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가지 표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섯 가지 표적을 모두 살펴보았고, 앞으로 세 시간에 걸쳐서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을 살펴볼 것입니다. 일곱 번째 표적은 요한복음의 표적들 가운데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사건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그의 두 누이인 마리아와 마르다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3마일정도 떨어진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세 오누이만 살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예수님은 부모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각별히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히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을 만큼 커다란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하나뿐인 동생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알립니다. 예수님께 부탁한 것으로 보아서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기 말씀을 하십니다. 지난 번 소경을 고치시면서,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 보이려고 했다고 말씀하셨듯이, 이번에도 나사로의 병이 죽을병이 아니랍니다. 나사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자신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랍니다. 이것은 믿음의 눈이 뜨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나사로는 죽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를 살려내십니다. 나사로를 살리러 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5-26절)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장차 부활할 것을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듯이, 우리들도 죽음에서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께도 영광이 될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살리심 속에는 이런 구원의 진리가 함축적으로 들어있습니다.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는 예루살렘 근처의 유다지방에 속해 있었는데 그곳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물러 계시는 것을 보고 위험한 유다지방으로 가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고 있는 (예수님의 눈에 나사로의 죽음은 잠을 자는 것과 다름없었고)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베다니로 가시겠답니다.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위험을 불사하신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제자들로서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친 것은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으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의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방식은 세상의 방법과 다르고 제자들의 생각을 초월한 하늘나라 방식입니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려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