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뜻이면…

지난 주간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부활주일에 앞서,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제 마음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평소에도 자주 찾으셨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제자들에게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이미 일러두신 후입니다.겟세마네 동산에 가신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십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예수님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고 성경이 기록했을까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의 고뇌가 가슴에 사무쳐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물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랑했던 제자의 배신으로 곧 잡히게될 것이고, 심한 고초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심도 아셨습니다.

그런데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두려워서 그렇게 기도하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사람들의 죄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그 자체가 슬픔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왜 이토록 죄에 빠져사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진리의길로 가지 않을 것을 아셨기에 십자가 이후의 세상을 눈에 그리면서 한탄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그리고 죄에 빠진 온 인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십니다.이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 한 가운데 있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 매우 큰 빚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빚쟁이가 주인에게 이것 저것을 달라고 요청해서는 안됩니다. 빚을 갚는 일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하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거꾸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참 많은 것들을 요구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한 것을 녹음했다가 다시 들어본다면,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빚쟁이 주제에 뭐 그리 많은 것을요구하는지요. 거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을 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라니 얼마나 창피하고 하나님께 송구스러운지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부끄러울 만큼 이기적이라 해도, 기도의 끝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그러나”로 마무리해야합니다. “그러나 주님 뜻이면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이면 양보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이면 희생하겠습니다. 주님 뜻이면 십자가의 길도 기쁨으로 걷겠습니다. 주님 뜻이면 멈추겠습니다. 주님 뜻이면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우리가 걷는 신앙의 여정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겟세마네의 신앙이 되기 원합니다. (2011년 4월 29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