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가는 순례자”

1.
오늘 저녁에는
안타까운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장례가 마음이 아픈 가운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20대 젊은 자매의 장례식은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이었고,
매주 보내는 이-메일 서신을 계속 받아 보고 싶다고 해서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간직했던 자매였습니다.

모든 것이 안타깝고
목사로서
책임감과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
집에 돌아와서
목요서신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이
책상에 놓여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책입니다.
영어 제목은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지요.
이 책의 번역자는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냥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우리말 제목도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길을
순례길이라고 여깁니다.

순례길은
관광길이 아니기에 힘이 듭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때로는 참으로 외롭습니다.

그래도 순례자는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그 길이 어떤 모양이든지,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더라도
순례자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지난 주일 설교본문인
시편 88편이 가르쳐주듯이
순례길이 고난으로 점철될 수도 있습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슴으로 부르짖으면서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갑니다.

정말 말 그대로 순례길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입니다.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그때 함께 가는 순례자가 곁에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동행(同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아니
동행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순례자의 동행이 되어주는 것도
순례길에 임하는 행복이고 멋입니다.

5.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9편을 갖고
“인내”라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인내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꾸준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직 미숙하고 우리 앞에는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았음을 느낄 때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인내는 그들이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무조건 견뎌 내면서 세월이 흘러도 판에 박힌 듯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거나, 스스로를 사람들이 신발에 묻은 흙먼지나 털고 가는 발깔개로 취급하는 체념의 상태가 아니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사야에게서 지친 기색이나 무료함을 발견할 수 없고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서 무미건조한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인내는 의기양양하고 생동적인 것이다.

시편 129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 129:2)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그 무엇이/그 누군가 있더라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라고 시편기자처럼 선포하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붙어 있으셔야 합니다.
능력에서 능력으로
의기양양하고 생동감 있게
각자에게 주어진 순례길을 걸어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순례길을 걸어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한 분 한 분과 동행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젊은 청년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순례길을
신앙 가운데 끝까지
능력에서 능력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7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