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한마리와 하나님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그냥 일상의 삶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삶 자체가 신앙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감격과 감탄을 상실한 무덤담한 신앙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을 오래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약해서 회의를 머리에 달고 살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좋으신 하나님이요 완벽하신 분이라고 믿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으신 하나님의 작품과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불공평과 불의가 판을 치는데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신앙에 회의가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셔야(계시하셔야)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를 감지하기에는 우리들이 너무 부족합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 까지 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입니다. 그 가운데 한명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지 못한 채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열 한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습니다. 훗날에 이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초대교회를 세우는 사도들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시대를 역행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수만 명이 예수님 곁에 모여들었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병이 낫고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위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나선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사리온(페니)에 팔리는 참새 한 마리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머리카락의 숫자도 세고 계실 정도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을 따라 나선 그리스도인들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인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세신바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고 체험했을 때 우리들의 신앙이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감격과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 지 않고 세상에 나가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河-