 참석하는 코스타였지만 매 해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동시에 부담감도 느낍니다. 미래를 책임질 새벽이슬과 같은 젊은이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에 대해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코스타에 가면 참된 신앙을 가져보려는 젊은 청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시카고에서 열린 코스타에서 주로 성경연구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이번에는 25세 이하의 젊은 청년들이 모이는 스크랜튼 코스타에서 오전 전체 집회 말씀을 맡았기에 더욱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뒷전에서 기도해 주시는 성도님들과 친지들이 계셨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은혜가운데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코스타 기간 중에 청년들을 만나면서 제가 마치 30여년전으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대충 비슷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무차별 쏟아내는 질문들, 진로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젊은 시절에 누구나 가슴앓이를 하는 만남과 헤어짐의 아픔들. 인생을 조금 더 산 신앙의 선배로서 성심껏 조언해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말없이 젊은이들의 넋두리를 들어주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앞에 앉아 있거나 쭉 둘러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전도서는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왕의 후광을 입어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입니다. 청년의 때는 인생의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시기입니다. 힘차게 앞을 향해 뛰어나가는 시기입니다.
청년의 때와 대조되는 말이 “곤고한 날”입니다. 몸과 마음이 인생살이에 지쳐서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하는 때를 가리킵니다. 곤고한 날이 되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자조 섞인 말투로 탄식합니다. 솔로몬은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교훈합니다.
코스타에서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만약에 청년의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동안 아쉬웠던 많은 기억들, 게으름으로 인해서 흘려 보냈던 시간들, 짧은 생각에 그만 성급하게 서둘다가 놓치고 말았던 인생의 기회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아있던 아쉬움 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쳤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진한 아쉬움은‘이제는 늦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단정해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포기했던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시계추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예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앞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 훗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때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꽤 많이 줄어있을 것입니다. “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하루 새롭고 행복한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2010.7.23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