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신문에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한 소개가 실렸습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것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냥 와서 편하게 명상하고 마음을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그 종교로 귀의하고 그렇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모임에 참석하면 된답니다. 요즘 세대에 잘 맞는 종교적 처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종교를 믿는 것은 일단 편할 것입니다. 내가 편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확실한 믿음과 분명한 결심을 요청합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보다 더 확실한 길이 없기에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물론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마음이 열렸을 때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 신앙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온 교우들 앞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인격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에서 확실한 믿음과 결심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면 저절로 믿음이 견고해 지고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신앙의 진수인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지난 번 연속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접촉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세 주간에 걸쳐서 살펴보게 될 시편 116편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시편기자가 성전에 예배하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고백하는 간증이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난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고백입니다.:“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맞습니다. 우리들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순간순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고난도 맞이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