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자

지난주에 이어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만 들은 교회는 죽도록 충성하였던 서머나 교회와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빌라델피아 교회였습니다. 반면에 다른 네 교회들은 칭찬과 동시에 질책도 받습니다. 그런데 유독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 없이 질책만 받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던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자칭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 만족도가 높았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드르르했지만 실상 신앙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벌거벗은 영적상태입니다. 라오디게아의 신앙의 모습이 17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겉으로 보면 멋진 교회였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형편없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교회다는 것입니다.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었던 라오디게아를 향한 예수님의 교훈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열심을 내는 것은 미지근한 신앙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과 자기 우월의식에서 돌아서라는 깨우침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명칭이 확실히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은 칭찬할 것도 없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들은 진실된 신앙에서 떠나갔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필레오”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들을 친구로 대해주십니다.

20-21절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열심을 내는 신앙을 회복했을 때 임하게 될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친히 자신의 목소리로 이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문을 열면 예수님은 들어가셔서 식탁을 함께 나누실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식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친밀하다는 표시였고 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앚을 것이라는 약속도 주십니다. 여기서 보좌는 왕의 보좌입니다. 그곳에 함께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왕의 자식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미지근한 신앙과 자기 교만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도 회개하고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면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문이 열릴 때만 고대하십니다.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실 수 있지만,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문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문 밖에 서 계시도록 홀대할 때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그리고 예수님과 더불어 신앙의 식탁을 나누고 왕의 보좌에 앉을 준비를 합시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