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모두 읽고 나면, 이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틀을 지체하는 동안 나사로가 죽게 되었지만,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는 분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사로의 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이틀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사로가 죽게 됩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십니다. 그런데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났고, 동네 사람들은 하나뿐인 오라비를 잃은 두 자매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큰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동생 마리아는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그냥 집에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아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마르다에게는 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활에 대한 소망은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21-27절까지 나오는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는 우리들의 신앙에도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에게 하신 질문은 곧 우리에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주여 그러 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아주 완벽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동생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찾으신다고 넌지시 말해줍니다. 마르다는 신앙이 좋을 뿐만 아니라 매우 현명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마리아 역시 주님이 계시지 않아서 동생이 죽었다고 예수님 앞에서 서럽게 웁니다. 그것을 본 온 동네 사람들도 함께 울고 순식간에 그곳이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함께 우는 것을 보니 삼남매는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았나봅니다. 세 남매가 부모 없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집안의 남자인 나사로가 갑자기 죽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때 예수님도 함께 우십니다.:”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33절)“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예수님께서 아주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이시지만 마리아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함께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러 가십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이 지체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금방 이루어지면 좋을 텐데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이틀이 지체하는 동안 나사로가 죽었듯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괴롭고 힘들 때 예수님께서 함께 우신다는 사실이고, 셋째는 세상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해야 한다는 굳은 믿음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